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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Sep 08. 2021

이제서야 알았다

나팔꽃 키우기

 한밤중 돼서야 가해졌다. 잠든 가족들에게 엄마가 필요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배고픈 가족도 없고, 잔소리를 들을 아이들은 자고 으니 말이다. 화이자 백신을 맞은 탓인지 몸이 축 늘어져, 금방 잠이 오지 않았다. 베란다에 가로등 불빛 비추는데 나팔꽃 덩굴 보였다. 지 아이들처럼 기특해 보였다. 나팔꽃이 날마다 새꽃으로 피어난다는 건 키우기 전엔 몰랐다. 처음엔 한송이가 다음은 서너 송이가 새로 피었다가 정오가 되면 오므라 들었다.


  아침 나팔꽃 덩굴이 다시 꽃을 피웠다. 봄에 심은 나팔꽃은 5월에 꽃이 피었지만, 벌레가 너무 번져 뽑아내야 했다. 바람이 덜 드는 구석에 둔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바람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화분을 두었다. 행히 에 심었던 것보다, 건강하게 자란 나팔꽃 덩굴은 지지대를 빙빙 돌며 갔다.


 유로운 영혼을 가진 나팔꽃 덩굴은 화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그렇지만 종잡을 수 없는 성격도 받아줘야 했다. 굴손이 방충망 밖으로 나가 방충망을 돌돌 감았다. 다른 덩굴손은 옆 화분의 토마토 줄기를 감으며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는 듯했다. 내가 만들어 논 지지대와 줄을 거부 하는 듯 보였다.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처럼 팔꽃은 자유롭게 뻗어갔다.


이른 아침 핀 나팔꽃(2021.09.06)

  방충망에 붙어버린 덩굴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문을 계속 열어 둘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의 마음을  엄마라고 해서 모두 받아 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남은 덩굴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이를 보듯 덩굴이 디로 가는지 지켜보는 마음도 즐기고 싶었다.

 

 난달 나팔꽃씨를 심은 날이 떠올랐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양다리 걸친 듯 완전히 다른 애인을 두는 것이었.  애인 사이를 오가는 것은 줄타기 같고, 관계가 나쁠 땐 몸과 마음이 함께 무너져 버린다. 무척 견디기 힘든 날들이 금방 지나가지 않을 듯 날 괴롭혔다. 그렇다고 쓰러지기엔 억울했다. 엄마로 역할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 실험을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품고 버텨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사연 어디든 넣어 두어야 했다. 올봄에 죽버린 나팔꽃 화분을 깨끗이 닦 새 흙을 었다.

 엄마로 속상한 기분을 흙에 묻어버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떠올리며 씨앗을 넣었다. 씨앗 위에 흙을 살살 덮어주며 주문을 외웠다.

잘 자라렴 잘 자라렴. 그리고 꽃이 되렴.

 쩌면 지금 아이들도 성장과 실패를 오락가락하며 씨앗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아이들도 성장쉽고 간단하지 않은 듯했다. 그동안 내가 아이들을 씨앗처럼 키워냈다고 믿었지만, 아이도 스스로 작은 씨앗을 키워내고 있다는  몰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감옥처럼 만들어 버렸을지 모르겠다.


  나팔꽃 덩굴에게 미래를 맡긴 기분을 즐겼다. 매일 물을 주고 틈틈이 영양제도 충분히 넣어주었다. 아침마다 물이 모자라지 않은지 잎을 살피고 줄기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꽃이 피었다. 잠든 두 아이의 얼굴 같은 작은 나팔꽃이 푸른색으로 반짝이며  자라고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꽃을 보면 힘이 나는 엄마지만, 사실 두 아이를 키우며 어마어마한 위안을 받고 있다는 걸 몰랐나 보다. 두 송이 나팔꽃이 나를 보며 이제 알았냐며 웃어 주었다.


 나팔꽃은 매일 새 꽃으로 나를 반긴다. 같은 꽃송이지만 싱그럽고 다다른 표정이다. 특별히 해준 것도 없고, 물 주기도 잊어버리는 날도 많은데 이른 아침마다 나를 기쁘게 해 줄까?


 이제서야 알았다. 나팔꽃 키우기처럼 아이들에게 내가 한 일은 돌봐주기였다. 아이들이 자란 건 엄마 품이긴 해도 크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는 일도 걱정으로 만들어진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그만두어야 했다. 아이들은 단지 내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꽃처럼 매일 방긋 웃어주는데 말이다.


 매일매일 소동을 만들어 엄마를 지치게 하는 아이 둘을 오가 하지만, 아침을 밝혀주는 나팔꽃 키우기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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