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에 키우는 녹색식물을아이처럼 편애한다.이른 봄 정원사들처럼 나도 베란다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해마다 성공과 실패를 오가지만, 꽃이 한송이라도 피면 자신감은 다시 살아났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아이들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는 건 변화무쌍한 화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해바라기 키우는 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어느 디자이너의 인터뷰에서 자기 키만 한 해바라기를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사진을 보고는 욕심이 났었다. 해가 드는 창밖을 일제히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신기했다.
역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법인가 보다. 계량 품종인 미니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더니 나란히 두 송이가 피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베란다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멋지게 폼을 잡은 해바라기는더운 여름을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아쉬운 건 해바라기 꽃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해바라기를 보려면 늘 엉거 주춤한 자세여야 했다. 키워준 주인한테 얼굴 좀 보여주면 좋을 텐데, 해바라기는 정말 이름대로 '해'만 좋아했다.
화분을 잠시 돌려 꽃을 보고는 다시 제자리로 놓아야 했다. 씨앗이 여물어 가면서 그동안 미안했는지, 나를 보려는 듯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미니 해바라기였지만 제법 씨앗도 많이 나왔다. 그 씨앗을 잘 말렸다가 올봄에 심었다.
작년 해바라기에서 여문 씨앗으로 피어난 해바라기
싹이 난 것 중에겨우 하나만 살아남았지만,금방 시들어 버릴 듯 기운이 없었다. 줄기는 이미 갈색으로 변했고, 줄기 끝에 잎사귀 서너 장만 남았다. 그래도 해바라기가 참고 견디고 기다리며 꽃이 피려는 시간을 믿어 보고 싶었다.
그런 해바라기가 오늘 깨어났다. 비록 모양이 갖춰지진 않았지만 해바라기는 노란 꽃잎을 밖으로 내밀었다.
새로 핀 작은 해바라기도 뒤통수를 내밀고 창밖만 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하나도 밉지가 않다.
해바라기가 해를 더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의 시간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산책길에 뽑힌 채 누워있는 해바라기를 만났다. 여름 동안 나와 키를 맞추며 자라던 해바라기였다. 지난밤 비바람에 쓰러진 줄 알았는데, 곧 그 자리엔 주차장이 새로 들어선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집안에 크는 해바라기는 가는 줄기에 한송이가 피었지만, 밖에서 크는 해바라기는 굵고 단단한 줄기 하나에 스무 송이도 넘게 피었다. 첫 번째 꽃이 피었을 때도 기억나는데 여름도 끝나기 전에 떠나버렸다.
어제까지 서있던 해바라기를 찾아온 비바람은 꽃이 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른 아침마다 몰려든 벌이 가지고 간 꿀은 얼마나 될까? 비록 끝이 너무 빨리 찾아와 버린 듯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해바라기를 응원한다.
8월의 태양을 좋아하는 나는 한풀 꺾인 여름 태양이 좋다.
태양이 환하게 내리쬐는 길을 따라걷는 걸 좋아하는 나, 그리고 해를 사랑하는 해바라기는 취향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곧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해바라기도 단단한 씨앗으로 여물 시간이 되었으니, 꽃은 이제 태양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꽃은 고개를 떨군 채 스스로 할 일을 할 것이다. 태양과의 뜨거웠던 사랑이야기일까? 작은 씨앗이 힘겹게 커가는 성장 이야기일까? 아니면 슬프지만 성스러운 죽음에 관한 것이라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