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인생에서 첫 번째 '닮고 싶은 녀석'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도시는 인근 7~8개 군소도시에서 진학하는 교육도시였다
비평준화 입시를 거쳤고 고입인데도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다
대여섯개 남고가 있던 도시에서 우리 학교는 중간 정도였지만 장학생 제도로 인재를 모았다
너는 한 학년에 4명에게만 주어지던 최고 수준의 장학생이었다
나는 그 아랫단계라 우리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우린 같은 반, 같은 기숙사 방이었기에 자연스레 친할 수 있었다
너는 바닷가에서 왔고 나는 산골에서 왔다
너의 말은 둥글고 늘어지지만 내 말은 각이 지고 빠른 편이었다
너는 네가 자라온 남도의 바다같았다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그 바다처럼 진취적이었고
축구를 할 때면 파도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농담을 잘 하고 잘 웃던 네 웃음은,
여드름 자국 가득하던 설익은 사내답지 않게
바닷가 바위에 부서져 빛나는 햇발같았다
너는 '떼보'였고 나는 '꼬쟁이'였다
전교에서 제일 작은 우리반 1번이 지어준 별명이었는데
우리의 생김새나 성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너는 1번의 발상이 웃기다며 기꺼이 떼보가 됐고
나는 수용 안 하면 쪼잔한 놈이 될 것 같아 받아들였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1번은 '줘털'이었다
이또한 1번과 별명의 연관성은 제로였다
그때 우리는 이런 별명을 짓는 게 유행이었다
마치 누가 들어도 치욕스럽고 얼굴 붉힐 단어들을 늘어놓고 하나씩 붙여내는 것 같았다
첫 중간고사에서 너는 전교 2등을 했다
우리 반은 우등반이었기에 다들 출신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패배감에 고통스러워 했다
2등 성적표를 받은 네게 물었다
"혹시 1등 하고 싶었냐?"
너는 웃으면서 "저 1등은 인간이 아냐. 내가 기숙사에서 쟤 보면 늘 자거나 만화책만 보더라고. 근데도 1등을 하는 놈이야. 저런 놈은 못 이겨."
그러는 너도 잠이 많은 놈이었다. 수업시간에도 잘 졸고 기숙사에서도 늘상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너도 외계인 정도는 되는 놈이었다.
우린 같이 공부하고 같이 축구하고 또 같이 비행하면서 친해졌다
너는 천재라서 수업시간에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시험을 치렀다
나는 너보다 배는 공부하면서 그저그런 성적을 받았다
그러니 공부가 재밌지 않았고 축구하고 만화책 보고 놀러다니는 게 좋았다
우린 야자 때 '짱', '열혈강호', '상남2인조' 등을 돌려봤고
그마저도 재미 없으면 볼링장으로 도망쳤다
저녁에는 야자 전까지 30분 자투리 시간에 근처 상가에 가서 순대도 먹고
예쁜 농협누나와 노가리 까는 게 즐거움이었다
너는 아주 이뻤던 누나에게 빠졌고 나는 재밌는 누나에게 빠졌다
돌아오는 길에 서로 자기 누나가 더 예쁘다고 투닥거렸지만 그때 우리 가슴에는 사랑보다 우정이 더 농익고 있었다
공부도 축구도 성격도 얼굴도 모두 너는 나보다 우위였다
그래서 나는 너를 닮고 싶었다
기숙사에서는 선배들이 가끔 집합을 했다
규율을 지키지 않았거나 행실이 불량한 애가 있다거나 아니면 짱의 기분이 별로거나 일때 옥상에 모여야 했다
중간고사 후 어느 방에서 술병이 발견됐다
J군 출신 애들이 많던 방이었는데 너도 같이 먹은 것 같았다
선배들은 대여섯 명의 주동자들을 세워놓고 펀치볼 때리듯 가슴에 주먹을 날렸다
선배들 중 대장이었던 L이 너를 열외시켰다
네가 G군이었고 지나가다 잠깐 들러 술자리에 꼈던 터라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보다 L이 너를 동생처럼 아낀다는 걸 누구나 알았기에 우린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L에게 "저도 같이 마셨으니까 맞겠습니다."고 했다
L은 네게 무서운 눈으로 당장 방으로 내려가라고 했고 덩달아 주동자 대여섯만 남고 우리들도 내려올 수 있었다
점호시간을 앞두고 청소하는 중이었다
나는 화장실 담당이었는데 화장실 안쪽에서 너와 L이 투닥거리고 있었다
너는 형이 열외를 시켜서 자기를 더 곤란하게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형은 너 맞는 걸 어떻게 보냐고 토닥였다
너는 잔뜩 성난 얼굴로 나를 지나쳐갔다
잠깐 마주친 눈에서 일진들에게 간택 받지 못한 '우리들'에 대한 미안함도 보였다
그때 나는 너를 닮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6월 어느날 담임이 '통일'을 주제로 논술대회가 있으니 야자 끝날 때까지 A3 원고지를 채워내라고 했다
글이라면 자신이 있던터라 나도 의욕적으로 펜을 잡았다
너는 야자 시작부터 자더니 8시쯤 일어났다
눈 앞에 놓은 원고지를 가만 보더니 밀린 숙제를 하듯 써내려갔다
내가 꾹꾹 펜을 눌러 도자기를 빗듯 글을 썼다면
너는 붓을 휘갈리듯 써내려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과거시험의 답을 알고 답안지를 채우는 선비처럼 보였다
너는 그 글로 도지사 상을 받았다
나는 글에서마저 널 이길 수 없다는 것에 쓰라린 열패감을 느꼈다
방학식하던 날
점심시간 후에 교실로 들어오던 나를 네가 반갑게 불렀다
교지에 내 글이 실렸다며 방금 읽었노라고 말했다
"아침 해가 마당부터 현관까지 혓바닥을 길게 뻗었다"
이런 구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표현이 놀랍다며 너는 부산스럽게 날 칭찬했다
친구들이 몰려들기에 나는 민망해서 자리를 피해버렸지만 교실 뒷문에 서서 한동안 네 얼굴을 바라봤다
애들에게 내 글을 읽어주는 네 얼굴에는 질투도 멸시도 열패감도 없었다. 기쁨만 가득했다
여름방학에도 우린 기숙사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방학인데 공부가 될리 만무했다
그러니 우리들은 어떻게든 사감 눈을 피해 놀러갈 생각만 했다
그러다 보니 너는 선배들과, 잘 노는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렸다
선배들은 돈도 있고 기숙사를 빠져나갈 방법도 많았고
잘 노는 친구들은 네게 술자리나 미팅처럼 달콤한 제안들을 했다
기다리던 만화책의 다음권이 나왔는데 너는 보이지 않았다
축구하자고 할랬더니 너는 선배들과 카드를 하고 있었다
볼링 치자 말하고 싶었는데 너는 당구장에 있었다
그때쯤 너는 농협누나에도 흥미를 잃고 매일 공중전화를 붙들고 소개 받은 여학생과 통화를 했다
네가 밤을 세울 이유는 많았고
줄어든 밤만큼 수업시간에 잠을 잤다
너의 그 해 여름은 빠르게 흘렀다
2학기가 됐는데도 너는 마음 잡지 못했다
여전히 너는 밤마다 바빴고
수업 때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어느덧 너는 졸았다고 제일 많이 맞는 학생이 됐다
쉬는 시간마다 나와 줘털은 네게 정신차리라고 일갈했지만
우리의 쓴소리는 너의 달콤한 낮잠에 흠도 내지 못했다
결국 너는 2학기 중간고사에서 6등을 했다
너는 담임과 기숙사 사감에게 불려가서 한참 혼났다
며칠간 너는 심각했기에 나도 말을 걸 수 없었다
뒤늦은 너의 한랭전선은 주말에 선배들과 밤을 보낸 후 소멸했다
너는 다시 한 여름밤의 꿈으로 돌아갔다
10월 어느날
특별활동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너와 나는 영화반이었는데 너는 오지 않았었다
교실로 돌아오니 네 자리는 비어있었다
잠시 후 너는 샤워를 한 듯한 젖은 몰골로 들어섰다
곁에는 같이 젖어있는 애들 몇이 있었다
걔들은 우리반이 아니었는데 네가 밤 유희를 하면서 친해진 애들이었다
너는 내 자리로 오더니 축구화를 내려놓았다
내 축구화였다
"뭐야?"
-"갑자기 애들이 축구하자고 해서 좀 신었다"
"왜 말도 없이 가져가?"
-"네가 자리에 없어서 말 못했지. 전에 너 없을 때 신었어도 네가 별 말 안 해서 괜찮은 줄 알았지."
"괜찮은 게 어딨어? 이렇게 더러워졌는데."
-"화났어? 미안하다. 네가 있었으면 허락을 구했을 건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더 말을 뱉을 수가 없어서 교실을 나와버렸다
그 후 나는 너와 마주치기 불편했다
너랑 말하는 게 싫었고 네가 웃는 것도 보기 싫었다
너는 몇 번 내게 말을 걸었으나 내 한랭전선을 무너뜨릴 열기는 없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영역에 닿지 않고,
레일을 달리는 기차바퀴처럼 시간을 달리기만 했다
무려 7년을 그렇게 달렸다
그 사이 줘털과 여러 친구가 화해의 다리를 놓기도 했지만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너는 결국 나와 비슷한 수능 점수를 받았고
나는 서울로, 너는 수원으로 대학을 갔다
서울로 진학한 친구들끼리 일년에 두어 번 만났는데 네 얘기가 들려왔다
강의실보다 당구장에 더 있다고
2학기 때는 아예 학교를 안 나가고 있다는 말도 들렸었다
그런 너를 21살 11월에 만났다
턱이 컸던 고딩 친구 '투턱'의 입대일 전날이었다
나와는 중학교 동창이기도 해서 그 친구가 의정부로 입대하기 전 날 나를 찾아왔다
그때 너도 같이 왔다
우리 학교 근처에서 셋이 술을 마셨다
나는 입대를 3학년으로 미뤘고 너는 1월에 공익을 간다고 했다
포장마차에 드는 웃풍보다 서늘한 분위기였다
술이 꽤 돌자 투턱이 결국 말을 꺼냈다
"느그는 진짜 징하다. 벌써 4년을 말을 안 하냐. 안 답답하냐? 느그 친했잖어? 대체 뭐 때문인디?"
투턱이 따지듯 물었지만 우리 둘 다 말을 하지 못했다
답답해 하던 투턱이 소주를 더 들이 붓고 입대전야의 한숨까지 더해 포차의 습도를 올렸다
그날 우린 끝까지 말을 안 했다
다음날, 투턱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잘못하면 입대를 못할 정도로 지각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간다"고 짧게 내뱉고는 튀어나갔다
얼떨결에 잠에서 깬 너는 씻었고 나는 담배를 물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던 너는 "간다"하고 떠났다
내가 네 뒤통수에 인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제대를 하고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를 "떼보야"라고 부르고 너는 "꼬쟁이 새끼, 군대 짬밥이 좋았나보네~"라고 날 놀릴 것 같았다
제대하고 한강이 보이는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집들이를 하자며 투턱이 너와 동창 대여섯을 데리고 왔다
나는 옥탑에 나무 테이블과 나무 의자를 놓고 제법 빠처럼 꾸며뒀었다
우린 한강 야경을 보며 삼겹살과 소주, 불족발과 막걸리를 먹었다
한강뷰가 마치 성공의 증표인양 우리 모두를 들뜨게 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투턱이 말을 던졌다
"근데 떼보랑 꼬쟁이는 언제 화해하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와 나는 크게 웃었다
신기할 정도로 큰 턱에서 뜬금 없는 질문이 나오니 웃겼다
나와 나는 각자의 기억을 무기로 폭로전을 펼쳤다
니가 내 사과를 안 받았느니, 내가 매점 같이 가자고 했는데 니가 쌩깠느니...
그런 증빙 안 되는 유치한 폭로를 쏟아냈고
친구들은 우리 둘을 모두 나무라며 "징한 것들"이라 손가락질 했다
그날은 친구들의 손가락질도
투턱의 쓸데없는 오지랖도
너의 동의 못할 폭로들도
한강을 반이나 가린 하이페리온도
강에 비친 가로등을 흔드는 물살도
모두 용서가 됐다
바다에서 자란 너는 강물처럼 고요하지 못했다
너의 생은 고달팠다
대학 때 잠수 탄 건 이교도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이교도에서 탈출하자 다단계가 덫을 놓고 있었다
학교는 중퇴하고 너는 인천 공장을 전전했다
기술이 없으니 써주는 곳에 찾아다녔다
그러다 붕어빵 반죽과 앙금을 생산하는 공장에 다녔다
반죽과 앙금을 인천과 부천 곳곳에 납품하며 다니다 빵 굽는 여자와 연애도 했다
그 여자를 우리 옥탑방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오기 전에 전화로 먼저 "나이는 7살 많은데 엄청 동안이라 우리보다 어려보여."
내게 나타난 7살 연상은 "이모", "아줌마" 어떤 호칭이든 찰떡이었다
너는 그날 술이 취해 여친에게
"아 왜 오늘따라 옷을 이렇게 입고 왔어? 우리 00이 초섹시 귀염둥이인데 오늘 왜 이렇게 입고 왔어?"
라고 주절댔고 이모 여친은 그제서야 우리보다 어려보이게(?) 수줍어 했다
다시 몇 년 지나 너는 투턱의 소개로 늦게서야 기술을 배워 반도체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너는 이모 여친과 헤어졌다
집들이에 와서 너는 내 아내에게 "이놈은 한 번 삐지면 7년을 말을 안 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아내는 설마 그런 남자가 있냐며 의심했지만 그런 남자와 산다는 걸 결혼 3개월만에 알아챘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또 낳고 키우고
그러다보니 너나 투턱이나 거의 못 보고 살았다
몇년 전 네가 서울에 왔다고 해서 저녁에 봤다
여자친구 병원 진료 때문에 왔던 건데 여친은 이유 없이 극심하게 아픈 통증을 겪고 있었다
아픈 여친은 네게 집요한 집착을 하고 수시로 화를 낸다고 했다
어르고 달래고 모든 스케줄을 여친에게 맞추고 사는데 매일 욕받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왜 만나?"
-"나때문이야."
여친과 술을 먹고 다투다가 여친의 손을 뿌리쳤는데 여친이 넘어지면서 이후부터 통증이 시작됐다고 한다
잇몸을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고 생니를 집게로 뽑는 듯한 통증이라는데
치과도 신경외과도 어떤 과에서도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너는 그 친구의 욕받이를 5년 넘게 했다
그 사이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했고 너는 바보같은 벌을 스스로에게 내리기도 했다
작년, 친구의 기일에 우리 둘이 납골당에 먼저 도착해 여친의 안부를 물었다
여친이 먼저 헤어지자고 해서 헤어졌는데 여전히 일주일에 두어번씩은 만나서 밥 먹는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가족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래도 너는 밥 사주고 용돈도 줄 수 있다고 했다
'너의 그런 근성과 믿음이 우리의 7년을 아무 것도 아닌 시간으로 만들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네게 "고생했다." 하고 "이제 너도 좀 가볍게 살아라."고 했다
다시 일년이 지나 지난 7월 장마 속에 너를 만났다
안주를 하나씩 시키자고 하고 나는 두부김치를, 너는 오뎅탕을 골랐다
멸치볶음과 미역줄기가 반찬으로 나왔다
미역줄기를 하나 집어 먹던 너는 "나 이거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먹네."라며 소주를 털어넣었다
혼자 산다고 대충 먹지 말고 그런 건 동네 반찬가게에 다 있으니 사서 먹으라고 했다
너는 "내가 뭘 잘 안 먹어."라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네 눈이 전보다 깊고 볼이 패였다
너 지금 몇 킬로야?
내 물음에 넌 웃으며 지난 6개월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랑 키가 비슷하지만 호리했던 너는 65킬로 정도를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작년 연말 네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
반도체 불황이 심해 이직이 어려웠다
매일 같이 소주 2~3병을 먹었다고 한다
밥은 커녕 안주도 제대로 안 먹었다고 한다
5월 어느날 일어서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지만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그때 몸무게가 54kg이었다고 한다
며칠 병원에서 회복하고는 그때부터 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술을 놓지는 못했다
병원에서 간검사를 했는데 불행히도(?) 간 상태가 무척 좋았다
너는 '좀 신경쓰면서' 술을 먹으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너는 이제 소주 한 병만 먹는다고 한다
안주도 챙긴다고 한다
소주 한 병에 구운계란 한 알
그걸로 어떻게 안주가 되냐고 물으니
한 알 이상도 필요 없다며 한 잔 먹고 한 이빨 깨물면 한 알로 10번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이제 취업해 돈도 벌면서,
국밥도 있고 고기도 있는데 왜 계란이냐고 했더니
집에서 간단히 먹기에 좋고 치울 것도 없어서 편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뭐든 잘 '안 먹힌다'고 했다
우린 그날 4차까지 술을 마셨다
매 술집마다 안주 2개씩 총 8개를 시켜먹었다
아내 처갓집 찬스로 우리집에서 같이 잤다
잠이 안 와서 술을 먹는다더니 모처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너는 잘 잤다
혹시나 목이 말라서 깰까 물 한 잔 옆에 두고 방을 나왔다
다음날 해장국을 마시며 해장술을 또 먹었다
집에 와서 같이 영화를 한 편 봤다
고1 영화반 때 너는 액션을 좋아했고 나는 멜로를 좋아했었다
우린 <범죄도시1>을 봤는데 넌 잠들었다
씻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며 나섰다
집앞에 추어탕 잘하는 집이 있으니 먹고 가라고 했다
너는 국물을 떠먹더니 소주를 시켰다
먹어본 추어탕 중에 제일 맛있다며 감탄을 마다하지 않았다
올해 한 끼로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이라며 히죽 웃었다
바닥까지 긁어먹고 누룽지마저 흡입한 나는 네가 더 가엽게 느껴졌다
너를 보내고 나는 줘털에게 전화를 했다
고등학교가 있는 도시에서 사는 줘털도 너처럼 싱글이지만 항상 네 걱정부터 한다
우린 잠깐동안, 몸 망가지게 막 사는 떼보를 욕하고
또 잠깐동안, 그래도 떼보는 잘 살 거라고 안위하고
아주 잠깐, 연락 좀 자주 하라고 서로를 욕하고 끊었다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쇼파에 앉아 노을을 기다릴 때
집에 간 떼보에게 톡이 왔다
괜한 걱정이었네. 떼보는 잘 살겠네
넌 그간 풍파에 휩쓸렸을지 언정 여전히 바다같다
지난한 여름이었다
입맛도 없는 날들이었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메뉴 고르기가 귀찮아 백반집에 갔더니 계란장조림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그걸 보니 네가 생각났다
매일 소주 마셔도 좋다
계란 하나에 술 먹어도 좋다
더 아프지는 말자
몸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