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단편 소설
다시, 새롭게 읽는 김연수의 작품 No.5
출판사 <프란츠>에서 지난해 6월 음악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작가의 단편소설이 차례대로 실려있다.
이 소설집에 첫번째로 실린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지만,
그건 나중에 시간이 생긴다면 따로 정리할 생각이다.
(사실, 김애란과 김연수 작가의 소설 외에는 아직 읽지 못했다.)
음악소설집에 수록된 김연수 작가의 작품 제목은 <수면 위로>.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직 기진이 살아 있던 시절, “또 아침이야? 지겨워 죽겠네”라고 말하며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곤 했다.
“세상에 너처럼 부지런한 염세주의자는 없을 거야.”
기진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짜증부터 냈는데, 지금처럼 되고 보니 ‘부지런한 염세주의자’라는
표현만큼 딱 맞는 것도 없다. 진짜 염세주의자는 무기력에 빠져 그런 불평을 할 힘조차 없다.
(p.51)
소설의 무대는 영천이라는 곳이다. 영천. 직접 가보지는 못했고,
아주 오래 전 회사 일로 ‘영천 별빛마을’에 관한 소책자를 만든 적은 있다.
영천 별빛마을뿐만 아니라 뭐 전국의 무슨 무슨 마을 등등 몇십개 마을의 소책자를
한 달 사이 한꺼번에 만들었는데, ‘별빛마을’이라는 서정적인 단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수많은 마을 중에서 ‘영천’이라는 지명은 기억에 남긴 했다.
이 작품은 그 영천이라는 곳의 ‘오므라이스’가 소재다. 그리고 별빛이 아닌,
달빛이 소설의 배경 화면처럼 등장한다. (달이 비추는 곳은 영천은 아니다)
그렇기에 ‘영천의 오므라이스’라는 건 내가 아는 몇 안되는 기진의 과거사 중 하나였다.
기진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건 몇 년 전 한 대학교의 노천극장에서 열린 피아노 연주회를 보고 난 뒤였다.
(p.61)
그날 밤, 달빛 속을 걸으며 기진이 들려준 오므라이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p.65)
어느 날,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보니 엄마가 거실 피아노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더라고. 내가 열두살 때였어. 뒤늦게 “다녀왔습니다”라고 외쳤는데도 반응이 없길래 엄마가 또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거든. 그건 시한폭탄 같은 거야. 몸속에서 째각째각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지만, 그렇다는 걸 아무도 몰라. 당사자도 몰라. 그러다가 한순간 쾅하고 터지지. 그때는 이미 늦은 거야.
(p.66)
며칠 뒤, 한 사람이 트럭을 몰고 왔어. 그는 피아노 조율사였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중고 피아노를 사들이는 일도 겸하고 있었지. 피아노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엄마에게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는지 물었어.
(p.67)
“아, 별뜻이 있는 건 아니고, 제가 피아노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맛집을 많이 알거든요.”
그제야 엄마가 말했어.
“경상북도 영천이에요.”
“아, 영천이라면 오므라스로 유명한 중국집이 하나 있어요.”
조율사가 말했지.
(p.68-69.)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미 여러 번 살아본 인생을 다시 사는 듯한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찍은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볼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오늘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신물이 날 정도로 인생이 뻔하고도 지긋지긋해지겠지요. 내가 말하는 기시감과 신맛과 자살 충동이란 꼭 그런 느낌입니다. 시간여행자처럼 몇 번이고 다시 살았던 하루를 또 시작하는 듯한 느낌. 누가 무슨 말을 할지,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다 알 것같이 느껴지면서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같은 하루를 몇 번이고 다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진이 말하고 있는 영상 아래로 유주가 단 자막이 지나갔다.
‘몇 번이고 이 동영상을 되돌려보고 나서야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중략) 신물이 날 정도로 인생이 뻔하고 지긋지긋하다면, 같은 하루를 몇 번이고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우리는 뭘해야만 할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그 노트를 꺼내 누운 채로 끄적였다. 기진이 죽은 뒤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나는 그 노트에 진실만을 적기로 맹세했다. 그게 아무리 형편없고 엉망이고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날것의 문장이라고 해도 진실이라면 다 적었다. 처음에는 나의 진실이란 원래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가 싶었다. 쓴 것들을 다시 들춰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죽기라도 해서 누가 이 기록들을 보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쓰고 나면 그 즉시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나는 겨우 참았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내려갔다. 그게 진실이 맞다면, 나는 그걸 견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게 내게는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p.80-81)
“우리 얘기 좀 할래요?”라며 기진이 내게 말을 걸어온 건 ‘수면 위로’라는 말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옆에 기진이 서 있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도 기진은 시간여행 중이었던 것일까? 그래서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일까?
(p.84)
“갑자기 너무 배고프네요. 오므라이스 두 개 주세요.”
엄마가 말했어. 그날 중국집을 다녀온 뒤로 엄마는 조금씩 달라졌어.
(중략) 그렇게 엄마는 아빠와 헤어져 자신의 인생을 찾아갔어.
(p.93)
소설집 뒤편에 수록된 작가와의 인터뷰에도 나와 있지만, ‘수면 위로’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물속에서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 그리고 잠+위로. 나한테 이 소설은 두 번째 의미로 다가왔다.
소설 속 화자가 한 달 정도 지난 뒤에야 자신이 쓴 것들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부끄러웠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 번 썼던 내용을 여러 번 다시 쓰기도 했는데, 쓸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졌다고.
어쩌면 나는 이곳을 비롯해 내가 지닌 몇 개의 노트에 이미 한 번 썼던 내용을
여러 번 다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쓰고 나서 부끄러워서 차마 다시 읽지 못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나중에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보게 되면, 그때는 그것들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중에 영천이라는 곳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오므라이스 잘하는 중국집에 한번 들려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