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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Jan 06. 2024

왜 글을 쓰나요?

퇴고없이 쓰는 글

가끔 글을 쓰다보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왜 글을 쓰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된 것일까. 대체 왜, 무슨 연유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런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퇴고없이 쓰는 글이니 생각나는대로 써보자면, 사실 요즘은 글 쓰기가 정신 건강에도 좋은 취미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책은 물론이고 줄글도 읽기 힘든 요즘 세상이니만큼, 머리도 굴리면서 문장도 예쁘게 만드는 작업은 정신력의 헬스와도 같습니다. 한 마디로 치매 예방.


하지만 애초에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하면, 그건 어렸을 때 읽었던 수많은 소설들 때문이긴 합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잃어버린 세계,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담긴 글을 읽다가 그 끝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도저히 뒷 이야기나, 혹은 내가 생각했던 더 이상적인 다음 이야기를 그려보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더랍니다. 물론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고전 작품들, 고전 명작들이 있지만 솔직히 어린 나이에 영감을 주는 건 위 작품들 같은 매력적인 이야기들에 있잖아요?


그래서 그 때부터 돌이켜보면 글을 꽤 많이 써왔던 것 같습니다. 실적은 미비할지언정, 이를테면 교내 백일장의 동상이라든지, 소규모 출판사의 공모전 당선이라든지(하지만 출간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혹은 졸업한 대학교에서 받은 공모전 대상이라든지. 그 외의 실적은 전무합니다. 나중에 제 딸이 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만큼 자란다면, 딸 주최의 우리집 대상 정도는 더 노려볼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무슨 글을 많이 썼냐하면, 좋아하던 사람에게 고백하기 위한 시와 노래 가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들의 팬픽, 가끔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뜬금없는 단편 소설도 써보고, 연애, 판타지, 온갖 글을 썼었죠. 최근에는 육아를 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 엮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다들 고충을 겪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제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춘문예에 가깝다는 1만자, 악명 높았던 2만자 자기소개서도 채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아, 정정해야겠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 아니라, ‘분량을 채우는 일’이라고 고치겠습니다. 역시나, 유의미하게 낚아올린 실적은 없습니다. 취업에는 성공했으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 다음에 몇 차례의 면접을 봤으니 순전히 자기소개서 때문에 붙었다고도 할 수 없으니 실적으로 따지기엔 애매하긴 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아직도 글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왜 그렇게나 건져올리는 것도 없으면서 그물을 던지고 있을까요, 매번 빈 그물만 낚아올리면서, 결국 지쳐서 게임이나 해야지, 하고 귀한 시간에 마우스를 잡다가도, 정작 글을 안 쓰면 불안해하고 있다가 이렇게 허튼 소리라도 끄적이고자 글을 쓰게 되는 걸까요?


저를 오래 지켜봐왔던 친구가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너는 이 차가운 자본주의 세상에서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는 데에 너무나 적합한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정작 너의 적성과 흥미는 전혀 반대편에 있어서 그 괴리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제가 갖고 있는 고뇌를 최대한 거창하게 표현해준 말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되새김질 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거창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려는 이유와 목표는 그만큼 명확하거든요. 조금이라도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데에 기여를 하고 싶다.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데에 기여하고 싶다! 그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되도록 다들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로. 거창한 규모나 치밀한 복선, 몇 번이고 되새김질 해야 떠올릴 수 있는 숨겨진 아이디어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치는 반전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읽으면서 계속 예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마지막 장을 넘기기 아쉬운, 하지만 궁금해서 넘길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설령 뻔하다고 해도, 결국 책을 덮는 순간에는 가슴에 책을 품고 눈물을 짓거나 시원 섭섭한 마음으로 창 밖을 내다보며 멍해질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데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요즘 그런 이야기는 게임이라는 매체로 더 잘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등장인물과 함께 긴 서사를 함께하고, 내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보니, 몰입감이 달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최근에 아이를 키우다보니 영화와 드라마를 숨죽여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게임의 스토리 요약본을 보곤 하는데, 두 번이나 눈물짓게 만들었던 작품은 모두 게임이었거든요. 작품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겠습니다만, 심지어 둘 다 인디게임이라는 점에서 신기하곤 합니다. 언젠가는 멋들어진 영화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데, 기회가 올까요.


이것 봐요, 글을 쓴다고 하면서 결국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은 걸 보면, 제 꿈은 단순히 글이 아니긴 한가봅니다. 이야기. 그게 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매력적인 이야기, 언젠가는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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