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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17. 2018

밥 한덩이와 물 한바가지의 여유

아주 오랜 통념이 있어요. 바로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허나 따져보면 노력만으로 보자가 되지는 않아요.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말을 보면 집안 사정이 중요합니다. 한편 운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부귀재천富貴在天', 부유함이란 하늘에 달린 일이라고. 공자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원하는 대로 부유할 수 있다면 마부 노릇이라도 할 수 있겠다.
허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7-12)

공자도 부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차라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해요. 바로 자유롭게 배움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공자가 좋아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비록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었어요.


공자의 제자 가운데도 이런 공자의 모습을 똑 닮은 인물이 있답니다. 바로 공자가 사랑한 제자 안연이었어요. 


안연은 훌륭하구나!
한덩이 밥과 한바가지 물을 먹고 마시며 누추한 동네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걱정이 끊이지 않았겠지만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안연은 정말 훌륭하구나!
(6-11)

요즘은 학교 급식이 일반화되어 좀처럼 도시락을 쌀 일이 없어요. 그러나 예전에는 매일 도시락을 싸 가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펼쳐놓으면 반 친구들의 집안 사정이 훤히 들여다보었지요. 고기나 햄이 가득한 도시락이 있는가 하면, 김치에 계란 반찬만 있는 도시락도 있었어요. 살림살이가 어려워 도시락조차 싸 오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답니다.

 

공자의 제자들도 도시락을 싸왔나 봐요. 그런데 안연은 그저 한 덩이 밥에 물 한 바가지가 전부였답니다. 변변한 반찬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안연은 전혀 거리끼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안연의 이런 소박한 밥상에서 단사표음簞食瓢飲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조촐하면서도 소박한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의 도시락이 이런 것은 그의 출신과 관계가 있습니다. 논어 원문을 빌리면 안연의 집은 누항陋巷, 누추한 골목에 있었다고 해요. 당연히 으리으리한 기와집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 단칸 초가집이었을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 힘들어했겠지요. 그러나 안연은 전혀 그렇지 않았답니다. 도리어 가난한 환경에도 즐거움을 잃지 않았어요. 훗날 사람이 말한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에도 마음이 평안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삶이란 바로 안연을 가리켜 만든 말이었습니다. 그 역시 공자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공자는 안연을 두고 '누공屢空', 자주 비었다고 말했어요. 무엇이 텅 비었을까요? 쌀독이? 밥그릇이?


자신을 똑 닮은 제자를 공자는 각별하게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는 제자가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요. 허나 공자가 안연을 높이 산 것은 그의 불우한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었던 까닭입니다.


가르친 내용을 따분하게 듣지 않은 사람은 안연뿐이었다.
아! 나는 안연이 나아가는 것만 보았지 머물러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9-20,21)

안연은 늘 맑은 눈으로 선생님을 응시하는 제자였습니다. 게다가 끊임없이 나아지려는 제자였어요. 머무르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려 힘썼습니다. 배움이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나은 내가 되는 과정이지요. 안연이야 말로 공자가 생각한 학문의 길을 가장 잘 수행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한번은 노나라 임금인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공자의 여러 제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터라 이렇게 질문합니다. 


제자 가운데 누가 가장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안연이라는 제자가 있었어요.
그는 배우기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남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았으며
한번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 지금은 곁에 없답니다.
안연 이외에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6-3)

공자의 평가를 보면 안연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배움을 사랑하였으며 늘 꾸준히 성장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지요. 게다가 남에게 화풀이도 하지 않았답니다. 사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누구나 애꿎은 대상에게 화풀이를 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반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안연의 가장 훌륭한 점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고,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고 고치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연은 후자였어요.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데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답니다. 저 대화는 공자가 고향 노나라로 돌아온 이후에 벌어진 것으로 보여요. 안연은 공자의 방랑길 도중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논어는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어요. 다만 그의 죽음을 두고 공자가 크게 슬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안연의 죽음은 공자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공자는 안연의 죽음에 하늘이 자신을 버린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아마도 공자는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로 안연을 손꼽아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연이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공자의 꿈도 무너져 내려버릴 수밖에요. 크게 슬퍼하며 애통하는 바람에 제자들이 만류할 정도였습니다. 너무 크게 상심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공자는 슬픔을 거두지 못합니다.


제자들에게도 안연의 죽음은 커다란 사건이었어요. 선생님의 슬픔을 보고 몇몇 제자가 화려하고 성대한 장례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이를 크게 꾸짖습니다. 크고 화려한 장례는 맞지 않는다며.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인데 어째서 소박한 장례를 주장한 것일까요?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에까지 인색할 정도로 구두쇠였던 것일까요?


공자의 생각은 다른 이들과 달랐습니다. 공자는 무턱대고 화려한 예식보다는 각자의 처지에 맞는 예식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안연의 집안 환경을 생각하면 화려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공자는 화려한 장례보다는 슬픈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어요. 형식에 치우친 장례로 아끼는 제자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자로와 안연, 공자의 양팔과 같은 제자들이 공자보다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공자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자를 따라 공자도 얼마 뒤 세상을 떠납니다. 남은 제자들은 공자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삼년상을 치렀다고 해요. 마치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긴 까닭입니다. 헌데 제자 가운데는 삼 년 더 공자의 무덤을 지킨 제자가 있었답니다. 바로 다음 시간의 주인공 자공이라는 인물입니다. 




* 여섯 번째 쉬는 시간. 안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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