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은둔·고립 청년 지원사업 참여 청년들의 특별한 콘서트
"나의 분신 같던 섬이여 안녕. 애달픈 인사지만 이젠 보내야 할 시간. 떠남은 곧 잃어버림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해도 나는 멈출 수 없어.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어야 해...(오랜 멜랑콜리아, 단 꿈꾸는 제로 작사)"
"내일 날씨는 건조하면 좋겠어, 너무 습하면 지치기만 하니까. 그냥 늘 그렇듯 새로운 하루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제처럼...(나와 밤과 방, 저녁의 식집사 작사)"
"길 잃은 청춘이여 고개를 들어. 네 안에 아직 꺼지지 않은 별이 있어. 혼자가 아니냐 우리의 외침이 서로의 불이 돼...(지금이 나의 순간, 작곡하는 한량 작사)"
지난 4일 오후 4시, 서울 은평구 소재 '이호철 북콘서트홀'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Out of the Frame, 고립을 넘어 연결로'라는 제목이 붙은 이 콘서트는 고립돼 은둔하던 청년들이 서울 은평구가 올 한 해동안 추진한 은둔·고립 청년 지원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나누고 자신들이 만든 자작곡과 자작랩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청년 토크 콘서트였다.
'단 꿈꾸는 제로', '저녁의 식집사', '작곡하는 한량'은 이 은둔·고립 청년들의 닉네임으로, 이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방에 갇혀 지내온 시간 속에서 자신들이 느끼고 되낸 마음을 가사로 직접 만들고 곡도 붙였다.
'단 꿈꾸는 제로' 청년은 북콘서트홀을 찾은 대중들 앞에서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일일이 소개하고 또 틀어 들려 주었다. 이들에겐 이 자체가 한걸음 다가선 도전이었고 용기였을 것이다. 한 청년은 직접 자신이 만든 자작 랩을 직접 MR반주에 맞춰 작은 공연도 선보였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방에 갇힌 청년의 용기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였다. 한국임상연극심리치료협회의 즉흥치료연극도 이어졌다. '내가 외롭다고 느꼈던 그날'을 주제로 은둔·고립 청년 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사연을 받아 그들의 마음을 즉석에서 연극으로 표출해 청중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는 서울 은평구의 노력이 컸다. 은평구는 서울 최초로 '돌봄복지국'을 신설해 그 산하에 통합돌봄과 고독대응팀을 만들어 은둔형 외톨이의 일상 회복과 원활한 사회 복귀 지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번 청년 토크 콘서트는 은평구와 녹번·신사·은평 종합사회복지관, 서울청년센터 은평,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함께 진행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다
(관련 기사 : "은둔고립 청년 돕겠다"... 은평구 민관협력의 빛나는 '맞손').
담담히 고백한 고립과 극복의 여정
닉네임 '단 꿈꾸는 제로' 청년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지난 여정을 담담히 고백했다. 자신을 카메라 뒤에서 쉴 새 없이 뛰고 소리치며 움직이는 프레임을 조각하던 사회인이었다고 소개한 이 청년은 "희귀 난치병인 폐동맥 고혈압(PAH) 진단을 받으면서 평지에서조차 숨이 가빴고 길 위에서 쓰러짐을 반복하면서 '죽음'의 공포가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며 은둔·고립 과정을 설명해 갔다.
'단 꿈꾸는 제로' 청년은 코에 끼고 사용하는 비강 캐뉼라(Nasal cannula)를 착용하고 무대에 섰다. 산소포화도가 낮아질 위험을 막기 위해 저유량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장치다. 방에 갇힌 '단 꿈꾸는 제로'는 지난해 은평구의 한 주무관의 안내로 작은 용기를 냈다고 한다. 속으로는 '내 집이 가장 안전할 텐데'라고 걱정이 됐지만 자신의 아픈 몸 상태를 보고 "괜찮아요, 당신의 속도에 맞춰서 가요"라고 말해주는 주무관의 말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병원 외에는 나가지 않던 이 청년은 낯선 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변화를 맞이했다. 자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개인 특성에 맞춘 맞춤형 '콘티'를 짜듯 신중한 프로그램에 신뢰도 갔다. 거기서 사회 속으로 다시 발을 디딜 용기를 얻었다고 '단 꿈꾸는 제로'청년은 차분히 설명했다.
'단 꿈꾸는 제로' 청년은 현재 은평구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방이 세상의 전부가 된 것처럼 느끼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한다. 당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위대한 미완성 영화다. 당신을 위해 기꺼이 조명과 스태프를 준비해 줄 '청년 UP' 프로그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용기를 내 한 걸음 내디뎌 보라. 당신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은둔'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길"
이 자리에는 동행 활동가로 이들과 함께 한 추병진씨의 소감 발표도 이어졌다. 추씨는 "동행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두 청년을 2주에 한 번씩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 주었고 저 역시 제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갔다. 이들도 다른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점은 같았다"고 회고했다.
추씨는 "그들이 '고립'이나 '은둔'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고 청년 당사자로서 자기만의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만남과 소통이 계속되면 좋겠다. 지금도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자기 마음을 타인에게 열어본 적 없는 청년들이 지역 곳곳에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안전한 자리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고 기꺼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청년들의 가족들에게도 "많이 응원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하면서 '청년UP' 사업을 통해 동행 활동가를 양성하고 고립·은둔 청년의 일상으로 직접 찾아가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나서 준 공무원들과 관련 기관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은평구는 내년에는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 뿐 아니라 부모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지원 프로그램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성미숙 은평구 통합돌봄과장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은평구 거주 19세에서 39세 청년을 대상으로 외로움 및 고립 위험 실태를 조사하고 이후 총 256건 상담을 진행하였으며 20명에게 서비스를 연계했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집이나 방안에 갇혀 홀로 자신과 싸우고 있는 수많은 은둔형 외톨이, 은둔·고립 청년들이 닫힌 방문을 열고 세상과 호흡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