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기엔 두 분이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데요.
"우리 아이가 밥을 안 먹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난감 사달라고 떼를 쓰는데 그냥 무시해야 하나요?"
육아 커뮤니티에는 이런 질문들이 매일 쏟아지고, 그 답글에는 늘 오은영 박사님과 조선미 교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누군가는 "오은영 박사님이 공감이 우선이라고 하셨어요."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선미 교수님이 단호하게 '안 되는 건 안 돼'라고 하라셨어요! "라고 하죠.
유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아 전문가를 자칭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결국 알고리즘은 우리를 저 두 분 중 한 분에게 데려다줍니다. 양육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마지막 질문은 '그래서 언니는 누가 맞다고 봐요?'입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사실 두 분의 메시지는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합니다. 엥? 한 분은 엄근진 현실육아고, 한 분은 공감해 주라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같냐고요? 아래 양육태도 그래프를 가지고 설명드려 볼게요.
양육태도유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7년입니다.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가 부모의 온정성(반응, 지지, 애정)과 통제력(요구)을 기준으로 세 가지 양육태도(권위 있는, 독재적인-흔히 '권위 있는'과 '권위적인'이라고 직역하는데, '권위 있는'과 선명하게 구분하기 위해 제 글에선 '독재적'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허용적인)를 제안하며 이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매코비(Maccoby)와 마틴(Martin)이 무관심, 방임적인 양육태도를 추가해서 현재의 네 가지 유형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양육 방식이 자녀의 심리적, 행동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합니다. 특히, 권위 있는 양육태도가 자녀의 자존감과 독립성, 사회적 유능성을 키우는 데 가장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어 이상적인 양육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물론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현실에 비해 너무 단순화했다는 지적도 있지만요.
다시 오은영 선생님과 조선미 선생님을 소환해 볼까요? 두 분은 아이에게 무작정 끌려가는 부모도,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부모도 아닌, 존중받을 만한 '권위 있는 부모'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출발점이 달라요. 오은영 박사님은 주로 독재적인 양육 태도를 가진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말합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감정을 수용하라고요. 부모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통제하고 길들이려 하기보다, 아이의 자율성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시죠.
조선미 선생님은 주로 허용적인 양육 태도를 가진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합니다. 애정이 높다고 통제를 안 해서 아이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요. 그런 부모들에게 단호하게 경계를 설정하라고 조언합니다. 단순히 엄하게 하라거나 화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일관된 규칙을 세워 아이가 세상의 질서를 배우게 하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제게 '조선미 선생님이 맞지 않나요?' 하는 양육자는 제가 보기에 독재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때론 방임적이기도 해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고 이미 아이에게 충분히 호통을 치고 있어요. 그럼에도 '내가 때로 너무 무르게 한 것 같아. 이제부터 더 엄격하게 훈육해야겠어!"라고 다짐해요. 이미 아이의 감정을 무심하게 넘기면서 그 행동의 근거로 조선미 선생님의 메시지를 듭니다. 그리고 더 강력한 통제와 훈육을 선택하죠.
반면 오은영 박사님의 공감을 인용하는 양육자는 '역시 육아는 공감'이라며 무조건적인 동의와 감정 읽기를 이어갑니다. 그래야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진다고요. 이미 충분히 허용적인데 그러다 지치면 방임적 태도를 보이기도 해요. 이런 양육자가 경계 설정과 행동 통제를 못하는 이면에는 자존감에 대한 오해와 아이와 사이가 나빠질 것에 대한 두려움도 보여요. 결국 두 그룹 모두 전문가의 조언을 왜곡해서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해 버리는 거죠.
이런 현상은 비단 양육의 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강화해 주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위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는 심리 현상입니다.
여러분 주변의 양육자는 어떤가요? 오은영 파와 조선미 파가 각각 어떤 양육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떠올려보세요. 앞으로는 누가 맞냐 묻기 이전에 '나는 어떤 양육자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보면 어떨까요? 애정과 통제를 다 적절히 높여서 권위 있는 양육자가 되려면 그 출발점이 어딘지 아는 게 우선이니까요.
단호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단호해지고,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에는 기꺼이 기다려주는, 그런 유연하고 따뜻한 1 사분면(=권위 있는 양육태도)에서 우리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