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학파
프랑크푸르트학파
타노스는 철학을 가진 악당이며 절망에 빠진 우주를 구하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타노스 문제를 먼저 포착했다.
호르크하이머(1895-1973) 아도르노, 마르쿠제, 에리히 프롬, 벤야민- 마르크스주의 ‘비판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려 시도했다.
호르크하이머는 아도르노(1903-1969)와 함께 인간의 이성과 계몽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담은 책 <계몽의 변증법>을 출간했다.
신화에서 과학으로, 미개에서 문명으로
신화의 시대- 철학의 시대- 근대 (과학, 지식, 이성, 계몽)
합리적인 이성, 지식의 결과물이 학살과 전쟁에서 자본의 자기 증식 수단으로 이어졌다.
신화에는 계몽의 싹이 함께 숨겨져 있다. 신화가 끝나고 계몽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화 속에 계몽이 있어 계몽은 곧 새로운 신화의 세계로 들어섰다. <계몽의 변증법>
계몽주의는 과거의 인습이나 미신에 이끌리는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 주어 미몽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시도였다. 주체가 성립되려면 대상이 필요한데 나를 위해 대상을 위협하고 제거했다. 타자의 배제이다.
계몽은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존재나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계몽의 변증법-
’도구적 이성’(호르크하이머)은 사물을 명확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서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던 이성이 사물을 이용하고 타자를 포획하여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했다.
<계몽의 변증법>은 타자를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한 이성을 반성하고 자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에만 복무하는 계몽을 계몽할 필요성이 있다. 이성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바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제의식이다.
지식이 강화되면 자기 생각이 강해지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이 커진다. 확신이 커지면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갈등과 분쟁의 원인 제공하는 것이 자기 확신이다.
현대 문화산업을 하이데거는 존재 결핍의 문제로 파악,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성을 도구화하는 문화산업의 문제로 파악했다. 계몽의 새로운 얼굴이자 파시즘의 다른 모습이다.
계몽과 이성은 모든 것을 자기화하려 한다.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제거했다. 반유대주의, 파시즘은 자신을 지키고 강화하려는 인간의 자기보존 욕구가 도구적 이성을 사용하여 대중을 현혹하고 전쟁과 학살과 광기로 내몬 전형적인 계몽의 광기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 한다. 현존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문을 지향한다. 비판의 시작은 자기 성찰과 반성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도구화된 이성을 극복할 방법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하버마스(1929~)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과 도구적 이성에 비판이론을 전개, 하버마스는 계몽의 완성을 주장했다. 평등과 자유라는 중요한 진보를 성취했다. ‘의사소통적 이성’이다. 인간은 소통과 이해를 추구하는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인격적인 토론을 거쳐 합의에 이을 수 있는 의사소통의 힘도 가졌다. 토론을 통해 이성을 비판적 이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행위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자신의 성공만을 지향하려는 도구적 행위, 성공을 지향하면서 사회성도 고려하는 전략적 행위, 사회성을 고려하면서 다른 사람과 이해도 공유하려는 의사소통 행위이다.
부르주아 공론장은 부르주아들이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고 협의한 공간인데 강력한 왕권과도 싸워 이길 수 있었다. 근대화 과정이며 여론을 조정하는 힘이고 공화정을 건설하는 초석이 되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핵심이론은 이성이 내재된 합리적 의사소통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행정 영역의 물질적 차원인 체계와 문화, 사회와 인격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재생산하는 차원이 있다. 점점 체계의 효율성이 생활세계를 침범해 와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가 되었다. 부르주아 공론장에 위기가 왔다. ‘의사소통적 이성’에 기초한 다양한 활동이 펼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치게 친절할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