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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Oct 11. 2021

사라졌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진의 기억

 자연과 등지려고 작정한 것처럼 사람들은 포클레인을 앞세워  달려왔다. 시끄러운 소음은 참을 만했지만, 화단이 순식간에 흙더미만 남은 건 실망스러웠다.

  

 집 주변은 공사 중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주차장에 있던 화단을 정리하는 공사다. 두 달째 공지된 일정대로 화단을 없애고 있다. 나무들을 이미 뽑았으니 다음은 화단 전체를 철거할 차례였다.


  화단 경계가 되었던 벽돌들이 치워지자 주자창 바닥과 똑같이 납작해졌다. 조만간 시멘트 작업을 하면,  사라진 화단 대신 한 대를 더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유독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화단이 하나 있었다. 주차장 안에 화단 관리하는 손이 없으니, 대부분 수룩하게 자란 야생초가 꽉 채우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가는 대로 풀이 사라락 소리를 며 찰랑거렸. 화단에 머무는 바람소리가 무척 듣기 좋았다. 바람 많은 제주의 오름에 자라는 억새처럼 바람 부는 작은 언덕을 보는 기분이었다. 

  유난히 꽃이 많이 피던 화단이었다. 벚꽃이 질 무렵부터 풀숲에 패랭이꽃이 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초록 풀 사이 듬성듬성 여러 가지 분홍색의 꽃이 피었다. 패랭이 꽃이었다. 꽃이 어떻게 심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야생초처럼 뿌리내린 자리에 마음대로 피어났다.

 

  꽃은 많았지만 집 앞이라 날마다 피는 꽃을 익숙하게 지켜봤다. 마트 장보기처럼 수시로 꽃을 보러 갔다. 꽃송이가 송이송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꽃잎이 모두 다른 얼굴로 반겨주었다. 덕분에 패랭이꽃은 수집한 듯 내 것처럼 꺼내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름까지 랭이꽃은 지치지 않은 듯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색과 무늬 모양이 다른 패랭이꽃@songyiflower인스타그램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 피던 패랭이 꽃은 흔들린 사진이 많았다. 그래도 기념 촬영을 할 땐 잠깐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있어 주었다. 사라진 꽃들은 사진으로 남았다.  


  꽃도 예쁘지만, 그 보다 바람이 부는 작은 언덕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바람을 담을 방법이 딱히 없었다. 대신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속에서 바람 부는 언덕을 찾았다. 흔들린 채 찍힌 꽃잎 뒤로 바람은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 사진집엔 단정한 증명사진 말고도, 바람 때문에 흔들린 사진을 함께 넣어두기로 했다.

 바람 불던 언덕이 그리워질 때면 꺼내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라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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