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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Oct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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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외눈박이만 있는 곳에서 두 눈을 가진 사람은 비정상이다. 내가 섬기던 한인교회의 성가대가 그랬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같이 멀쩡하게 잘 생기고 학력도 경력도 화려했는데,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칸타타를 준비하는데 인원이 모자란다는 공고가 붙었다. 뜨거운 신앙심에 손을 보태자는 마음으로 성가대 오디션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는데 몇 달이 지나고서야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성가대에 속한 여집사들과 권사들이 유난히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모두 자궁적출술 (hysterectomy)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겁도 없이 임신한 새댁이 제 발로 들어왔으니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백일도 안된 갓 세례를 받은 초신자 주제에 교회에서 기적을 행하고 과분하게 목사와 사모의 귀여움까지 받고 있었다. 자신들이 20년 공들여 세운 제국이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환갑이 넘은 사람들이 합심해 33세 젊은 집사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입에 담기도 힘든 해코지를 하고 소문을 퍼뜨렸고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생긴 아이를 유산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교회에 마지막 인사도 못 드리고 타락천사 루시퍼들이 모인 성가대를 털고 귀국했다.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2주 간 실험을 진행했지만 루비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서재에 세워 둔 초파리 부대에서는 2주마다 계속 루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체 초파리를 루비로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반짝이는 루비를 눈앞에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 스코어가 어떻게 되었나요?”

“8주가 지났고 벌써 256개네요.”

“이 루비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동네에 아는 보석상이 있어 감정하러 들렀더니 구매의사를 보이셨어요. 퀄리티가 좋다는데, 좀 드릴까요?

“일단 네 개를 가져가 교수님과 살펴보겠습니다.”

“관찰하다가 잃어버리거나, 그냥 가지셔도 되니 부담 갖지 마세요. 이렇게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비가 2주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는 말씀이시죠?

"믿기 힘들지만 그렇습니다."

“그럼 저 욕심 내도 되나요?”

"성경에도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구절이 있지요. 선행으로 구원에 이룰 수 없다고 하셨으니 인간적으로 말씀해보세요."

"앞으로도 루비가 이런 추세로 계속 생긴다면 제게도 나눠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지요. MOK 연구원님 덕분에 초파리를 얻었는데 어떻게 모른 척 독식할 수 있나요? 당연히 절반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 준비할 것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 일이라면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초식남은 여전히 내가 어려운 모양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그가 태어났다. 나이가 무슨 훈장이라고, 먼저 태어났다고 한 우물을 오래 팠다고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전공도 다르고, 속한 집단이나 배경도 다르고, 꿈도 다른데, 무슨 서열을 정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었다. 그의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지만, 생명이라면 누구나 늙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닌가. 마흔다섯까지는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이제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잇몸이 약해지면서 치아는 안쪽으로 눕고, 눈물샘이 막히면서 안구건조증이 오는 것은 가벼운 정도이다. 피지선 증식증으로 사라지지 않는 여드름이 생기는 것이었다. 피부과에서는 고주파 레이저와 보톡스 시술까지 권하는데 참 난감하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늙어간다는 것이 이렇게 외로운 것인 줄 예전엔 왜 미처 몰랐을까.    


 결국 교회를 떠나 신앙을 갈구하는 것이 선택지였다. 교회는 세상의 하수구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이 흘러드는 곳이다. 사업에 망한 사람들이 마지막 피난처로 오기도 하고 연예인이 사람을 낚기 위해서 오는 곳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권력의 맛에 대대로 세습하는 목사들도 있다.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은 교회 기여도에 따라 주어지는데 헌금과 기부를 즐겨했던 나는 1년 만에 집사를 받았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처음 그들은 배타적인 행동으로 가시 돋친 말만 골라서 내뱉었다. 그리고 친해지면 간도 쓸개도 내어줄 듯 아첨하다가 피해가 되면 외면하는 식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리도 이율배반적인지 구역질이 났다. 자기는 악을 행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순종을 강요하겠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저 지경이니 다음 세대가 바르게 자랄 리 만무했다. 교육으로 인간을 키울 거라는 착각만큼 오만한 것은 없다. 아이들은 돌보지 않아도 친구들과 동네와 이웃들이 있어 저절로 자란다. 본디 생명이 그런 것이다.


“제가 호칭을 어떻게 불러 드리는 것이 편하세요?”

“팬으로 만났으니 이름을 불러주세요. 정 불편하면 호칭 생략하고 불러도 괜찮아요.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럼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서요.”

“그건 핑계 같은데요. 전 그냥 이름을 부를래요. 오케이?”

“네, 베르니 님!”

“크리스천이라고 했죠? 교회에서 어떤 봉사를 하나요? 그리고 성경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새 신자 환영팀에 있습니다. 가장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한 것 같아서요. 포도주의 기적이라면 예수님이니까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요?”

“과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자면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기도에 은사가 있어 새벽에 기도하면 해지기 전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거든요. 하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집단 새벽기도를 함께 하는데 손에 금가루가 묻어 나왔어요. 믿기 힘들지만 저를 포함해 여섯 명정도가 그 기적을 체험했어요.”

“저도 비둘기나 돈을 꺼내는 마술을 해본 적이 있어요. 물론 눈속임이었지만요. 그런데 믿음으로 생긴 기적이라면 분명 진실이었겠죠?”

“다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도 믿음이 이뤄낸 기적이었죠. 초파리가 루비로 나온 것은 놀랍지 않은데, 루비가 하필이면 초파리 눈과 같은 빨간색이라 소름이 돋았어요. 초파리 돌연변이는 눈이 흰색이라면서요.”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자연산이 루비가 되었다면 돌연변이는 다이아몬드가 될까요? 어떤 새로운 가설을 세워야 할지 벌써부터 두근거립니다.”

“다이아몬드가 항상 루비보다 비싼 건 아니에요.”

“어? 다이아몬드가 더 좋은 것 아닌가요?”

“보석이나 미술품은 절대적인 쓰임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대체 불가능 (non-fungible)한 대상은 희소성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공급이 많아지거나 품질이 나쁘면 가격이 떨어져요.”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군요.”

"하지만 퀄리티가 좋다는 전제하에 공급을 조절할 수는 있어요."


 초식남이 루비 네 개를 짤랑짤랑 들고서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루비가 늘어나면 합당하게 쓸 곳도 생길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 앞에 화수분이 생기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프로그래밍은 보석을 연마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 Lisay G.


 며칠이 지나고 MOK 지도교수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교수이며 교회 장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병선 교수는 <냥이 내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작가로 고양이의 행동 유전학으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다. 김박사넷에서 교수 평판을 조회해보니 베이비부머의 전형, 방송에 얼굴 내밀기를 즐김, 하루빨리 은퇴해야 학계가 발전, 연구비를 본인이 다 독식함, 술자리에서 여학생들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일삼으나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간다는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MOK  년째 지지부진 논문이 통과되지 않고 있었다. 연구원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없다.  교수는 띠동갑 와이프가 제약 회사에 다닌다면서 환심을 사려했다. 하지만 내가 관심 없어하자, 루비를 연구용으로 기증해준다면 MOK 졸업시켜 주겠다는 비겁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앵앵거리는 목소리도 거슬리고 말하는 방식도 무례하기에 단호히 거절했다. 졸업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면 학자로서도 스승으로서도 양심을 저버린 일이 아닌가. 차가운 전화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자산을 맡길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수가 통하지 않자 그는 태도를 바꾸면서 "앞으로 재미없을 겁니다."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대면하지도 않았는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래전 성가대에서 겪었던  비슷하다. 도대체 이번에는 얼마나 강한 상대인 거야?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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