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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의 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최근 발생하는 고교학점제 논쟁을 보며

by 오영호

올해 교육계 이슈 중 하나는 2025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란이라고 본다. 학교,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 분명 준비는 최소 5년 이상 했지만 발생하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2184

그리고 고교학점제 논란과는 별개로 ‘공부의 신’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 ‘강성태’씨의 소위 수행평가라 불리는 ‘과정중심평가’의 문제점 지적도 한몫을 했다.

https://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105071

분명 2018년 아니, 성취수준평가는 2015년 정도부터 시작했음에도 왜 학교 현장에는 혼란만 가중되고 있고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는가?


여기서는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란의 요점과 앞으로의 정책적 방향, 그리고 본인이 속한 표선고등학교처럼 학생부종합전형만이 유일한 대입 창구로 여기는 학교들의 대비방안에 대해서 모색하고자 한다.


1.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본질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쟁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핵심은 단순하다. 대부분의 정책이 그렇듯,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덧대기식 조치가 반복되면 본래의 취지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데 있다. 마치 작은 상처를 감싸기 위해 밴드와 붕대를 무한히 감다 보면, 결국 치료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부위까지 묶어버리는 격이다.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렇다면 고교학점제의 본래 취지와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바로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과목을 이수하고(192학점) 누적된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는 제도로서 요약하면 다음 두 가지로 귀결된다.

1) 학생은 스스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2) 누적된 학점을 일정 기준(192학점 이상) 충족면 졸업할 수 있다.

위의 1), 2)가 고교학점제의 취지이자 본질이다. 그리고 ‘과목 선택권 보장’과 ‘최소 성취수준 보장제도’는 각각 이 두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근본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사회에 대비한 인재 양성”이다. 이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단순 암기력이나 교사 중심의 지식 전달식 수업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귀납적 사고, 학생 주도적 학습, 개념 중심 이해, 삶과 연계된 심층 학습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학습 능력을 기르자는 것이 그 본래 취지다.

결국 고교학점제는 획일화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생의 흥미·진로·역량에 맞춘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인재가 아닌, 개성과 자기 주도성이 살아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 — 이것이 고교학점제의 본질이다.


2. 논쟁 그리고 현실

1) 과목선택과 진로 설계의 괴리

문제는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대학입시가 정해 놓은 ‘패스트 트랙’을 따르도록 사실상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이 과목 선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은 실질적으로 ‘정답이 있는 선택’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대학입시가 개입되는 순간, 고교학점제의 본질인 ‘학생 주도적 선택’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자”는 고교학점제의 철학이, 다시 ‘입시 중심’이라는 구시대적 필터를 통과하는 순간, 제도는 본래의 방향성을 잃는다.


다시 위에서 제시한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본질'을 되돌아보자. 과목 선택권은 '미래 사회를 대비하자'라는 고교학점제의 본질적 특성인데 '입시'가 들어오는 순간 그 취지는 퇴색되어 버린다. '인공지능이다, 4차 산업혁명이다, 불확실성이다'라고 떠들어 놓고는 대학입시라는 새로운 필터로 모든 것을 조망하는 순간 우리는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를 갖고 다툴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과연 SKY, 인서울, 의치한약수 등의 입시 개념이 여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2) 최소학업성취수준보장지도

이른바 ‘최성보’로 불리는 책임교육은 공교육 체계 안에서 실현 가능한가?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상위권 중심의 입시 체계에 맞춰져 왔고, 하위권 학생에 대한 지원은 형식적이거나 일시적이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이러한 구조를 깨고 ‘모두를 위한 책임교육’을 실현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제는 책임교육인데 기초학력 혹은 최소성취수준에 미도달한 학생들을 위한 지도가 교사의 책임인가? 아니면 스스로 하지 못한 학생 책임인가? 혹은 그런 자녀를 길러낸 학부모의 책임인가? 즉 낮은 학업성취의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야 책임교육도 제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낮은 학업성취도는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그것을 학교 교육, 또는 선생님들의 지도만으로 아주 짧은 시간(한 학기 20시간 내외) 안에 좋아질 수 있을까?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단계에서는 보충 지도를 하지 않고 9년간 누적되어 있던 능력 부족을 한 학기 20여 시간으로 극복가능한 거였다면 애초에 그럽게 쉽사리 과목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교사에게 과도한 행정 부담만 남기고 실질적인 학습 회복은 어렵다.


대학에서의 재이수 과정도 방학 때 엄청난 집중이수를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하물며 고등학교에서도 어느 정도는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최소한의 노력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은 교사가 상전 받들 듯이 모든 것을 떠먹여 주며 더 노력하고 있는 모양새이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냥 행정적 낭비로만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약 20여 년 전에도 이와 같은 제도가 있었다. 7차 교육과정 도입 당시 본인 역시 중학교에서 영어 학업성취 수준이 낮은 학생들을 방학 때 모아 놓고 이수 못하면 동생들하고 같이 학교 다녀야 한다는 협박과 햄버거와 음료수로 달래 가며 20시간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간단한 영어 인사와 회화 연습 그리고 팝송 등을 지도하며 영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 결과 어땠을까? 그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또 보충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시행 1-2년 만에 사라졌다.


결론은 간단하다. 고교학점제의 애초 취지를 살리면 된다.

졸업할 수 없게 만들도록 했었던 취지 말이다.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리고 학교는 그 학생에게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여 학생이 진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되, 그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하며 지금처럼 학점당 3시간 내지 4시간을 곱하여 계산하여 총 이수시간을 정하는 등의 행정적 사항을 대폭 완화시켜야 한다. 학교도 그 학생들이 학업에 열의를 갖고 친구들과 함께 졸업시키고 싶어 하기에 그러한 행정적 족쇄로 교사를 옭아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에 이수를 못할 것 같다면 대학교처럼 학교 내뿐만 아니라 학교 밖 시설에서 재이수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여 3학년이 되어서도 늦게나마 학업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1학년 때의 미이수로 인해 졸업에 대한 희망을 바로 포기하고 자퇴할 테니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고교학점제 연수에서 지겹게 들었던 학습자 주도성 교육이고 자율과 책임교육이다. 물론 우리나라 정서상 유급제도에 따른 나이대가 다른 학생들이 한 반에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교육부도 이 부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틀과 관습에서만 머물러 현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면 미래 교육은 없을 것이다.

책임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스스로의 학습에 책임을 지는 구조”에 있다. 학교는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하되, 학생이 그 기회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재이수나 방학 집중이수, 학교 밖 학습시설 활용 등 유연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행정적 통제보다 자율과 책임의 균형이 중요하다.


3) 5등급 산출에 따른 변별력 문제에 대한 불안감

이 문제는 고교학점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고교학점제에 따른 새로운 내신 제도를 적용받는 현재 1학년 학생들의 문제와 연관되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새로운 5등급제 내신 평가 방식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큰 불안감을 주고 있다. “등급이 줄면 경쟁이 완화된다”는 연구자들의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상위 등급의 비율이 극소수로 줄어들며, 내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다만, 고등학교 3년 동안 대부분의 과목을 상대평가로 치러야 하는 현재의 고1 학생들은 기존 2015 교육과정 세대의 고2, 고3학생들보다 더욱 치열한 내신 경쟁에 내몰려 5등급제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변별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경기도, 부산 진로진학교사 협의회 등에서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 일부 샘플이긴 하지만- all 1등급은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제도 시행 전에는 최소 7~9% 가까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하였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1~2% 대에 머물고 있다. 아마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서로 내신을 나눠서 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제주 역시 위의 통계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경쟁 완화를 내세웠던 5등급제가 변별력이라는 대입 요소의 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경쟁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들은 학생부 종합에서도 수능 최저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2027 대입(현 고2)에서 성균관대, 중앙대 등의 일부 대학들의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기존의 관행-학생부 종합은 주로 서류와 면접으로 평가를 했었다-을 뒤엎고 수능 최저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2028 대입을 대비하기 위한 초석으로 보인다. 즉, 2028 대입에서의 학생부 종합전형은 어느 정도 수능 최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특히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서울의 15개 대학인 경우). 경희대 또한 올해 발표에 따르면 일부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수능 최저 도입을 선언하였다.


결국 내신과 수능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4) 2028 대입 제도에 대한 예상

IB(국제바칼로레아)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으로 진학 지도를 해온 표선고와 같은 학교는, 2028 대입제도 변화에 따라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수능 중심 요소가 다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와 정시가 점차 통합되는 구조 속에서,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수능 최저가 요구되고,

정시전형에서도 내신 반영이 이루어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 변화는 “수능을 준비하지 않는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표선고처럼 수능 대비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는 학교는 학생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중3 학생들은 일반고 진학이 유리할까? 아님 자사고 혹은 특목고 진학이 유리할까?

이것만은 확실하다.

수시와 정시의 통합형태가 일반화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수시전형 중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수능최저를 요구하게 되면서 수능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정시에서는 수능 100% 반영의 비율이 감소하고 학생부 교과세특 반영 등을 통해 내신과 수능점수의 합산에 따른 내신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이로 인해 현 고1 학생인 경우는 재수하거나 검정고시로 보게 될 경우 자칫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다. 왜? 정시에서도 내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내신을 망치면 패자부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내신을 버리고 정시에 올인하고 있었던 기존 자사고 및 특목고에서의 상당수의 학생들은 다가올 제도에서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현재 중학생들인 경우 특목고 및 자사고 진학에 관심이 있다면 그 학교에서 최소 2등급 초반(5등급 기준)을 받을 각오가 필요하기에 일반고 진학이 유리할 수 있다. 이는 과열되어 있는 표선고 입학을 고민하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그 어느 때보다도 내신의 중요도가 상승했다는 점이 2028 대입의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3. 본질로 돌아가야 산다.


고교학점제의 본질은 “학생 주도적 선택과 책임”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입시 중심’, ‘행정 중심’, ‘형식적 책임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학생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교육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부는 단기적 지표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말고,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실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 역시 “모든 학생을 같은 속도로 끌고 가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속도를 인정하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앞에 자리 잡은 미래 사회는 정답을 암기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는 자의 시대이다.
고교학점제의 성공 여부는 입시에 따른 제도 설계가 아니라, 학습자 주체성을 확보하여 평생 교육자 양성이라는 본질로 돌아가려는 교육의 용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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