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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Nov 06. 2024

아이주도 이유식의 이론과 실재

7개월 26일

고기스틱을 24시간 내에 세 번이나 구웠다.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작한 탓이었다. 강아지들 밥그릇에 사료 부어주면 알아서 주워먹듯이, 아기에게도 음식을 차려주면 알아서 손으로 집어먹고 하는 게 아이주도 이유식이었다. 죽을 쒀서 줬던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랐다. 잇몸으로도 의외로 잘 씹고 으깰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오히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 음식을 선택하고 촉감놀이와 소근육 발달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등 장점이 엄청 많다고 한다.


그래도 치우는 게 일이다 보니, 아이주도 이유식은 나중으로 미루고 한동안은 큐브 공장만 열심히 돌렸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몇 입 먹다가 심기가 불편해지는 패턴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으엄…… 움……” 하고 울음보 시동을 드릉드릉 걸다가, 결국 너무 울어서 우는 애 입에 밥을 들이밀 지경이 되면 안되겠다 하고 수유를 한 다음에 마저 이유식을 먹였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받아먹는 것 뿐이라서 지루한 건가? 그런 생각으로 아이주도 이유식을 한 번 시작해봤는데, 생각보다 아이는 정말 잘 먹어주었다. 첫 날부터, 의자에 앉히자마자 고기스틱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당근도, 브로콜리도, 모두 조물거리면서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평화로운 일을 죽 이유식 하면서 괜히 끙끙거렸잖아.


 - - -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는 몇 입만 잘 먹다가 펑펑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니, 그런데 대체 왜? 잘 먹다가, 어째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여러가지 추측을 해 봤다. 브로콜리 줄기를 너무 큰 걸 씹어 삼켜버렸나? 다급하게 인터넷에 ‘아기가 너무 큰 조각을 삼켰을 때’라고 검색해봤다. ‘아기가 나무 조각을 삼켰어요’ 같은 글들이 나왔다. ‘……괜찮겠군’ 하며 화면을 껐다.


그런데 어제 보니, 울 때 수유를 2/3 이상 해주고 쪽쪽이를 한 5초 정도 물려주면, 곧장 괜찮아져서 다시 평화롭게 음식을 집어먹었다. 배고파서 그랬던 거였구나! 배고픈데 잘 안 잡히고 빨리빨리 입에 못 넣어서 그랬구나. 답을 찾았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치의 이유식을 해동하려 냉장고를 열었다. 고기스틱이 모자랐다. 브로콜리는 다 먹었다.


바로 마트에 가서 재료들을 사왔다. 저녁 8시 반부터 시작해서 세 가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스틱, 브로콜리 스틱, 애호박 브레드. 하지만 셋 다 애매하게 처참해졌다. 고기스틱은 쌀가루가 꺼끌꺼끌해서 어른도 먹기가 좀 그랬다. 브로콜리는 고압찜 20분을 못 견뎠는지, 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흐물거렸다. 애호박 브레드는 약간 속이 여전히 반죽 같은 계란빵처럼 되었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원래 촉촉한 빵이라고도 하고, 블로그들을 찾아보니 계란찜같은 느낌이었다.


어쩐지 셋 다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아침을 먹여주고, 산책 갔다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와 두부, 브로콜리를 샀다.


아이에게 첫 낮잠을 재워주는 사이에 고기스틱을 또 만들어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렸다. 그냥 아이 곁에 누워서, 그 귀여움을 즐기며 한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자버리면 육퇴 후에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저녁에 만든 고기스틱이 또 실패작이 되어버린다면 내일은 진짜로 줄 게 없었다.


그 사이, 브로콜리가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고압찜으로 20분 대신에 15분을 했다. 또 흐물거렸다. 나중에 감자랑 섞어서 감자매시 스틱이나 만들어줘야겠군……. 이로써 9,000원 어치의 브로콜리가 락앤락 두 통에 담겨서 냉장고에 들어갔다. ‘브로콜리(였던 것)’과, ‘브로콜리(였던 것) 2’라는 포스트잇을 달고.


고기스틱은 그래도 괜찮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니까 계란을 넣길래 계란도 추가했고, 이번에는 쌀가루 대신 밀가루를 넣어서 까끌까끌하지도 않았다. 반죽을 새끼손가락 모양처럼 빚으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언제 엄마가 된 것을 실감했나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아이 먹을 고기스틱을 빚고 있을 때였다고 답할 것 같다고.


 - - -


11시에 이유식을 먹으면서, 아이 입 주변이 빨갛게 올라왔다.


침독 올라왔다고 발만 동동 구르던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잘못 본 거라고 착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입 주위가 새빨개졌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씻겨줄 때와 배밀이 할 때 보니, 목주름 사이에도 뭔가 오돌도톨 나 있었다. 심지어 팔에도 뻘깃뻘깃한 게 돋아 있었다.


알레르기가 분명했다. 하지만 범인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애호박 브레드에 넣었던 계란과 요거트 때문인가? 아니면 애호박에서 씨를 안 빼서? 혹은 고기스틱에 추가한 계란 때문에? 어쩌면 계란 때문일지도 몰랐다. 예전에 침독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계란 알레르기의 여파가 조금 오래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는 놀다가 평소처럼 “엄…… 으엄……” 하면서 힘든 기색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낮잠에서 깬 지 얼마나 됐는지 확인하고 대처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 소리가 아파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냥 피곤해서 하는 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계속 예의주시하며 마음을 졸였다.


게다가 이렇게 곤욕을 치러놓고도 범인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러게, 이유식의 원칙인 ‘새로운 재료는 하나씩 조금만’을 지켰어야지. 그나마 애호박 브레드는 그 원칙을 따라서 한 쪽만 줬으니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기스틱에 계란을 넣었는데. 그럼 계란 빼고 다시 만들어야 하잖아……?


 - - -


“엄……” 하면서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카페 테이크아웃을 하며 겨우 깨시를 좀 채웠다. 안 채우면 이따가 너무 일찍 깨서 밥을 잘 못 먹을 테니까…….


오는 길에는 또 소고기와 두부를 샀다. 그리고 고기스틱을 또 만들었다. 이번에는 계란을 뺀 버전이었다. 소고기 100g에 두부 한 모와 밀가루 2T, 다진 양파 2T를 넣었다. 반죽도 잘 되었고, 에어프라이어에 넣어서 6분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때 홈캠을 보니 아이가 깨어나서 엎드려 있었다. 잠 연장을 해주러 뛰어갔는데 토사물이 아이 앞에 놓여 있었다.


세상에. 이를 어쩐담.



 - 다음 화에 계속…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lucas Fa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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