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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녕 Jul 11. 2021

친구들의 아이가 부러웠지만 일에 미친 척을 했다

내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나를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



어머, 아기 너무 귀엽다! 엄청 많이 컸는 걸?


어느덧 서른이 넘어가면서 친구들이 결혼을 하는 시기를 넘어 출산을 하는 시기에 다다랐다. 많은 친구들이 아이를 낳았고 카카오톡 메신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아이들의 사진이 우르르 올라온다. 싫었다. 우선 나는 딩크족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일에 더 욕심이 나서와 같은 대단한 이유는 아니고 진심으로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아이를 위해 살 자신이 없어서다.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살고 싶다, 나의 평생을. 어쨌든, 친구들이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올 때마다 나는 약간씩의 어미를 바꿔 한결같은 답장을 보냈다. 


'이쁘다' 

'어머 너무 귀엽다, 인형은 새로 사준 거야?'

'벌써 많이 컸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듯?' 


지겨웠다. 너희 아이들의 모습은 너희에게야 이쁘겠지. 나는 별로라는 생각이었다. 감흥이 1도 없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친구이기에, 역지사지로 백번 생각해 최선을 다해 답장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나는 평일에 시간 내기 어려워서, 너희 끼리 만나


아이들 사진으로 가득한 단톡방 한가운데 약속을 잡아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던 때, 나는 회사에서 힘에 부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부터 확인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로 죄 없는 후배들에게도 짜증을 한가득 쏟아내고 있던 참이었다. 한쪽에 켜 둔 PC 카톡에 읽지 않은 너무 많은 글들이 쌓여가자 더욱 화가 났다. 나중에 천천히 읽고 대답하면 되었을 일을 기어코 열어 읽다 신경질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너희처럼 평일에 시간 내기 어려워서. 너희 끼리 만나' 


무시였다. '가정주부로 있는 너희와는 다르게 나는 일을 하고 있단다'라고 하는 의미의 무시. 아이고 치졸하다. 이전까지 나는 친구들의 선택을 응원해왔다. 일보다 가정에 집중하고 싶다는, 아이를 낳아 행복하고 싶다는 소중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리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기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른 건데 내가 뭐라고 평가를 하나. 하지만 내가 나를 컨트롤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자 치졸하게도 나는 친구들을 무시하는 말을 했다. 그런 식으로 나를 우위에 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에 대한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딩크족을 운운하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너희들이 부러웠다.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인생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완전히 바뀐다는 출산과 육아를 하는 너희들의 모습에서 어떤 동경을 느꼈다.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벼텨내고 있는 나에 비해 너무나도 행복하게 하루를 영위하는 너희들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는 일에 미친 척, 일에 집중하는 척, 사회인인 척을 했다. 정말로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그 말조차도 다시 쉽게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이야기할게. 정말 미안해.  


만약 의지와 다르게 가시 돋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솔직하게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들과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고, 무엇보다 나의 감정이 병들지 않게 보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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