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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l 21. 2021

여름 한가운데

7월의 야생

 늦은 오후 마을을 나가 중랑천 수변공원을 헤매듯 걸었다. 여름꽃들이 뒤엉켜 핀 풍경을 보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로 핀 름 꽃들은 급하게 피 더운 공기와 섞여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 장맛비는 오래 머물지 않았는지 중랑천은 물이 마를 대로 말랐다. 다가올 8월을 예견하 야생화 모두 터질 듯 피었다. 야생의 여름은 중랑천이 가장 잘 아는 듯했다. 태양이 이미 시든 풀을 바짝 말리며 부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좋아했던 애인이 떠난 기분이다.


  허탈한 마음은 꽃을 발견하는 일도 사진을 찍는 손도 멈춰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6월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부질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꽃들이 피어있던 풍경이 그리워진다. 꽃이 많은 시간이었다. 대부분 씨앗을 남기고 떠났건만 그래도 남은 꽃을 발견했다.


 꽃양귀비는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처럼 작게 피었고, 토끼풀은 부끄러운 듯 끝이 발그레해 보였다. 코스모스는 실새삼에게 마음을 다 뺏긴 듯 녹초가 되었다. 수레국화는 파란 실핀처럼 헝클어진 초록 머리에 장식처럼 보였다. 붉은 토끼풀은 사진 한 장 안 찍었다며 토라진 듯 꽃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가장 씩씩해 보였다.  


  떠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미련을 두지 말라고 스님이 그러셨는데 다 잊어버렸다고  아닌 척 지내다가 빈자리를 보며 청승을 떨었나 보다. 이별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곧 가을꽃들이 피어날 것인데, 이른 꽃을 찾아보려면 훌훌 털어야 했다. 그럴 땐 냉수 한잔이 최고가 아니던가. 시원한 중랑천 물가로 가까이 갔다.

 막상 들여다보니 물 한 모금에 눈물이 핑 나오려고 했지만 중랑천에서 큰 잉어들이 살을 가르며  내게 오는 것 같아 뒷걸음질 쳤다. 길고양이들이 가끔 다가와서 먹이를 달라고 하는 듯,  잉어들도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건너편에 오리 행렬이 지나가는데, 아기오리들은 이제 낳아준 부모만큼 몸짓도 커졌다. 자연이 하는 일은 구경만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았나 보다.

 

  물가를 벗어나자 터프하게 가지를 세우고 폼을 잡은 수양버들이 보였다. 나무 아래엔 산국화 싹이 무섭게 돋아나고 있다. 노란 산국화 향기는 가을이 점령하기도 전에 발견의 기쁨을 줄 것이다.


지친 듯해도 야생은 가장 부지런히 세상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만남은 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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