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Jun 19. 2021

앵두 서리는 어른들이 한다

앵두 열매

  아침 산책을 하생긴 버릇이 있다. 떨어진 열매를 모으는 이다. 동네 화단엔 앵두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동글동글 열매가 생기고 점점 커지더니 투명 구슬처럼 반짝거리 붉게 익어갔다. 주변에 새들이 많지만 잘 익은 열매보다 꼬물거리는 벌레들이 더 좋은 모양이다. 앵두가 익어가는데 새들은 관심이 없다.


 앵두를 맛보고 싶기도 했지만, 눈이 찌푸려질 만큼 시큼한 단맛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떨어진 앵두를 모으며 아이처럼 즐거웠다. 비가 내린 후에 가보면 나무 아래가 빨갛게 쏟아져 있었다. 아직 덜 익은 살구빛인 것도 연한 다홍빛도 물러지지 않은 것만 골라 주었다. 앵두를 접시에 놓아두면 점점 진한 빨강으로 바뀌며 향기 솔솔 풍겼다.

익어가는 앵두열매 @songyiflower

 아빠의 앵두나무해마다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열렸다. 앵두가 더 진해지지 않을 만큼 빨간 물이 들면 아빠는 나무 아래  포대자루를 펴놓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남은 열매는 손으로 쓸듯이 털어내면 나무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젊은 아빠는 앵두를 따면 항상  유리병에 담금주를 만들었다. 그러고도 남은 열매는 한 줌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씨를 뱉으며 드셨다. 어린 나에겐 앵두 씨앗 뱉기도 귀찮시큼하기만 했다. 래도 아빠의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  앵두를 골입에 넣었다. 그나마 달콤함이 더 느껴졌지만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앵두가 익었던 어느 해 6월 아빠는 부산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 근처 시장에 손수레에 앵두와 산딸기를 종이컵에 파는 분이 계셨다. 앵두와 산딸기를 받아 든 아빠는 사탕을 받아 든 아이 눈처럼 촉촉해지셨다. 아프 아빠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어 다행이었다.


떨어진 앵두를 모았다

  앵두가 더 익을 것 같지 않을 만큼 검붉은 색이 돌았다.  할아버지 한분이 앵두나무 앞에 있는데 왠지 젊은 아빠가 겹쳐 보였다. 아빠의 앵두나무는 주인이 바뀌어도 열매를 맺고 있을까?

  

  앵두나무 앞은 줄지어 선 듯 계속해서 어른들만 나타났다.  나던 어른이 웃으며 빠른 손으로 빨간 앵두를 입에 넣다.  앵두 귀해지다 보니 어른들의 아이 시절 소소한 별미 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트 과일 진열대에 산딸기는 보이는데 앵두는 파는 곳이 없다. 금방 물러지는 앵두는 맨손으로 따서 후후 먼지를 털어 먹어야 제맛이기 때문일까? 접시 위에 익어가는 앵두 열매를 보니 자꾸 입안에 침이 고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구 향기는 기억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