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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31. 2018

내쫓긴 제자를 위한 변호

공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상을 현실 정치에서 펼칠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권력자들은 공자보다 그의 제자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어요. 노나라의 실력자들과 나눈 대화는 그들의 속내를 잘 보여줍니다.

한 번은 계강자가 공자에게 제자들에 대해 묻습니다.


"자로, 자공, 염유는 어떤 인물입니까? 나랏일을 맡겨도 될까요?"
"자로는 과감한 인물입니다. 자공은 똑똑한 인물이지요.
염유는 재주가 많은 인물입니다. 그러니 나랏일을 맡아도 잘 해낼 것입니다."
6-8

계강자는 당시 노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어요. 군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답니다. 그가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은 바로 자로입니다. 아마도 공자 제자 가운데 가장 널리 이름을 떨쳤기 때문일 거예요. 한편 자공도 계강자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인물로 염유라는 제자가 언급됩니다.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공자는 오랜 시간 제자들과 함께 한 까닭에 각각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어요. 자로는 과감함, 자공은 똑똑함. 그래서 자로는 군사 분야에서, 자공은 외교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그렇다면 염유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맹무백이라는 또 다른 인물과의 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로, 염유, 공서화는 매우 빼어난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훌륭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로는 다만 큰 나라의 군대를 이끌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염유는 큰 고을의 살림을 맡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공서화는 관복을 입고 사신을 맞이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훌륭한 인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5-8

네, 공자 선생님은 꽤 깐깐한 인물이었습니다. 좀처럼 제자를 크게 칭찬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만약 안연에 대해 질문했다면 어땠을까요? 좀 대답이 다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당시 실력자들은 안연과 같은 인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 밑에 둘 정도로 쓸모 있는 인물이라 판단하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공자는 각자의 능력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자로가 군사 방면에 재주가 있었다면 염유는 행정 분야에 빼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계산도 꼼꼼하고, 일처리도 깔끔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자로의 성품과는 정 반대이지요.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대화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로가 물었다.
"배운 건 바로 실천해야겠지요?"
"부모와 형제에게 물어보아야지. 어찌 성급하게 행동하느냐?"

염유가 물었다.
"배운 건 바로 실천해야겠지요?"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지."
11-22

어라? 똑같은 질문에 영 다른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다행히 그 자리에 위에서 소개된 공서화라는 제자가 있었어요. 그도 의아했는지 공자에게 질문합니다. 어째서 다르게 답했느냐고. 공자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염유는 소극적이라 적극성이 필요하고,
자로는 성급하여 절제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제자의 성품에 따른 공자의 맞춤형 교육법이라 할 수 있겠네요. 과감함은 자로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의 발목을 붙잡는 큰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이를 걱정한 것이지요. 한편 염유는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매번 혼나는 자로와는 영 딴판입니다. 허나 그도 공자를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갈등은 염유가 계씨 집안을 위해 일하면서 생긴 사건 때문이예요. 공자는 계씨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염유의 모습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계씨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염유의 재능 덕택에 계씨는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어요. 이에 공자는 크게 상심하여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내 제자가 아니다. 북을 두드려 그를 내쫓아도 괜찮다. 
11-17

북은 본디 전쟁에서 쓰이는 물건입니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북을 두드리며 사기를 높였지요. 그처럼 염유를 적군처럼 대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공자의 큰 상심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에서 '명고법鳴鼓法'이라는 전통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예요. 옛날 성균관에서는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북을 울리며 다녀야 했답니다. 바로 염유의 이야기에서 빌려온 일종의 벌인 셈이지요. 북소리에 내쫓긴 제자 염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논어는 그 이후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공자와 염유의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사실만 전하고 있어요.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염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논어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 둘의 갈등을 엿볼 수 있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힘이 부족해서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는 지금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구나."
6-12

공자가 보기에 염유는 꽤 훌륭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스스로의 한계를 짓고 거기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잇었습니다. 이 부분에 공자는 적잖이 실망했어요. 게다가 계씨처럼 부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 아래서 그들의 수족처럼 일하다니요.  


공자의 평가를 따라 염유에 대한 후대 사람의 평가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공자 제자 가운데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지요. 그러나 따지고 보면 염유 입장에서는 적잖이 억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자가 고향 노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염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염유가 계강자에게 요청하여 공자를 다시 노나라로 불러들였다고 해요. 이를 보면 염유는 스승 공자를 꽤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비록 그가 현실 정치에 몸 담았다고 하나 공자와 계속 관계를 이어간 것으로 보여요. 그렇지 않다면 어찌 둘의 갈등이 논어에 남아 있었을까요. 공자의 이상에 비추어 보면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나름 염유 입장에서는 공자의 이상을 현실에 옮겨보려 노력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상은 숭고하고 멋지지만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듯, 꿈꾸는 대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지요. 현실의 변화는 더디고, 현실의 싸움은 승패를 가리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공자의 시대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때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춘추전국이라는 혼란기는 공자 사후에도 몇 백 년을 더 이어갑니다. 공자의 꿈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몇 백 년이나 지난 뒤였어요. 공자 시대에 공자는 낡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시대는 크게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수백 년 전 주공을 입에 올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논어의 주인공은 공자인 바람에 염유의 입장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께 크게 혼난, 내쫓김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염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상상해보면 좀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갈등이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나 좀 웃어넘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이 참, 선생님도 현실을 너무 모르시네.' 하면서 말이지요. 


염유의 초상. 현실주의자의 면모가 보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 여덟 번째 쉬는 시간. 현실주의적 관점에 대해 더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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