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봐도 설레는 바다. 비취색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파란 하늘, 솜사탕처럼 피어오른 뭉게구름과 어우러지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샌들을 손에 들고 달리면서 사진을 찍는 것도 바다를 즐기는 방법이고, 튜브 타고 해수욕을 하는 것도 바다를 즐기는 방법이다. 바다의 표면을 즐기는 방법.
에피타이저 같은 바다 물놀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제 메인 요리를 맛볼 차례다. 바다를 깊게 즐기는 방법. 호흡 장비 없이 내 몸을 이용해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이다.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한 호흡으로 얼마나 바다속 깊게 들어가느냐를 겨루는 스포츠. 초보자라도 훈련을 하다 보면 바다속 10M 이내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게다가 제주의 바다는 10월이 가장 따듯하다!)
바다속은 마치 우주 같다. 호흡하지 못하고 중력도 다른 세계. 프리다이버는 우주인처럼 공기통이나 에어 추진력 없이 내 호흡만큼 우주를 유영하고 돌아온다. 무모하지 않게 내 능력만큼 유영하고, 차근차근 이동 거리를 늘려간다.
공기통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나의 호흡이 중요한데 폐활량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힘 빼기'다. 아무리 폐활량이 커도 긴장하거나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산소 소비가 빨라져 호흡이 짧아진다. 좀 더 오랜 시간을 물속에서 여유있게 있으려면 ‘힘 빼기’를 잘 해야한다. 어차피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한 취미인데 쓸데없이 힘주지 말자.
힘 빼기는 긴장 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근육만 이용하고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이완시키는 것이다. 눈도 게슴츠레 하게 뜬다. 촛점을 맞추기 위해 눈 근육에 들어가는 산소도 아깝다. 혹시나 앙 다문 입 때문에 힘이 들어갈까, 턱에도 힘을 뺀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처음에는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는게 좀 더 쉽다. 나무늘보처럼.
도무지 근심 걱정이란 없는 천하태평의 끝을 보여주는 나무늘보의 움직임과 표정을 생각하면서 ‘나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나무늘보다’라고 생각하고 움직여 보자. 느리게느리게. 실제로 나무늘보의 잠수실력은 40분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살지 않는 포유류 중에서는 최고다.
느리고 여유 있는 움직임이 얼마나 큰 효과를 주는지 절실하게 깨달은 적이 있다. 필리핀에서 한달을 머물며 훈련할 때였다. 전날 무리 했던지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음식을 먹기만하면 바로 화장실로 가야만 했다. 심지어 물까지. 모처럼의 훈련할 시간들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까워서 몸부림친지 삼 일째. 다행히 컨디션이 조금씩 회복되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느리게 움직였다.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를 하고, 장비를 챙겼다.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고,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말도 조곤조곤하게 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버디와 함께 나간 바다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느린 마음과 평화로운 바다. 산호가 풍성한 바다를 지나 깊은 수심이 나오는 곳에 부이(튜브와 같은 물에 뜨는 안전 장비)를 세팅하고 하강 라인을 내렸다.
평소에도 몸에 힘을 빼준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안 좋은 컨디션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힘을 빼려고 노력했고,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나무늘보에 가까운 릴렉스를 경험했던 때가 바로 이때다.
줄을 손으로 잡고 내려가는 ‘프리이머젼(FIM)’ 종목으로 연습할 때는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멍한 상태로 나무늘보처럼 한 손, 한 손 줄을 당기며 내려가다 보니 다이빙이 이렇게 편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컨디션 때문에 30M 수심까지만 갔다 오기로 했지만, 30M까지 내려갔을 때 더 깊이, 더 오래 바다속에서 머물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느릿느릿 수면으로 돌아와 회복 호흡할 때, 마음은 부드럽고 따듯한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그래. 이것이 내가 프리다이빙을 하는 이유지.'
그때의 느리고 평화로웠던 경험은 가장 좋았던 다이빙으로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 현지 강사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나의 증상은 몸살이 아니라 ‘뎅기열’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지만, 뎅기열인 걸 알았다면 회복을 위해 다이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제일!
힘을 빼고 난 자리에는 여유로 채워지고 여유는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변화한다. 그 일체감은 마약같이 중독성이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만 있다는 점에서 권할만 하다.
좀 더 바다를 즐길 수 있는 키워드 '힘 빼기'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을 공유한다.
프리다이빙(혹은 다른 스포츠에도 적용될 수 있는) 힘빼는 방법
1. 느리게 움직인다.
프리다이빙을 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천천히 움직인다. 수도하는 고승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 움직이면서 몸의 근육과 관절, 긴장과 이완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동하는지 관찰하자. 바다에서도 처음 다이빙으로 워밍업을 할 때 천천히 움직이면서 몸의 긴장을 관찰하고 긴장된 부위를 찾아서 풀어준다.
2. 긴장과 이완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긴장은 몸과 정신의 긴장으로 나눌 수 있다. 정신의 긴장인 스트레스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와 당신의 정신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느리고 차분한 복식 호흡과 명상으로 집중력을 높이고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연습을 해보자.
육체의 긴장은 근육의 수축이다. 근육의 수축은 당신의 관절을 잡고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산소를 빨아먹는다. 최대한 근육을 이완시키면 작은 파도에도 온몸이 흐느적거린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며 계속 이완해 보자.
3. 편안할 때의 상황을 상상한다.
반려동물을 쓰다듬는 것으로 혈압과 심박이 낮아진다. 반려동물을 쓰다듬는 상상이나, 멋진 해변에서 썬배드에 누워 있는 상상, 좋아하는 느린 템포의 음악 등을 평소에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런 상상은 심리적 방아쇠의 역할을 해 당신을 익숙하고 편안한 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
4. MDR 반응을 유도한다.
프리다이버라면 누구나 MDR(Mammalian Diving Reflex, 포유류 잠수 반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포유류가 깊은 물에 잠수하면 생기는 생체 반응으로 맥박이 느려지고, 혈압이 낮아져서 신진대사가 느려진다. 몸의 혈액이 몸의 중심부에 몰리면서 오래 다이빙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바닷물에 담근 채 스노클로만 호흡해 보자.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어도 익숙해지면 MDR을 유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5.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부드러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집착은 연애에 도움이 안 되듯이 프리다이빙에도 마찬가지다. 목표 수심에 대한 집착은 다이빙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몸을 경직시킨다. 당신이 프리다이빙은 시작한 이유는 몇십 미터를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에서의 자유였다. 무리하지 말고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해 보자. 충분히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물의 흐름에 잘 녹아들어 있는지, 나의 움직임이 물을 거스르지는 않는지.
어느 순간 인간의 나는 없어지고, 물속에서 유영하는 미지의 생명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면 힘들게 훈련한 프리다이빙의 보상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이 글은 <GO OUT> 매거진 2019년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작가의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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