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어느 독일인은 탈무드와 토라에 평생을 바쳤다 그에게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유리잔을 감싸쥐더니 미안해서요라고 답했다 창밖에는 느티나무가 햇살과 섞였다 어느 일본인들은 매달 모여서 윤동주를 읽는다고, 어느 한국인은 히로시마 피폭자의 피부를 보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울었다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고명재)
어떤 의미에서는 '최종적'이거나 '불가역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50p, 한국 연예인은 왜 '위안부' 굿즈를 착용해?
애초에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이미 외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일본과 정당한 조약을 맺을 수 없었다. 즉 '한일병합조약'은 일본 정부가 일본 정부와 맺었다고도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작극의 산물이었다. -76p, 왜 한국 연예인은 8월 15일에 '반일' 글을 올리는 거야?
원폭 피해는 일본인만 입은 것이 아니다. 식민지 지배로 삶이 파괴되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이주해 오거나 징용 등으로 강제 연행되어 온 조선인도 원폭 피해를 입었다.
-118p, 케이팝 아티스트가 입은 '원폭 티셔츠'
'국제 관계'나 '젠더 이슈' 같은 낱말은 중립을 가장해 차별을 묵과하는 사실상 차별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정체성을 주장하던 논쟁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말을 안하면 안했지, 그런 어정쩡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역사는 서술자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는 어디까지나 주류의 역사다. 이 책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대해왔는지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남한)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역사의 불완전함과 별개로 일본 사람들 스스로 모순을 인식하고 과거의 오류를 인정하는 과정 자체는 의미가 있다. 특히 피해국가이자 피해젠더인 한국 여성들조차도 종종 묵과해온 한국과 일본의 성차별 역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은 일면 놀랍기도 하다. 불편함을 마주하기.
한반도의 남북 문제와 한국인의 외국인 차별 등에 대해 우리 또한 각자의 위치에서 각성해야 함을 일깨운다. 일본과 한반도의 가해-피해 구도로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한국인 입장에서 일본 사회와 지배계급의 행태에 분통이 터지기도 하지만, 저자들이 사유하고 토론한 차원이 예상을 뛰어넘기에 그만큼 우리의 인식도 확장할 필요를 느낀다.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할 수 없는 역사와 현실을 받아들이기.
불편한 역사를 배우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까지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의 아닐까.
-168p,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비판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당사자의 영역에 서슴없이 침입해 당사자가 말하게끔 하고 있잖아.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걸 몇천 번, 몇만 번이나 해와서 지쳤어. -186p, 단순한 케이팝 팬이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
양보를 강요당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분열되고 상처받는 것 아닐까?
-210p, 한국인 친구가 생겼지만......
과거의 악행 때문에 생긴 차별의 구조에 올라탄 현대인은 이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 과거의 잘못을 풍화시키는 과정에는 당사자로서 관여하고 있어. -221p, 어떻게 역사와 마주하는가
한반도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조선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공부하는 것은 내가 속한 사회, 혹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인식을 재고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학생들의 논의 과정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232p, 책을 펴내며
'일본이 왜곡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입문서로 제작되었으나 저자들이 한국에 진심인만큼 지적이고도 진솔한 서술을 했기에 한국은 물론 아시아와 전세계인에게도 의미있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