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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Jul 31. 2020

알사탕(백희나) / 우리의 서랍 속 알사탕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들 


우리의 서랍 속 알사탕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을 아시나요.

애들뿐 아니라 애미인 저도 그 책을 좋아해요. 상상력이 기발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알사탕>에는 웬일인지 엄마는 나오지 않아요. 다만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오랜 시간 아빠를 기다려야 하는 주인공, ‘동동이’가 나와요. 동동이는 친구도 없고, 오늘도 학교 갔다온 뒤 텅 빈 집에서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쿨한 척 말하는 아이예요.


그렇게 쿨하게 심심한 동동이는 문방구에서 산 색색의 알사탕을 하나씩 먹으면서, 별스런 경험을 해요. 이전엔 들리지 않았던 것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거죠. 알지 못했던 속마음들을 알게 돼요.


늘상 같이 놀던 강아지가 사실 나이가 지긋해 자주 피곤해한다는 것, 언제나 푹신하게 몸을 받쳐주던 소파가 사실 옆구리에 자주 리모컨이 끼어 아픔을 참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돼요, 부랴부랴 들어와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빠의 등 뒤에선 세상 그 무엇보다 애틋한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하늘 나라에 간 할머니와도 그리운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고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외출을 한답니다. 오늘도 혼자 놀 것이라 짐작했지만, 무늬가 없는 마지막 알사탕을 먹고 귀를 기울이자, 먼발치에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한 친구를 발견해요. 그 친구는 말이 없었죠. 그래서 동동이는 이번엔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네 보기로 했어요.


"나랑 같이 놀래?"라고.


매주 글쓰기 모임에서 색다른 알사탕들을 맛보고 있답니다. 같은 색 알사탕을 먹어도 미각이 각기 다른지, 평은 총천연색이더군요. 오늘을 어떤 알사탕을 먹게 될까, 어떤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대하게 되는 각자의 서랍 속 알사탕들.




1. 하얀 알사탕 : 글


“글쓰기의 실천은 기본적으로 ‘망설임들’로 꾸며집니다” -롤랑 바르트

“문체란,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 -헤밍웨이


우리는 매주 자신만의 ‘글’을 한두 편 들고와서 이야기를 나누죠. 숱한 망설임들을 어김없이 손님으로 맞이한 다음에야 비로소 흰 종이에 박히는 나의 이야기. 각자의 고유한 어색함이 묻어나는 짧은 글들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유일무이한 순간으로 변화시켜요.


장인이 한땀한땀 직조한 옷처럼 한 글자, 한 문장씩 수놓아 나만의 글 하나를 완성하죠. 그리고 그 글을 서랍에 처박아놓는 것이 아니라, 숨을 불어놓아요. 더 멀리 날아가 보라고, 세상을 유영하듯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목소리를 가져보라고. 망설임과 어색함을 원동력 삼아 서툴지만, 자신만의 길을 내어보는 일. 우리는 정말로, 인생의 맛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고소한 땅콩 알사탕 : 엄마


입안을 까슬거리는 땅콩 알사탕. 혀 밑바닥마저 쓸면서 너무나 확연한 강렬함을 각인시키는 존재.

때로는 너무나 이질적이면서도 그 고소함이 향수처럼 남아서 다시금 찾게 되는 그리움.


누구에게나 엄마란 존재는 우주와 같지요. 사이 님의 지난 글들을 반추해보니, 엄마에 대한 애잔함, 미움, 먹먹함이 떠오르더군요. 저도 비슷했거든요. 그 미움과 애잔함이 범벅이 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 때, 엄마에게 그랬어요.


“엄마가 나랑 상관없이, 내 선택에 상관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아무리 엄마를 사랑한다 해도, 엄마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 전부를, 내 모든 것을 엄마한테 다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엄마가 딸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듯이, 딸도 그렇지요. 애초에 제가 그런 살가운 딸도 못되었고요. 그런 은근한 기대가 숨 막히기도 했어요. 그래도 엄마에겐 여전히 철부지 딸이지요. 절절하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리 감춰도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듯한 엄마의 눈빛도 참 싫었어요.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 기르는 시기, 엄마는 본격적으로 삶의 의미를 확고히 찾으셨어요. 성실한 생활을 일궈 나가시고, 책과 여행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자기 자신을 마주하시는 시간을 가지셨죠.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홀로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애석함, 추억들도 떠올랐겠지요.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의 짐이 땅 위에 발자국으로 남고, 그렇게 수놓으며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과 인사를 건네셨으리라고… 감히 짐작해봅니다.


모든 그리운 것들은 어린 시절의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주, 계속 이야기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게 되겠죠. 그것이 아팠던 만큼, 더 그리워지는 만큼.



3. 아이셔 알사탕: 여행


사이 님의 글을 보다가, 참 무던히도 참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에 대한 애틋함과 먹먹한 슬픔으로 속 한번 제대로 썩혀본 적 없는 사람. 언젠가, 사이 님 글에서 그러더군요. 어렸을 때, 엄마가 너무 힘들어보여 자신을 두고 떠나진 않을까 마음 졸였었다고. 현실이 될까 두려워서, 아마도 입속에서만 맴돌았을 숱한 말들….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를 하던 때, 설거지를 하다가도 가끔 불쑥 올라오더군요. 자라면서 엄마에게 다 말하지 못해 꾹꾹 눌러담았던 분노가. 그런 화가 불쑥 올라올 때 나 자신도 놀라워요. 이렇게 깊숙한 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의 덩어리가. 그것을 차마 풀어헤칠 수 없어서 저는 사실 이사를 하며 도망친 것일지도 몰라요. 현옥 님처럼 거리를 둔 거죠.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소원하지도 않게. 그러나 힘이 되어야할 때 달려갈 수 있는 거리 정도에.


연고 없는 이곳으로 홀로 계약하던 날, 요즘같은 여름날이었어요. 산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왔죠.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 같았어요. 무지막지하게 신맛이 날 것을 알면서도 입에 넣는 아이셔 알사탕처럼, 이사를 왔어요.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결별을 늦게나마 하게 된거죠. 그게 여행의 시작인 것 같아요.


어느새 지금은 그 1년 후의 여름이에요. 처음에는 너무나 신맛의 아이셔 사탕이었지만, 지금은 또 달콤쌉싸름한 맛의 사탕도 맛보고 있고요. 밋밋한 것 같았던 사탕이었는데 안에 초콜릿이나 이국적인 코냑이 들어있는, 우연한 재미가 되는 사탕도 맛보곤 해요.


오늘은 사이 님께 어떤 맛의 사탕으로 기억될까요. 사이님께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같은 맛의 사탕을 하나 건네어봅니다. 음, 이번 것은 슬픔이 살짝 곁들어진, 행복한 풍미가 가득한 사탕이군요. 취향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문득 큰 용기 내었던 동동이처럼 손을 내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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