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녕 Jul 11. 2021

열심히 해 놓고 대충 한척을 했다

내가 나를 위해 치는 의미 없는 방어막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



미루고 미루다 결국 어제 겨우 제출했어요 


중요한 프로젝트의 기획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회사 동료에게 한 말이다. 사실 난 미루지 않았고 정말 열심히 기획안을 정리했지만, 결국 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예전엔 이런 나의 모습에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그런 식의 방어막이 당연했고 편안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더 들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나를 위해 치는 의미 없는 방어막이 불편해졌고 솔직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학생 때부터인 것 같다.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많이 못했어, 걱정돼"라고 이야기하는 게 편했다. 그러고 나서 점수가 잘 나오면 "못했다고 했는데 너 잘했네. 좋겠다"라는 식의 칭찬을 듣는 게 그때는 좋았다. 그러니까 못해도 이유가 되고, 잘하면 더욱 칭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어막이 좋았고 필요했다. 이렇듯 어느새 자연스럽게 체화된 태도는 대학생 때의 학점, 취업 준비 시기의 탈락과 합격, 나아가 사회인이 되어 일을 할 때까지 이어진 것이다. 



와, 나 진짜 열심히 했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걸 


솔직한 동료가 있었다. "나는 진짜 열심히 했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처음엔 흘려 들었는데,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그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난 항상 내가 부족했고, 부족하고, 부족할 것이라는 결과를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동료는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역량을 발휘한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는 동료의 그 말이 그가 작성한 자료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데 있다. 오히려 "잘 못했어, 걱정돼, 시간이 많이 없었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자료가 정교하고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을 때 묘한 반감이 생긴다. 열심히 했다는 게 이미 문서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말과 자료의 차이에서 오는 이상한 반감이 피어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 그 동료의 자료는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스스로 최선의 결과물이라 자부하는 그 결과물을 보니 부족한 부분을 보면 "이렇게 하면 좋았겠다, 이런 부분을 보충하면 좋겠네"하는 의견을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궁극적으로 솔직함은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사회적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한 결과를 더 효과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유의미한 조언과 의견을 이끌 수 있다. 작은 커뮤니케이션 하나가 하루의 일상을 바꾸고, 한 달의 진행 과정, 나아가 일 년의 성과를 축적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솔직함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분명 있겠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을 속이는 불편한 방어막을 치기 위한 거짓말을 피할 필요가 있다. 솔직할 때 내가 가진 매력, 내가 만든 콘텐츠의 가치가 더욱 배가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마음을 더 한껏 열게 되기 마련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솔직함은 필요하다. 

이전 02화 차선의 최선을 다하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