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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Aug 26. 2016

#57. 두브로브니크의 태양이 하는 일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거리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왔다. 체크인을 마치고 밤새 달려온 내 몸에 휴식을 준다. 나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내리 세 시간을 푹 잤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산책 갈 채비를 한다.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며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산책할 생각이다. 감사하게도 한낮보다는 햇볕의 강도가 줄어들고 바람도 분다. 걸으면 조금 덥긴 하지만 푸른 아드리아 해와 두브로브니크의 하늘이 더위를 식혀줄 것이라 믿고 밖으로 나선다.



구시가지 입구에 닿기 전부터 성벽이 보인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막았다. 10세기에 만들어진 성벽은 15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위협에 대항해 더 견고하게 증축되었다고 한다. 총길이는 약 2km이고 높이는 25m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다. 지금은 관광 명소로 사용되는데 성벽에 오르면 구시가지와 아드리아 해를 함께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나는 필레 문 입구를 통해 성벽에 오른다. 우선 한쪽 턱에 걸터앉아 성벽의 구조를 감상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 멋진 풍경을 천천히 누려볼 준비를 한다.          


성벽은 혼잡을 피하기 위해 한쪽 방향으로만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 멋진 공간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푸른 하늘 아래 걷고 있다.





성벽 안쪽으로는 따뜻한 햇살에 반사되어 붉은색 빛을 내는 붉은색 지붕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가득하다. 일어나서 시계 반대방향 대열에 합류한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붉은색 지붕은 실제로 매우 평범했다. 우리나라의 기왓장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작은 집들이 함께 모여 있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 지붕과 환상적인 조화를 나타내는 것 역시 우리가 매일 보는 푸른 하늘이다. 그 둘의 조화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검푸르고 드넓은 아드리아 해이다. 성벽에 올라서 이 세 가지의 조화를 보는 기분은 굉장하다. 상쾌하면서 시원하고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리면 끝없는 수평선을 드러내는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으며, 다시 고개를 돌리면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빛을 내고 있다. 나는 촌놈처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정신을 다시 차린다. 다시 천천히 걷고 천천히 하나씩 감상한다. 잠시 영롱한 조화에 넋을 잃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구시가지의 모습과 하늘과 바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성벽 한쪽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크루즈가 지나간다. 검푸른 아드리아 해를 가르며 지나가는 모습이 그림 같다. 오히려 그냥 바다만 있으면 밋밋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루즈는 아드리아 해에 잘 어울린다.                    





근처 붉은색 지붕의 2층 테라스에 남녀가 보인다. 아래에 영국 국기가 보인다. 숙소에서 바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느끼고 있는 관광객들이다. 두브로브니크를 비추고 있는 태양은 붉은색 지붕을 비춰 지붕이 아름다운 빨간빛을 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검푸른 아드리아 해를 비춰 그 푸르름을 세상에 알리며 푸른 하늘도 이 조화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브로브니크를 비추는 태양은 여러 가지 멋진 역할을 아주 여유롭게 해내고 있는 듯하다.                





성벽 전체를 산책하는데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필레 문에서 시작해서 절반 정도 가면 바다 쪽을 향해 카페가 있다.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음료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기 만점이다. 앉을자리가 없다. 나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흐뭇하기 때문에 마음의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 더 가면 성벽 아래쪽 바닷가에 근접한 카페가 하나 더 있는데 ‘꽃보다 누나’에서 출연자 분들이 갔던 곳이라고 한다. 나는 멀리서 바라봤다. 역시 인기 많은 장소라 많은 관광객들이 보인다. 함께 걷는 관광객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러고는 한쪽에 앉아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분위기를 즐긴다. 나도 종종 쉬어가며 그 분위기에 동참했다.           





한쪽에는 성벽의 진짜 역할을 나타내는 포가 보인다. 바다를 통해 침략하는 적을 향해 있다. 두브로브니크를 지켰던 역사의 역할들일 것이다. 걷다 보니 오전에 갔었던 항구도 발 밑으로 보인다.                





산책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6시 반이다. 8시 반에 해가 지기 때문에 산책을 마칠 때 즈음이면 석양을 볼 수 있다. 이제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붉은색 지붕이 석양에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풍경이 점점 더 익어가는 듯 아름답다. 싱그러운 열매가 알맞게 익어가는 것 같다. 멀리 보이는 물든 석양의 색은 붉은색 지붕과 환상의 짝꿍이다. 구시가지의 붉은색 지붕들이 발산하는 빛이 먼 바다에 도착해서 바다를 물들이는 것만 같다. 내 마음도 알맞게 익어가는 기분이다.                





두브로브니크의 태양은 점점 서쪽 산 너머로 점점 내려가고 있다. 사실 지구가 자전을 하며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내가 서 있는 지구가 태양을 멀리 떠나오는 것인데 괜히 태양이 가는 것 같다. 다른 때보다 더 아쉽다. 두브로브니크의 태양은 마치 하루 동안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한 듯이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갔다. 구시가지의 붉은색 지붕들을 비춰 도시를 감성적으로 물들였고, 검푸른 아드리아 해가 파랗게 빛날 수 있도록 했으며, 하늘이 푸르게 빛날 수 있도록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물들이는 넉넉함까지 베풀었다. 세상을 비추는 같은 태양이지만 두브로브니크의 태양은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태양이 서쪽 산 너머로 멀어질 때는 오늘 내가 할 일을 충분히 해냈으니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하러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넘어가는 해를 보니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태양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의 성벽 산책을 마쳤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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