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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자 똥씨 Nov 15. 2024

나는 민들레가 좋다

강인한 생명력

나는 민들레가 좋다. 민들레의 생명력과 생존력이 좋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민들레를 민중의 꽃이라고 한다고 했던 것 같다. 햇볕만 있으면 짓밟혀도, 비옥한 토양이 없어도, 시멘트 틈 사이에서도 살아남고 꽃을 피우는 질기고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다.


작년에 어느 산속을 여행 갔을 때, 산속 길가와 차도 옆 사방팔방에 핀 민들레를 보고 그때부터 민들레에 반했고, 관심이 갔다. 민들레의 강인한 생명력을 알게 된 후, 민들레는 나의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그날 산속에서 민들레 한 줄기를 뽑아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화분에 고이 심었다. 주변 사람들은 '민들레는 잡초인데, 무슨 잡초를 화분에 심니?'라고 했지만, 나에게 민들레는 잡초가 아닌 소중한 꽃이었다.



나는 장미같이 화려한 꽃보다는 잡초인 민들레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잡초인 민들레를 나의 소중한 꽃으로 특별하게 키워주고 싶었다. 나에게 매일매일 강인한 생명력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민들레는 화분에 심자마자 아주 잘 자랐다. 식물을 한 번도 제대로 키워보지 못한 나에게는 (물 주고, 아껴주고 하는 식물 키우는 능력이나 부지런함, 관심이 나에게는 없는 듯하다), 물을 제때 주지 않아도 알아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매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고, 힐링이었다.


그런데 나의 민들레가 어느 계절엔가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한동안 숨죽이고 시들어 있었다. 꽤 오랫동안. 내 화분 속의 민들레는 오랫동안 '죽어있는 듯' 보였다. 그런 모습에 안타깝고, 실망스러웠다.


파트너가 그랬다. 민들레도 철을 탄다고. 이 계절에는 원래 민들레가 안 핀다고. 그냥 두면 또 살아나고 꽃을 피울 거라고. 그 말이 안심이 되었고, 그래서 시무룩하게 죽어있는 듯 보이는 민들레가 심어진 화분을 그냥 두었다.


그리고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하니, 다 죽었다고 생각한 내 민들레들이 다시 싱싱하게 줄기를 세우기 시작했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햇빛이 오는 방향과 낮에 햇빛이 오는 방향이 바뀌는데, 그럴 때마다 내 민들레들은 고개 방향을 바꾼다, 하루에도 여러 번. 살아남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얼굴 방향을 햇빛 방향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바꾸는 민들레가 신기하다. 살아남고자 하는 간절함, 강인함, 인내력, 그런 생명력과 생존력을 나의 민들레는 나에게 다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큰 안심이 되었다.

나의 민들레가 다시 활기를 찾은 것도 안심이었지만, 나에게 무엇보다 큰 안심을 가져다준 것은 민들레가 잠시 시들어 있었던 몇 달간의 모습이었다. 밟혀도 죽지 않고, 비옥하지 않은 땅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인내력과 생명력을 가진 민들레도 어느 계절에는 오랫동안 죽은 듯이 시들어 있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다시 너의 계절이 오면 저렇게 간절하게 햇빛을 쫓아다니며 다시 살아남고 꽃을 피우는구나.


그러니 나도 시들어 있는 때가 있어도 괜찮아. 나도 항상 번성하고, 싱싱하지 않아도 괜찮아. 한동안 기운이 없고, 비실비실해도 괜찮아. 나의 비실비실한 때가 내가 죽어가고, 희망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강인한 민들레도 철에 따라 잠시 비실비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잖아. 그렇게 우리는 시들었다가 싱싱해졌다가 계절에 따라 그런 사이클을 겪는 거구나.


요즘 한동안 생존 모드로 살아남고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힐링 메시지를 민들레에게 받는다.


덧.

민들레의 시들어 있는 때와 번성하는 때의 사이클을 보고, 나의 시들어 있는 계절과 꽃피는 때의 사이클도 관찰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달력에 매일매일 '생존 모드'인가 '번성 모드'인가를 기록해 보기 시작했다. 매일 민들레를 관찰하듯이, 그렇게 며칠 나를 관찰하고 기록하다 보니, 은근히 시들어 있는 '생존 모드'인 날에도 덜 스트레스받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시들어있는 날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꽃피는 번성 모드는 언제 찾아올까 궁금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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