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2025/05/29-09/07 @일본 도쿄
인간 등정의 발자취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라는 대입 서류 질문에 제가 적은 답입니다. 면접을 대비해 좀 있어 보이는 책으로 고른 거긴 하지만 거짓은 아니었어요. 책의 뒤표지를 덮으며 가슴이 뻐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말입니다. 다만 르누아르와 세잔의 전시를 보고 이 책이 떠오를 줄은 몰랐습니다.
<세잔X르누아르 : 근대성의 선구자들> 전시가 현재 도쿄 미쓰비씨 1호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초상, 정물, 풍경 그리고 이 두 작가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들까지 총 52점을 선보입니다.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의 협력으로 밀라노, 마르티니, 홍콩을 거쳐 도쿄에 왔다고 하네요.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은 동경의 심장부, 동경역 인근 마루노우치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파리의 저명한 수집가이자 미술상인 폴 기욤(1891-1934)과 그의 미망인 도메니카 발테르의 수집품입니다. 이 전시의 시작은 젊은 미술상 폴의 안목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진보적인 수집가와 딜러들의 도움을 받았고, 이후 컬렉션이 오랑주리 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이렇게 우리에게까지 온 것이죠.
큐레이터의 마음을 읽어보자
미리 밝히는데 이 글에 작품 사진은 없습니다. 개별 작품에 대한 정보도 없다는 뜻이지요.
촬영이 금지된 건 아니었어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특별히 제재가 없어 많은 관람객이 가와이네~ 스고이네~하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습니다.
그저 관람자로서 큐레이터의 의도를 추측해 보고 전시 전반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포스터의 두 여성 인물화와 키 컬러에서 큐레이팅의 의도가 엿보이죠? 르누아르는 핑크색, 세잔은 민트빛. 각 작가들의 화풍에서 포착한 색입니다. 전시실마다 이 키 컬러들이 변주됩니다. 그림 정보 옆에도 핑크와 민트 스티커가 붙어있어 한눈에 두 작가를 인지할 수 있었어요.
오디오 가이드도 르누아르와 세잔을 각각 다른 캐릭터의 성우가 배역처럼 맡아서 했나 보네요. (궁금했지만 일본어 까막귀라 아쉬울 뿐)
인트로 방엔 여섯 작품, 두 작가의 풍경-정물-인물 작품이 한쌍씩 병렬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제 맥주 샘플러나, 오페라의 서막을 연상시키네요. 이어서 풍경-정물-인물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Round 1. 풍경
르누아르의 작품에서 자연은 즐겁고 평화로웠지만, 세잔의 작품에서는 엄숙하고 영원합니다.
- 귀스타브 제프 누아
위 표현이 보여주듯 이 방의 작품들은 두 사람의 차이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세잔은 작업실에서 그린 그림이 야외에서 그린 그림만큼 좋을 수 없다며 다양한 풍경화를 남겼습니다. 과감하게 원근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르누아르는 옥외 작업에 대해 뭐라고 밝혔을까요.
스튜디오에서는 빛이 항상 똑같은데, 야외엔 스튜디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빛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빛에 휩쓸려 버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도 없습니다.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가 이 고민을 어떻게 녹였는지 가늠하며 보니 작품들이 더욱 특별했습니다.
Round 2. 정물
정물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좀 더 도드라집니다. 정물의 소재마저 최대한 유사하게 전시함으로써 르누아르의 따뜻한 표현력과 세잔의 단단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네요.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던 세잔이 정물에서 관점, 색채, 형태, 구성 등등 얼마나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는지 보여줍니다.
반면 르누아르는 두꺼운 식탁보 위에 복숭아, 딸기, 햇살에 붉게 물든 배를 풍부한 색채로, 부드럽게 생동감 넘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또 꽃이 그의 작품에서 어떤 모티브로 쓰였는지 엿보입니다. 도예가로서의 경험이 정물에서 꽃병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도 흥미롭지요.
Round 3. 인물
풍경과 정물만큼이나 각 작가가 인물을 어떻게 다르게 다뤘는지 보여줍니다. 르누아르는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 '목욕하는 다이애나'(1742, 파리 루브르 박물관)를 보고 여성 인물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그는 부드럽고 진주 같은 피부와 발그레한 볼터치 등 생동감 넘치는 표현에 집중합니다.
세잔은 거칠고 강렬하게 신체를 표현하는데요. 르누아르가 친구나 가족처럼 친밀한 대상의 몰입하는 모습을 자주 그린 반면, 세잔은 가족을 묘사할 때 의도적으로 예술적 거리를 두었다는 해설이 기억나네요. 부인의 초상조차도 모델의 얼굴에 배경과 옷차림의 동일한 파란색과 녹색을 덧입혀서 이상화를 방지했다고요.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초상화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시도를 거듭합니다. 목욕하는 사람들을 그린 세잔의 그림 사이에 르누아르의 그림을 하나만 살짝 섞어 놓는 재치도 돋보였어요.
다음은 한국?
듣자 하니 이 전시가 가을에 한국에 온다고 합니다. 전시장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겠지요. (아마 샤갈 끝나고?) 그럼 기다렸다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9월 7일 이전에 도쿄에 가실 일이 있다면 보시길 권합니다. 전시장 주변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동선조차 전시의 일부니까요. 가령 르누아르의 인물화에서 세잔의 인물화로 넘어갈 때, 신축하며 덧붙인 부속 건물의 복도를 지나야 하는데요. 그 복도에 스폰서인 록시땅이 그라스에서 퍼온 듯한 향을 흩뿌려 놓았습니다. 더불어 잠시 자연광을 받다 보면 마법처럼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런 감각적 감상은 각 전시관 고유의 것이겠지요.
근데 왜 이 전시가 인간 등정의 발자취라는 거야?
제가 서두에 거창하게 책 제목을 적은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막바지 모던 레거시(Modern Legacy) 전시실에서 느낀 전율 때문입니다. 이 전시실엔 세잔과 르누아르가 이후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가득합니다. 특히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 앞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는데요. 스포일러에 가까우니 이렇게만 적어두겠습니다.
흔히 르누아르는 예쁘고 여성적이고 행복하고, 세잔은 강렬하고 남성적이라고 표현하지요. 저도 재미로 'Round'라는 단어를 써봤지만, 만약 이 전시가 두 작가의 '비교'에만 그쳤다면 저는 이 전시를 그냥 그런 전시로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궁극엔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가 공유한 혁신과 확장, 재해석을 아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비전을 추구했지만 우정과 존경 그리고 공통된 예술적 관심사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음을요.
그후의 화가들은 이 평행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살롱 도톤느가 설립되었을 때 르누아르와 세잔의 이름이 새 건물의 페디먼트에 나란히 놓인 이유입니다. - 조르주 리비에르
이 전시는 르누아르와 세잔이라는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가가 어떻게 스스로를 다듬어 갔는지, 동시대의 다른 작가와 달라지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그 이후 근 현대 작가들은 르누아르와 세잔의 유산을 어떻게 물려받아 제 나름대로 발전시켰는지 드라마틱하게 응축해서 보여줍니다.
끝이 아닙니다. 이 전시엔 <프랑스 현대 미술의 풍경화 - 코로에서 마티스까지>라는 소 기획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세잔과 르누아르가 뿌린 씨앗들이 어떻게 발화되었는지 볼 수 있어서 또 한 번 감탄했습니다. 비록 작품은 11개(회화 10+판화1)지만 그 하나하나가 기존의 고전적인 표현에서 결별하려는 치열한 시도를 담고 있어서 코끝이 다 찡하더라고요.
인류는 이렇게 과거를 뒤로 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제가 언급한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바로 이런 인간의 여정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이 전시를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하려 노력했습니다. 가령 이런 질문들요.
세잔은 왜, 어떻게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해 주겠다고 한 걸까?
모네의 풍경화에서 맴도는 핑크빛은 르누아르의 붉은빛과 어떻게 다른가?
코로나 쿠르베는 어떻게 다른 풍경 사조를 만들려고 시도했는가?
피사로의 푸른빛은 세잔과 어떻게 다른가?
시슬레의 평면 구성은 세잔의 표현에서 무엇을 뺐는가?
드레인의 풍경화와 세잔은 같은 풍경을 어떻게 다르게 포착했는가?
마티스의 모래색과 파도의 푸른빛은, 세잔의 모래색과 파도의 푸른빛과 무엇이 같고 다른가?
이 질문들을 챗GPT에 넣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마 그럴싸한 대답을 토해낼 겁니다. 제가 한 엉뚱한 상상보다 더 근거에 기반해서 간명하게 답하겠지요.
아니 전시를 굳이 직접 봐야 할까요? 인터넷에 세잔과 르누아르 그림이 고화질로 널렸고, 여러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말이죠. 하물며 나의 풍경, 정물, 인물화를 업로드하며 '세잔과 르누아르 풍으로 그려줘'하면 몇 초 만에 그려주는 세상이잖아요.
이런 쉬운 방법을 버리고 굳이 가서 내 눈으로 전시를 보고, 보는 내내 꾹 참아가며 작품 사진을 찍지 않고, 이 글도 검색이나 챗GPT를 사용하지 않고 썼습니다. (초안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프라인으로, 퇴고하며 팩트와 번역 체크만 인터넷 활용)
스스로 생각하고 다듬습니다. 질문을 만들고 답합니다. 그렇게 나온 이 글은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감상자가 저의 이야기를 딛고 자신만의 감상을 펼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이 과정이 또 다른 인간 등정의 발자취라 믿으면서요.
*뱀발
1) 저의 감상이 큐레이터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 이 전시의 오디오가이드 제작, 제가 잘 할 수 있습니다. (본업 라디오PD) 국내 에이전시 담당자 님, 혹시 글 보고 마음이 동하시면 메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