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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글쓰기로 찾은 나의 목소리

by 어스름빛

첫 소설, 아빠의 한마디


언제부터 글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소설을 썼던 날은 흐릿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각인처럼 남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책장에는 계몽사 세계문학전집 60권과 아빠가 헌책방에서 구해온, 더 오래전에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30권이 꽂혀 있었다.


읽고 또 읽어 머릿속에 가득 차 넘치던 이야기들이 부풀어 올라 공책에 써 내려갔다. 길고 길었던 등하굣길에 수없이 하던 공상들과 책 속 장면을 변주한 상상들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을 서툰 솜씨로 조합한, 어설픈 짜깁기였다. 그러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습작이었다.


완성한 글을 아빠에게 보여 주었다. 내게 가족이란 같은 집에 사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들 중에서도 심정적으로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잘 썼다며 칭찬해 주었다. 집에는 세로쓰기로 된 오래된 책들, 내가 읽지 못하던 아빠의 오래된 책들이 있었다. 모두 아버지가 읽던 책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도 독서를 좋아했다며, 세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는 내가 대견하다고 했다. 아빠는 계속 쓰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등을 떠밀었다.


조회대 위에서 들린 내 이름


4학년 시절이 특별했던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해 담임 선생님은 교대를 갓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젊은 남자 교사였다. 열정이 과다해서였을까, 학생들에게 단체 기합을 자주 주던 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분을 기억하는 건 다른 이유였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숨죽이며 살던 나를, 전교생이 지켜보는 자리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지목받아 문제를 풀거나 책을 낭독할 때를 빼면 친구들과도 대화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책만 읽다가 종례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책 속에 있었기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이유도, 방법도 몰랐다.


그런 내가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표로 독후감 대회의 상장을 받았다. 매주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아침 조회를 하고, 교장 선생님의 길고도 긴 훈화 말씀을 듣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에서도 성적을 매기고 별별 대회들이 많았던 때였다. 대회가 열리면 상을 받은 학생들이 호명되고, 그중 한 명이 교단 위에서 상장을 받았다.


그 교단에 서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내 이름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교단 앞에 서서 상장을 받았다. 확성기의 울림과 두꺼운 종이의 질감이 아직도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자신이 나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소녀를 추천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유를 들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가르치는 사람이 된 지금의 시선으로 추측해보면, 내가 겉도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학교에 더 잘 적응하길 기대해서일까.


선생님의 기대처럼 되진 않았지만, 글쓰기에 자신감은 얻었다. 작가들이 어린 시절의 수상 경험을 글쓰기의 계기로 꼽는 것은 일종의 클리셰처럼 느껴졌지만, 인정이 주는 힘은 분명히 있었다. 나 역시 그날 이후 더 열심히 쓰게 되었다. 글쓰기와 나 사이의 문이 조금 더 활짝 열렸다.


세상과 연결고리로서의 글쓰기


집에서는 대화가 드물었다. 부모님과 오빠는 지시했고, 나는 수행했다. 누구도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빈 공책에는 소설이나 독후감보다는 일기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읽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들. “왜 친엄마는 그렇게 일찍 떠났을까. 왜 우리는 변두리로 이사했을까. 왜 집안일은 늘 내 몫이었을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부당한 상황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마음껏 일기장에 쏟아냈다. 일기를 쓰면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쓰다 보면 감정은 가라앉고, 상황을 분석해 납득할 논리를 찾았다.


그렇게 ‘계속 쓰는 사람’이 되었다. 수많은 일기와 습작들이 쌓이며 글쓰기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되었다. 표절에 가까웠던 첫 소설과 달리 점차 나만의 언어와 시선이 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독서를 통해 타인의 목소리를 읽는 데 익숙했던 나는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목소리를 찾았다. 쓰면서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일기장이 숨죽인 골방이었다면, 지금의 글쓰기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광장이 되었다. 일기를 쓰며 자신을 달래던 소녀가 있었기에, 40대에도 대학원에 도전하여 석사 학위를 끝낼 수 있었다. 숨어 있던 문장들은 블로그에 올리는 서평이 되고, 작은 대회의 수상작이 되고, 브런치 연재 글이 되었다.


지금도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다. 과거의 글쓰기가 세상과의 불화로부터 나를 지키는 보호막이었다면, 지금은 세상과 나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오늘도 쓴다,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한 칸씩 오르듯. 언젠가 내 이름 품은 책이 가슴에 안길 날을 향해서.



*다음 화 예고*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책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웠던 시절, 읍내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 3장. 읍내 도서관, 책으로 만난 또 다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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