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우리 팀은 한 달에 한 번 '논데이' 를 가진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팀장님의 적극 추천으로 이번 달에는 키아프에 다녀왔다. 어떤 행사인지 전혀 몰랐었는데 내년에 또 가고 싶어 졌을 만큼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림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나 홀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어떤 작품을 보면서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고 또 다른 작품을 보면서는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듯한 신기한 경험도 했다. 주제도 기법도 성격도 모두 다 다른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둔 전시였는지라 내 취향과 맞닿는 그림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그림에 더 눈길과 마음을 내어 주는지 알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전시를 보는 내내 무작정 사진을 찍기보다는 눈으로 먼저 찬찬히 감상하며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디테일함을 눈에 담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도 키아프의 좋았던 포인트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들을 마주할 때마다 행복이 새어 나왔다.
이번 2024 키아프에서 만난 작품 중 내 원픽은 유미선 작가님의 <My garden>이다. 이 작품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림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은색 빛이 은은하게 묻어났다. 작가님은 은박을 1mm로 잘라서 일일이 선을 따라 그리는 기법을 선보이는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은박지로 촘촘히 새기는 행위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진다. 섬세한 작업이니만큼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그 정성 덕분에 보는 사람들은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관심이 생긴 작가가 생긴 것도 이번 키아프 참가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느낀 건 난 확실히 초록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초록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 혹은 초록색을 과감하게 쓴 작품들에 마음이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곁에는 초록 계열의 포인트 아이템들이 꽤 있다. 어제 신었던 민트색 컨버스 하이도 있고, 가을이 되면 교복처럼 입는 토마스모어의 민트그레이 셔츠도 있고. 최근에 모노하에서 산 니트베스트도 짙은 녹색계열이다. 자칭 '베이지 인간'임에도 좋아하는 색이 뭐냐는 질문에는 항상 초록을 먼저 얘기하는 나. 아마도 초록의 싱그러운 빛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발현된 취향이지 않을까 싶다.
전시장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The most interesting thing about artists is how they live." (아티스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그게 예술의 묘미다.)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작가에 대해서 알고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일례로 윤병락 작가님은 사과로 유명한 경북 영주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라고 한다. 사과의 고장에서 사과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작가의 사과 작품이라니. 이 사람의 사과는 어떤 사과일까 좀 더 궁금해지지 않는가.
내년 위시리스트가 벌써 하나 생겼다. 키아프 2025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는 것! 가능하다면 참여 작가들에 대해서도 미리 알아보고 평일에 하루 온종일 천천히 작품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우리 둘은 어떤 작품에 마음을 줄지, 어떤 생각과 말을 주고 받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올해든 내년이든 혹은 그 이후든 윤미선 작가님이 개인전을 연다면 꼭 가보고 싶다. 작가님의 작품으로만 가득한 전시장. 생각만 해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