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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an 16. 2017

소리 내어 읽은 책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이유는?

책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김PD의 인문학 여행' (36)


내 나이 쉰셋, 요즘엔 책 읽기가 좀 힘들어지고 있다. 일단 예전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책을 보면 자꾸 졸음이 온다. '글쓰기'나 '책읽기'나 두 가지 모두 나에겐 생명수와 같은 일들인데 하나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이유가 뭘까?


가게 일이 새벽에 끝나다 보니 아무래도 신체의 균형이 깨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촌의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를 오픈 한 지도 이제 3년이 넘었다. 글 쓰고 생각하고 문화를 함께 나누며 즐기는 삶이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보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다. 늘 그렇지만 절반은 좋고 절반은 나쁘다. 심지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듯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어쨌거나 '책읽기'는 나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행위다. 그건 일종의 나에겐 세상을 향한 여행이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서 내가 선택한 여행의 목적지를 향한 스케줄도 없는 자유로운 배낭여행이다. 그게 문제가 생겼다는 건 나의 세상 여행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고, 그건 세상을 보고 배우며 공부하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를 고민하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혹시라도 나처럼 비슷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책 읽기는 말하기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다가 공부를 잘하는 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자신의 공부 비법을 물려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선배라는 여학생은 자신이 무조건 암기만 하는 것에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개발한 책 읽기를 소개했다. 바로 '말하면서 외우기'라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역사 공부를 할 때, 그녀는 여러 가지 사건과 지명, 인물의 이름 등을 단순히 암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은 공부를 할 때 책이나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이 참고할 만한 내용들을 적어놓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 역시 암기의 암기에 불과했다. 반복적인 암기로는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대신 그녀가 선택한 것은 '스토리 라인'으로 묶어내는 작업.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스토리 텔링에 기반한 암기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스토리 중심의 암기였다면 아마 내 기억에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더 특이한 공부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말하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말하기'에는 책을 읽는 내내 큰 소리로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난 뒤 자신이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풀어주는 행위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공부한다고 하는 행위는 읽기와 쓰기, 그리고 말하기로 이뤄져 있다. 이 세 가지는 사실 우리의 두뇌 속에서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은 역시 읽기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두뇌는 단순한 것보다는 복잡한 것에 더 강한 자극을 받는다는 점이다. 어린 소녀 스스로 터특한 것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암기보다 '책 말하기'를 통해 훨씬 강한 자극을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적으로 그녀의 책 읽기와 말하기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일단 책을 읽고 그걸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재밌다고 느끼는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런 사교적인 마인드를 통해 그녀 주변에는 늘 재밌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그녀는 더 재밌는 이야기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재밌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발견한 것이다. 당연히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작은 선물일 뿐이었다.


'난독증이 책 읽기를 방해한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책 읽기에 관한 취재를 하다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난독증'(dyslexia)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독증이란 일단 시각적으로나 지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가 어려운 증세를 가키는 단어다. 그때는 나는 한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통해서 난독증에 관해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난독증에 걸린 학생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자신이 책까지 쓸 정도로 난독증에 관심이 많았다.


"난독증을 경험하는 학생들에게는 책 읽기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각적으로나 지능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 특별한 증세가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그냥 책을 읽는 기능 자체가 남들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해당됩니다. 글씨가 겹쳐서 보이기도 하고, 방금 읽었던 앞 문장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증상은 다양하지만 어쨌든 책 읽기가 쉽지 않다 보니 공부에 대한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공부를 안 한다고 다그치기보다는 책 읽기 자체에 대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난독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소리 내어 책 읽기'를 추천했다. 일단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과는 달리 귀로 듣는 자극과 입으로 말하는 이성적인 행위가 함께 이뤄지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자극을 두뇌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한 자극은 '난독증'으로 인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던 이해력을 증진시켜 준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실제로 교실에서 난독증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리 내어 책 읽기를 시도해 본 결과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순간순간 빠르게 눈이 책에 있는 글자들을 조합하고 단어들 사이의 의미를 찾는 연산 행위와 유사하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서 글자를 처음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큰 소리로 책을 읽는 행위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책을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말하면서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건 누구나 경험하는 글자를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행위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두뇌는 처음 글을 배울 때 경험했던 책 읽기와 책 말하기라는 두 가지 복합적인 방식을 성인이 된 지금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인냥.


책을 읽는 순간 그 음성은 그대로 청각을 자극한다. 눈과 귀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잡한 회로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어왔고 소리를 들으면서 시각과 정보를 공유했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 기능들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책을 통해 개념과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향한 이해의 창문이 열리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책 읽기 기능이 그렇게 형성되었다면, 책 읽기의 본래 기능 또한 눈으로 읽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효과적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당시 취재를 마칠 때쯤,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영어로 된 책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는 주문이었다. 물론 그녀가 일선 학교에서 이미 실험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영어로 쓰인 책을 그냥 읽는 것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나눠서 한 번 실험해봤다. 믿거나 말거나였지만. 놀랍게도 그냥 눈으로만 영어 원서를 읽는 것과 또박또박 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 것은 이해도 측면에서 뭔가 다른 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더 쉽게 이해가 간다고나 할까.


이런 재미난 실험은 난독증 극복의 방법에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난독증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고 치료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실생활에서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행위는 고차원적인 두뇌의 행위이며 시각과 청각, 그리고 '책을 손에 쥐고 있다', '책장을 넘기고 있다'는 아주 독특한 촉각까지 동반한 복합적인 감각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어찌 보면 아주 값싸게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난독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상의 작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문제는 자신이 난독증에 걸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책 읽기가 불편하거나 집중력에 한계를 느낀다면 자신에게 난독증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건 나 자신에게도 지금 필요한 일이다. 이유 없이 계속 책 읽다가 졸고 있으니 말이다. 뭐가 됐든 일단 책을 읽으면서 소리 내서 책 읽기는 당장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다. 어쩌면 가장 쉽게 졸음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글: 김덕영





자신의 스토리와 콘텐츠로 단골을 만들어라! '왜 우리는 레드오션,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만 살아남으려 하는가?' 인적도 드문 서촌 골목길에서 3년을 살아남은 한 까페 이야기.


나이 들었다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 재밌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다간 30명의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부제: 뒤늦게 발동걸린 사랑이야기. 가슴 절절한 중년들의 사랑이야기. '당신은 지금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뭔가 특별한 인생, 재밌는 일상을 같이 공유하길 원하는 분은 언제든 서촌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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