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에쌤 Aug 02. 2023

워킹맘 숙제1. "아기는 누가 봐?"

임신한 직장인은 출산이 가까워지면, 언제 출산휴가를 쓸지 생각이 많아진다. 예정일을 넉넉히 남겨두고 휴가를 내 여유롭게 출산을 준비할지, 혹은 반대로 해서 출산 후 산후조리 시간을 좀 더 길게 잡을지 고민이다. 


나는 매우 알뜰(?)하게 출산휴가를 썼다. 출산 한 달을 앞둔 어느 목요일, 퇴근하고 다음날 오전 8시반쯤 아이를 낳았다. 목요일 퇴근 후 저녁을 차려 먹고 샤워까지 한 뒤, 노트북을 열고 업무보고 서류를 작성하던 중 양수가 터지고 만 것이다. 역아라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녁을 야무지게 먹은 터라 바로 수술을 하지 못했다. 진통을 겪다, 아침에 아이가 나오는 느낌이 들 때 긴급히 수술을 했다.


덕분에 나는 금요일부터 자동으로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아이를 낳았으니 출산휴가를 출산일에 딱 맞춰서 쓰게 된 셈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낮에는 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과 취재약속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3개월 출산 휴가 후 직장에 복귀하며 워킹맘이라는 걸 실감하는 첫번째 사건. 바로 어마어마한 숙제, 아기를 누구에게 맡기느냐는 문제였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육아를 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YWCA에서 추천을 받은 분을 만나뵙고 수더분한 느낌의 시터님이 좋아보여 그분께 맡기기로 했다. 사실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는 집에서 아이를 보셔야 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을 일하겠다는 분도 거의 없었다.


시터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한 3개월 동안 내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복귀하자마자 모유 수유 중인데도 미국 출장에 갈 만큼 과거와 다름없이 일하고자 했지만, 여러모로 씁쓸했다. 내가 일하는 이유가 두려움에 근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두려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내가 일을 중단하고 몇 년간 육아를 한다면, 다시 일할 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 함께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친구는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바로 자신이 아이를 길렀는데, 그 이유가 "엄마인 나도 아이를 보기가 이렇게 힘든데, 남에게 어떻게 믿고 맡기냐"는 것이었다. 나는 경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일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네 월급이 모두 시터 비용으로 들어가도 경력을 이어가는 게 중요해"라고 친구를 설득하려고  했었다. 그만큼 두려웠던 것이다.


둘째, 내가 일하지 않으면 우리집 대출금은 어떻게 갚지? 라는 두려움. 상당히 대출을 많이 받고 집을 샀기 때문에 외벌이로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이런 생각이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우리집'의 대출을 갚기 위해 일하느라, 나는 '우리집'에 거의 머물지 못하고, '우리 아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남'과 하루의 대부분을 '우리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성난 사람들>을 보며, 에이미 웡이 남편에게 한 말에 깊이 공감한 이유도 이러한 나의 경험 때문이었다. 에이미는 "난 즐기지도 못하는 집 말이야. 맨날 일하느라 바쁘니까"라고 하소연한다.


셋째, 내가 전업주부가 되면 아이를 힘들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무엇엔가 몰두하는 내 성격상, 아이를 피곤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와 거리두기에서 꼭 필요한 것은 반드시 직장생활은 아니지만... 난 아이에게 몰두해 나중에 '빈둥지 증후군'을 겪을까봐 지레 겁을 먹은 점도 조금은 일을 놓지 못하는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매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직장을 고수하면서, 여자선배들은 상반된 이야기를해 줬다. 


선배1. "돈 아끼려고 출퇴근 시터 쓰는 것 아냐? 입주 도우미 쓰고, 너는 그 시간에 나가서 돈을 더 버는 게 효율적이야."

선배2. "일해도 괜찮아. 대신 밤에 데리고 자면 된다."


결국 난 초4학년까지 같이 아이와 자는 워킹맘으로 살았다. 

작가의 이전글 마흔에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