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쩌면 엄마에게 자궁경부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숨기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보호자 없이 수술이 가능하냐는 나의 물음에 상담 간호사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간호 통합 병동으로 입원하면 되지 않냐는 나의 두 번째 질문에도 산부인과 수술은 간호 통합 병동 입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2달은 걸릴 것이라고 했으니,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을 아무 방법도 찾지 못한 채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도대체 이 사실을 엄마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
오빠와 내가 없었다면 수십 년 전 아빠를 떠났을 거라고 엄마는 자주 말했었다. 시할머니,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당연했던 고된 시집살이와 썩 행복하지 않았던 아빠와의 사이에서도, 엄마를 살게 한 것은 오직 우리 남매뿐이었다고 했다. 집에는 늘 사람들이 넘쳤다. 노망이 난 증조할머니는 엄마에게 늘 고함을 질렀다. 엄마가 자기를 죽이려고 밥에 독약을 탔다는 이유였다. 그 엄마의 그 아들인지, 할아버지도 성미가 고약했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도 아주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이 뭔지도 잘 모르던 그 옛날부터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이 없었다. 아빠는 삼 형제의 첫째였지만, 어쩐지 나는 우리 아빠가 십 남매의 첫째인 것 같았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사촌 삼촌들, 사촌 고모들이 돌아가며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들에게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것은 진짜 사촌인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의 가녀린 손은 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아흔이 넘어 돌아가시고야 나서야 엄마는 하루 세 끼를 챙기는 가사 노동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남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마냥 기쁜 일은 아니었을 텐데, 사람들은 이제 엄마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엄마는 평생 누군가를 뒷바라지하며 살아왔고, 나는 엄마가 다 큰 딸의 뒷바라지까지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이제 행복하기만 하길 바랐다. 이제 겨우 40년이 넘었던, 지난하고 길었던 시집살이에서 벗어났으니,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로 일상을 채워 나가라고 응원했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은 나의 엄마에게, 혼자서는 도저히 엄마 딸이 암에 걸렸대,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유일한 핏줄인 오빠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평범한 남매로, 그다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믿을 구석은 오빠밖에 없었다. 한참을 망설여 오빠에게 전화했다. 보통의 안부는 카톡으로 끝나는 사이인데, 그날은 오빠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울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동생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제부터 오빠만 믿어, 라며 나를 다독이는 오빠의 말에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수술까지는 고작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던 우리는 부모님의 집으로 가 마주 앉았다. 늘 회사 일로 바빠 얼굴 보기 힘든 아들과 딸이 평일에 집에 온다고 연락해 오니, 엄마는 이미 무슨 일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오빠는 나를 대신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예상대로 엄마는 우리 딸이 왜, 라고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한참을 울었다. 아빠는 그저 멍하게 식탁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한숨을 내리 쉬었다. 엄마의 울음은 어쩐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러다 엄마가 쓰러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그때, 엄마는 얼굴 가득 번진 눈물을 모조리 닦아내고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는 이제 울지 않을 거야. 우리 딸은 엄마가 살릴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다신 울지 않아. 우리 잘 이겨내 보자. 엄마만 믿어.”
엄마는 놀랍도록 강한 사람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과 딸 때문에 엄마는 죽을힘을 다해 참았어, 라고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엄마는 울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아주 오랜 기간 지켜냈다.
암에 걸리고 말았고, 수술해야 한다는 사실은 엄마에게 솔직히 말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숨기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바로 여성 관련 장기를 모두 제거한다는 것, 그래서 엄마의 딸은 엄마가 나를 가져 행복했던 것 같은, 아이를 갖는 기쁨 같은 것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
수술할 채비를 모두 마치고 금식이 시작되기 전의 찰나를 틈타 엄마와 천하장사소시지를 하나를 정답게 나눠 먹고 있었다. 수술 동의서를 받겠다고 앳된 얼굴의 의사가 다가왔다.
“나니님, 수술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저희는 개복 수술을 진행할 거예요. 알고 계시죠? 자궁경부뿐 아니라 자궁 모두 절제합니다. 난소와 나팔관 등 관련 장기도 모두 제거할 꺼에요.”
망했다. 의사의 입을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제발 그만 이야기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틈조차 없이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모든 진실이 의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니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돌려 벽면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두 손을 꼭 쥐었다. 핏줄이 터져나가도록 꽉 잡은 두 손은 한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해 벌벌 떨리는 어린아이의 몸처럼 떨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지키려고 죽을힘을 다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수술 동의서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고 있던 내 마음도 터진 둑이 되어 무너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