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시민단체들 '어처구니 없다' 반발
그동안 전국에서 벌어진 전세사기로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이 사건 초기 정부의 대응은 마치 개인 문제라는 듯 안일했고 절망에 빠진 이들의 극단적 선택이 줄을 이었다. 피해자들의 '호소'는 '절규'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최대의 현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의 울림이 되어 정부와 지자체, 각계의 피해 방지 노력으로 미흡하나마 각종 지원책도 마련됐다. 그런데 12월 2일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을 앞두고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가 여야 합의로 증액한 전세사기 피해자 최소지원금 예산 1,000억 원, 통합공공임대주택 예산 2,273억 원을 반대하는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기획재정부, 여야 합의에 반대 입장 표명
이 예산은 없던 예산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있던 예산에서 증액된 부분이다. 대립으로 치닫던 여야가 보증금조차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최소한 제공해야 할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합의한 예산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 11월 24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 내 '소소위'를 가동하며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당초 논쟁거리는 여야 간 견해차가 큰 대통령실 특수활동비와 인공지능(AI) 관련 사업 예산 등이었다. 그런데 기재부가 갑자기 전세사기 최소 보장과 공공임대주택 예산 증액에 반대하고 나선 것.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한 부처 단위에서 나온 이 반대 의사는 새 정부의 전세사기 의지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시민단체들이 '어처구니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난 11월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재부의 무책임한 예산 증액 반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여야가 합의로 만들어 낸 최소한의 안전망을 기재부가 거부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국정과제를 뒤집는 행위이자 서민을 외면한 무책임한 태도"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전세사기 없는 사회'를 약속했는데 기재부가 예산 증액을 가로막는 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기재부가 선출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의결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기재부 반대에 막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정상인가. 기재부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의결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김가원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처장도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할 때부터 기재부는 가장 비협조적인 부처였다"며 "세입자는 보증금 떼먹는 임대인과 싸우기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비협조적인 정부 부처를 상대로도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도 "기재부가 통합공공임대주택 예산 2300억 원 예산 증액에 제동을 걸고 있다. 여야가 국토위에서 통합공공임대주택 예산 증액에 합의한 것은 과거 윤석열 정부의 대규모 삭감으로 무너진 주거 안전망을 복구하고 전세사기·기후재난·주거비 폭등 속에서 생명·건강·재산을 위협받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기재부를 규탄했다.
지난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이후 LH가 일부 피해주택을 매입해 피해 복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LH가 매입하더라도 피해 복구율은 0%에서 100%까지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매 차익이 적은 가구는 다른 집을 구할 여력이 없어 장기간 피해 주택에 머물러야 하고, 학업·취업·결혼·출산 등으로 이주가 필요한 피해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들은 "최소지원금은 피해자들에게 너무나도 절실한 마지막 안전망"이라며 "기재부가 전세사기 최소지원금 예산과 공공임대주택 예산 증액에 즉각 협조해야 한다. 국회 또한 여야 합의로 마련한 증액안이 반드시 반영되도록 책임 있게 역할을 다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