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나이오트 신년인사
안녕하세요. 나이오트의 하윤상, 심보은입니다.
본래 연말에 송년편지로 인사드리려 했지만 지난 12월부터 예기치 못한 시간들을 지나면서 신년인사로 뒤늦게 마음을 전합니다. 경험과 지식이 여전히 설익었음에도 시간만 흘러 5년 차가 되어 갑니다. 한 해마다 더더욱 깊이 느끼는 것은 결코 일이란 것은 누군가의 선의와 호의와 응원 없이는 조금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리고 그 감사에 보답하는 일이란 결국 ‘역동적인 문제해결 지식생태계를 구축하여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한 저희의 미션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이렇게 긴 글을 적어봅니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 영화 <하얼빈> 중
계절로도 시대적으로도 한파인 시기에 개봉한 영화 <하얼빈>에서 보여주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은 영화배우들의 수려함을 걷어내면 그닥 멋지지 않습니다. 조국 땅 너머에 조직되어 어떤 훈련이나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나라 잃은 설움과 분노만으로 모인 이들은 이방인으로 전전하며 없는 형편 속에 일들을 도모합니다. 그 와중에 사람이 모인 곳이라 편이 나누어지고 오해와 질투, 배신과 타협이 난무합니다. 한 조직이 되어도 해내기 힘든 일들 앞에서 나뉘고 갈라지는 모습들이 가감없이 드러납니다. 실제 독립운동의 현실이 그러했을 것이고, 선조들은 그보다 더한 상황과 역경 앞에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어쩌면 가장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울지 모르는 일제시대의 역사를 계속해서 현실로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가장 캄캄했던 그 시대에, 그럼에도 그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가장 극한에 가까웠던 그 시대에 비하면 나라도 있고 정부도 있고 시민사회도 있는 지금, 하지만 정작 그 시대에 있었으나 우리가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 무언가를 다시금 되찾고자 우리는 그리도 극한과 위기의 역사를 다시 톺아보면서 그렇게 우리의 잃어버린 불씨를 회복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희는 그 불씨를 ‘의(義, righteousness)’라는 한 글자로 명명합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이 그러했고, 독립운동 때의 대한의군이 그러했듯이. 무어라 정의할 수 없지만 모두가 본능적으로 바라고 바라보는 한 방향입니다. 시기에 따라 국난의 극복이 될수도, 주권의 회복이 될수도, 민주주의의 회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거창한 시대정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과 부조리, 도처에 터져 나오는 사회문제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불의(不義)’라고 명명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義)’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의(義)’라는 단어에서 저희가 ‘사회문제해결형 연구’라고 부를 때에 그 단어들의 조합만으로는 미처 다 표현되지 않는 어떤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희가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적 맥락 하에서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라는 생각 또한 가지게 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흔히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터넷, AI, 블록체인을 비롯한 수많은 최첨단의 기술혁신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추동하는 힘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진짜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지는 혁신의 근원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서 산업의 혁신을 꿈꾸고 이루어내는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진짜 중요한 자산은 기술과 사업모델 이상으로 그것을 해내는 ‘창업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기업가정신이 바탕이 된 생태계가 수십년간 고착화된 산업들의 혁신을 이끌어내고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죠.
비즈니스 영역에 비해 공공영역과 사회영역은 훨씬 더디고 지난하다는 느낌을 우리 스스로도 감추기 어렵습니다.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더 큰 수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유입되는 재정은 제한될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안정을 보장할 수 없기에 인력에 대한 유입 또한 마찬가지일테니깐요. 특히 여러 가치들의 상충 속에서 최적의 수를 모색해야 하는 한 차원의 일이 더해지니만큼, 확장과 성공에 초점을 맞추는 사업이 2차원이라면, 3차원에 가까운 일이 공공영역과 사회영역의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일을 해나가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둠 속을 밝히는 불, 공유된 비전입니다. 저 먼 타지에서 자원과 경험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을 모으고 일을 도모했던 힘이 ‘의(義)’라는 공유된 비전이었다면, 그 공유된 비전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우리의 시대에 맞게 확산하고 공론화할 수 있다면 공공영역과 사회영역 또한 비즈니스 영역과 전혀 다른 빛깔을 지닌, 하지만 기업가정신이 비할 수 없는 가슴 뛰는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저희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불을 따라 기꺼이 어둠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갈 사람들과 자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될거라 믿습니다.
구호뿐인 비전은 공허할 뿐입니다. ‘의(義)’를 도모하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간직하고(Integrity), 아직 답을 알 수 없지만 분명 답이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치열하게 문제 앞에서 전념할 때(Grit), 그 비전을 꽉꽉 채우는 사례와 각론, 서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사례와 각론, 서사들을 기록하고, 평가하고, 학습하면서 시공간을 넘어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과 협력하는 활동을 우리는 연구(research)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저희가 지향하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의 실체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사업의 초점은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라는 사람을 향합니다. 결국 의(義)를 품은 단 한 사람이 사회문제에 대한 수동적 대응을 넘어 문제의 해결과 더 나은 현실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선 연구자들의 의(義)를 학습하고 연구하며 계승하고, 우리가 마주한 지난한 현실로부터 의(義)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상상을 통해 의(義)의 현실을 도모하는 모든 활동. 그 활동들이 마음껏 일어나는 커뮤니티이자 생태계를 만들고자 하고, 그 생태계야말로 사회적 난제들의 파괴적 도전에 맞설만큼 야심찬 민주적 비전이 생산되는 요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의 활동은 결국 ‘사람농사를 짓는 활동’에 가깝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가 저희에게 있어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면, 올 한 해는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4년은 저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들이 어떻게 양성될 수 있을지 이제야 조금 감을 잡았고, 함께 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기회들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문제의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증명했고, 미션 중심의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환경 속에서 협업해서 연구할 때에 얼마나 진정성 있고 과감하고 탁월한 연구가 나올 수 있는지를 몸소 경험했습니다. 여러 기관들과 협업했고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시던 여러 혁신가분들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구계획을 넘어 연구완성의 열매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부터 저희는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보겠습니다. 연구탐사대는 부트캠프와 데모데이, 스프린트와 컨퍼런스라는 정기적인 과정을 통해 사회문제해결형 연구를 계획하고 수행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합니다. 그와 동시에 연구자들과의 학습과 협업을 통해 연구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갑니다. 연구공모전에서 검증한 ‘플랫폼형 연구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서 본격적인 ‘사회문제 연구 펠로우십(Solution Research Fellowship)’을 운영합니다. 지자체 및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문제들을 연구하고 해결을 도모하는 사회문제해결형 리빙랩 프로그램 또한 기획을 준비합니다. 더 많은 연구자들과 만나 더 많은 사회문제들을 두고 더욱 치열하게 연구하고 토론하고 기록하고 축적하겠습니다.
어둠은 짙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시대입니다. 칠흑같은 시대의 어둠은 우리 사회를 삼킬 듯 하지만, 연구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장이야말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미지의 ‘어둠’임을 기억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단서를 연결해서 지식을 만들어오던 연구자들과 함께, 의(義)의 마음으로 사회적 난제들에 대한 공유된 비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 불을 밝혀 불을 들고 앞장서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항상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년 2월 6일
나이오트 하윤상, 심보은 드림
“일론 머스크는 민주적 원칙보다 기술적 진보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타협하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사명을 방해하는 사회적 규범과 정부 규정을 고의적으로 무시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다원주의 사회를 하나로 묶는 공유된 가치에 대한 위험한 무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론 머스크의 비전과 규칙 위반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일론 머스크에 대한 반론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일론 머스크의 파괴적인 도전에 맞설 만큼 야심찬 민주적 비전입니다. 현재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및 경제 문제를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내일/미래에 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여기서 기술진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냉소는 우리에게 미래를 선물하지 않습니다.
- 강정수 에디터, <딥시크 충격, 일론 머스크에 대한 냉소, 삼성전자 레인보우 로보틱스> 중(더코어 미디어. 2025년 1월 28일자) 딥씨크 충격, 일론 머스크에 대한 냉소, 삼성전자 레인보우 로보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