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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03. 2018

집 잃은 개 천하방랑기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은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임금이었어요.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숲에 고기를 매달아 놓았답니다. 훗날 사람은 이를 줄여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 했어요. 그렇게 향락을 즐기는 임금이니 백성들의 삶이 고달픈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주왕을 끝으로 은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집니다. 바로 주나라이지요.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임금은 무왕武王, 이름처럼 용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용맹하다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건 아니예요.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힘이 제일이지만 나라를 안정시키는 데는 덕과 지혜가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게다가 무왕은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 주나라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 바로 무왕의 동생, 주공입니다. 주공은 무왕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성왕을 도와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이 주공의 후예가 세운 나라가 바로 공자의 고향, 노나라였어요. 공자는 이 주공을 매우 존경했답니다. 꿈에서도 주공을 만난다고 말할 정도였지요. 고향 노나라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천하를 안정시킨 주공의 능력을 흠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자 시대에 노나라는 주공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삼환이라 불리는 세 귀족 집안이 노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임금도 삼환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지요. 그것뿐인가요. 노나라의 이웃 제나라에서는 임금이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도 있었어요. 노나라와 제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였어요. 여러 사람이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공자는 꿈에도 주공을 그리워한 것처럼, 옛 제도의 부활을 바란 인물이었답니다. 자신이 주공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랐어요. 노나라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천하를 안정시키는 것이 공자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나라의 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결국 공자는 자의반 타의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기득권을 손에 쥔 귀족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고, 군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그릇이 못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까닭입니다. 이렇게 공자의 방랑이 시작됩니다.


이 공자의 방랑을 일컬어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합니다. 천하를 돌아다녔다는 뜻이예요. 이 방랑길은 매우 고된 길이었습니다. 공자는 이미 쉰 중반의 나이였습니다. 지금이냐 한창인 나이지만 공자시대에 그렇게 긴 여행을 소화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지금과 달리 길도 엉망인 데다,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언제 고향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이었어요. 


[장저와 걸닉을 만나는 자로] 그림처럼 공자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어요.


고향을 떠난 공자는 여러 어려움을 겪습니다. 죄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붙잡히기도 하고,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는 사람도 만납니다. 진나라와 채나라의 국경지대를 지날 때에는 전쟁이 벌어져 꼼짝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지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식량마저 떨어져 버립니다. 급기야 굶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제자들까지 생겨날 정도였어요. 힘겨운 방랑길을 함께 해쳐온 제자들이었지만 이런 상황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성격이 급한 자로가 공자에게 이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선생님! 군자에게도 이렇게 고달픈 때가 있습니까?”

“군자의 삶은 본디 고달픈 것이지. 그런데 소인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성을 내고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15-2)

자로는 군자라면 세상들에게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어요. 공자 선생님이야 말로 군자라고 할법한 사람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 처했으니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군자의 다른 면에 대해 말해줄 뿐입니다. 군자는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소인과 차이가 있다면 고달픈 삶에도 뜻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공자에게 군자는 자기 이상을 꾸준히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군자의 이상은 쉬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기 마련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고달픈 삶을 잘 묘사하는 말이 바로 ‘상가구喪家狗’라는 표현입니다. 우리 말로 옮기면 ‘집 잃은 개’라고 할 수 있어요.  


‘집 잃은 개’라고 하니 좀 낯선 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옮기면 ‘유기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집을 잃고 이리저리 떠도는 개를 생각해봅시다. 옛 주인을 그리워하는 멍한 모습이 그려지지요. 공자가 유기견 같은 존재였다니! 측은하면서도 불쌍하기도 합니다. 한편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로 묘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공자는 통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을 상갓집 개라고 표현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넘길 뿐이었답니다.


춘추시대의 혼란과 공자의 방황은 단지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어지러운 시대는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불우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지금도 상갓집 개처럼 제 뜻을 펼칠 기회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사람 이야기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역사 속에 많은 사람이 <논어>를 사랑했던 것이겠지요. 


시대에 영합하며 제 잇속을 차리는 사람 입장에서 공자의 태도는 쓸데없이 고집스럽게 보였습니다. 한편 반대쪽, 세상일을 뒤로하고 자연에 묻혀 사는 사람 입장에서 공자는 여전히 세상일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였어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면, 그렇다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면 차라리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은거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논어> 속의 공자도 적잖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과 얽혀 사는 삶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공자는 사람은 사회 속에서, 역사 위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천하를 방랑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이 실패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도 제자들을 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자, 상갓집 개와 같은 그의 눈은 단지 먼 과거만 보는 건 아니었어요. 제자들을 통해 비록 희미하지만 먼 훗날을 가늠해보기도 했답니다. 이제 그가 꿈꾼 또 다른 이야기, 그의 제자를 만날 차례입니다.  




* 이번 쉬는 시간에는 공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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