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개발자라는 직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예전에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AI 시대에 개발자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면,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도 하곤 한다. AI가 개발자를 대체할지 말지보다, AI 때문에 개발자에게 요구되는 일의 범위가 어떻게 바뀔지가 더 현실적인 문제처럼 느껴진다.
나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횡적 확장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확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종적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횡적 확장이다. 종적 확장은 특정 도메인을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를 더 깊게 이해하거나, 분산 시스템을 더 잘 다루거나, 어떤 산업의 복잡한 도메인 지식을 더 많이 쌓는 식이다. 반면 횡적 확장은 여러 도메인으로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백엔드만 하던 사람이 프론트엔드도 보고, 인프라도 보고, 데이터도 보고, 제품 기획에 가까운 문제도 같이 보는 식이다.
둘 중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기본 압력은 종적 확장보다 횡적 확장 쪽으로 강하게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AI가 실행 비용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기획을 정리하는 사람, 디자인을 하는 사람, 프론트엔드를 구현하는 사람, 백엔드를 구현하는 사람, 데이터를 확인하는 사람, 문서를 쓰는 사람 등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각자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AI가 발전하면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잘 모르는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검색을 많이 하고, 문서를 읽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지금은 AI에게 물어보면서 초안을 만들고, 모르는 개념을 빠르게 확인하고, 익숙하지 않은 코드베이스에서도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유용하다. 그러면 조직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이 더 넓은 범위를 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 흐름이 꽤 강하게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더 적은 리소스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AI가 생산성을 높여준다면, 그 생산성 향상이 개인에게 여유로 돌아가기보다는 조직의 기대치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면, 더 많은 일을 맡기려 할 것이다. 이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미 비슷한 흐름은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백엔드 엔지니어,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데이터 엔지니어, DevOps 엔지니어, PM, QA처럼 역할을 잘게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나눠야 하는 조직과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작은 팀에서는 점점 더 한 사람이 넓은 범위를 책임지는 것을 기대한다. 최근 자주 보이는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이름도 이런 흐름의 한 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것을 넘어서,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 경험을 생각하고,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넘나들며, 지표와 운영까지 함께 보는 사람을 원한다.
물론 모든 일이 횡적으로만 확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분야는 여전히 아주 깊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고난도 도메인에서는 얕고 넓은 이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고난도 도메인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종적으로 더 깊어지는 것보다 횡적으로 더 넓어지는 압박을 먼저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횡적 확장에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의 repo에서 오래 작업할 때와 여러 repo를 동시에 오가며 작업할 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나의 repo에서 작업할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 구조가 잡힌다. 어떤 파일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함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테스트를 돌려야 하는지, 어떤 배포 경로를 조심해야 하는지 등이 점점 익숙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느리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가 붙는다.
그런데 작업 대상 repo가 2개, 3개로만 늘어나도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각 repo의 구조, 컨벤션, 배포 방식, 테스트 방법, 의존성, 히스토리, 주의해야 할 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A repo의 맥락을 잡고 있다가 B repo로 넘어가면, 단순히 창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작업 상태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다시 코드를 읽고, 다시 의도를 떠올리고, 다시 현재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인지과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작업기억은 동시에 많은 것을 붙잡아두기에 제한적이다. 흔히 단기기억의 용량을 이야기할 때 예전에는 7개 안팎의 숫자를 많이 말했지만, 이후 연구에서는 실제로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덩어리의 수가 그보다 더 적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 인지부하 이론에서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이해와 학습이 어려워진다고 본다. 작업 전환 연구에서도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갈 때 반응이 느려지거나 오류가 늘어나는 전환 비용이 관찰된다.
개발자의 일도 마찬가지다.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입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머릿속에 요구사항, 코드 구조, 데이터 흐름, 예외 상황, 배포 방식, 과거 의사결정, 앞으로의 수정 계획 등을 동시에 들고 일한다. 그래서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다시 맥락을 복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프로그래밍 작업 세션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개발자가 중단된 작업으로 돌아왔을 때 바로 코딩을 재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코드를 쓰기 전에 여기저기 다시 탐색하며 맥락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횡적 확장은 단순히 "여러 가지를 배우면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맥락을 계속 갈아 끼우며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맥락 전환이야말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앞으로 AI 덕분에 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꽤 낙관적이다. 이미 AI를 잘 쓰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찾고, 코드를 작성하고, 문서를 정리하고, 모르는 영역에 진입한다. 앞으로 도구가 더 좋아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는 "이건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 시간이 좀 걸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AI 쓰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않나요?"라는 기대를 받게 될 수 있다. 예전에는 다른 팀이나 다른 역할의 일이었던 것도, 이제는 "일단 한번 봐주세요"라는 식으로 넘어올 수 있다. 그러면 개인은 더 넓은 영역을 다루게 되고, 더 많은 맥락을 오가게 되고, 더 자주 피곤해질 수 있다.
생산성은 올라가는데 더 힘들어지는 이상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렇게 낯선 일도 아니다. 기술은 늘 생산성을 높였지만, 그 생산성 향상이 항상 개인의 여유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더 좋은 협업 도구가 생기면 커뮤니케이션이 편해지지만, 동시에 더 많은 메시지를 처리해야 한다. 더 좋은 배포 도구가 생기면 배포가 쉬워지지만, 동시에 더 자주 배포하게 된다. 더 좋은 모니터링 도구가 생기면 문제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지표를 봐야 한다. 도구는 일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일의 기준을 높이기도 한다.
AI도 비슷할 것 같다. AI는 많은 일을 줄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기대치를 만들 것이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적은 인원으로 해내는 팀이 생기고, 그런 팀이 성과를 내면 다른 팀들도 비슷한 방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횡적 확장은 선택이라기보다 기본값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커리어 고민은 "어떻게 더 깊어질 것인가"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물론 깊이는 여전히 중요하다. 깊이가 없는 넓이는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더 넓어질 것인가"가 훨씬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담당하는 문제의 주변 영역까지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낯선 도메인에 얼마나 빨리 진입할 것인가. 여러 맥락을 오가면서도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뚜렷한 답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AI를 더 잘 쓰면 된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AI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AI를 잘 쓰는 것 자체도 또 하나의 인지 부하다. 좋은 질문을 해야 하고, 답을 검증해야 하고, 내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가져다 쓰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결국 AI는 횡적 확장을 도와주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더 넓은 범위를 감당하라는 압박을 키우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쩌면 언젠가는 뉴럴링크 같은 기술이 정말로 인간의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을 낮춰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 여러 작업 맥락을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바로 불러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거의 SF에 가까운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을 하게 될 만큼 횡적 확장은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방향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직 해법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 깊어지라고만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더 넓어지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는 생각보다 강하게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