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Aug 23. 2021

그래도 나는 해바라기를 응원한다

해바라기

  화분에 키우는 녹색식물 아이처럼 애한다. 이른 봄 정원사들처럼 나도 베란다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해마다 성공과 실패를 오가지만, 꽃이 한송이라도 피면 자신감은 다시 살아났다. 식물을 키우는 것이 아이들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훨씬 더 어렵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는 건 변화무쌍한 화초들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해바라기 키우는 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어느 디자이너의 인터뷰에서 자기 키만 한 해바라기를 집 베란다에서 키우는 사진을 보고는 욕심이 났었다. 해가 드는 창밖을 일제히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신기했다.   

 

 역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법인가 보다. 계량 품종인 미니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더니 나란히 두 송이가 피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베란다 가장 양지바른 자리에 멋지게 폼을 잡은 해바라기는 운 여름을 즐기는 듯했다. 그런데 아쉬운 건 해바라기 꽃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해바라기를 보려면 늘 엉거 주춤한 자세여야 했다. 키워준 주인한테 얼굴 좀 보여주면 좋을 텐데, 해바라기는 정말 이름대로 ''만 좋아했다.

 화분을 잠시 돌려 꽃을 보고 다시 제자리로 놓아야 했다. 씨앗이 여물어 가면서 그동안 미안했는지, 나를 보려는 듯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미니 해바라기였지만 제법 씨앗도 많이 나왔다. 그 씨앗을 잘 말렸다가 올봄에 심었다.

작년 해바라기에서 여문 씨앗으로 피어난 해바라기

 싹이 난 것 중에 하나만 살아남았지만, 금방 시들어 버릴 듯 기운이 없었다. 줄기는 이미 갈색으로 변했고, 줄기 끝에 잎사귀 서너 장 남았다. 그래도 해바라기가 참고 견디기다며 꽃이 피려는 시간을 믿어 보고 싶었다.    

그런 해바라기가 오늘 깨어났다. 비록 모양이 갖춰지진 않았지만 바라기는 노란 꽃잎을 밖으로 내밀었다.

 로 핀 작은 해바라기도 뒤통수를 내밀고 창밖 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하나도 밉지가 않다. 


해바라기가 해를 더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의 시간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산책길에 뽑힌 채 누워있는 해바라기를 만났다. 여름 동안 나와 키를 맞추며 자라던 해바라기였다. 지난밤 비바람에 쓰러진 줄 알았는데, 곧 그 자리엔 주차장이 새로 들어선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집안에 크는 해바라기는 가기에 한송이가 피었지만, 밖에서 크는 해바라기는 굵고 단단한 줄기 하나 스무 송이도 넘게 피었다. 첫 번째 꽃이 피었을 때도 기억나는데 여름도 끝나기 전에 떠나버렸다.

 어제까지 서있던  해바라기를 찾아온 비바람은 꽃이 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른 아침마다 몰려든 벌이 가지고 간 꿀은 얼마나 될까? 비록 끝이 너무 빨리 찾아와 버린 듯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해바라기를 응원한다.


 8월의 태양을 좋아하는 나는 한풀 꺾인 여름 태양이 좋다.

  태양이 환하게 내리쬐는 길을 따라 걷는 걸 좋아하는 나, 그리고 해를 사랑하는 해바라기는 취향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곧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해바라기도 단단한 씨앗으로 여물 시간이 되었으니, 꽃은 이제 태양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꽃은 고개를 떨군 채 스스로 할 일을 할 것이다. 태양과의 뜨거웠던 사랑이야기일까? 작은 씨앗이 힘겹게 커가는 성장 이야기일까? 아니면 슬프지만 성스러운 죽음에 관한 것이라도 좋겠다.


 나도 봄부터 여름 내내 찍어둔 꽃 사진을 꺼내보면서 나의 가을을 완성하고 싶어졌다.

 

 

 


이전 14화 어딘가에 꽃피고 어딘가에선 꽃이 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