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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시 찾아왔을 때

우울증이 찾아왔다

by 마음 자서전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물렀다.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갈까, 몇 번이나 마음을 굴려보았지만, 발끝까지 닿지 못했다. 겨울 햇빛은 창문 너머에서 얇게 흔들리기만 했고, 나는 그 빛을 붙잡을 힘조차 없었다. 이런 날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그냥 무기력해진다. 그런데 오늘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디서부터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무언가 가라앉는 느낌.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속에선 작은 돌멩이 하나가 계속해서 내려가 바닥을 치는 느낌. 언젠가 지나간 줄 알았던 우울함이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겨울 탓일까, 햇빛의 길이가 짧아지면 마음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계절의 영향을 덜 받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날씨에 더 휘둘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밖은 차갑고, 안은 적막하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아내와의 관계도 마음을 눌렀다.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서로의 마음이 어느 순간 잘 맞지 않는 날들이 생긴다. 아내는 아내대로 지쳤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이유를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만 삭히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말 없지만, 눈빛과 한숨과 침묵이 집 안을 떠다닌다. 사람 사이의 온도라는 것이 꼭 대화로만 전달되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조금씩 틀어져 있다는 걸 알아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틈이 오늘따라 더 넓게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 하루였다. 책을 펼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영상 장비를 만져볼까? 하다가도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나를 설레게 했던 일이 지금은 아무런 불꽃도 일으키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책하다가도, “이렇게 되는 날도 있지”라며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했다.

겨울은 원래 쉬어가는 계절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씨앗이 땅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는 시간. 그 말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는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조금 더 깊이 잠겨 있는 것뿐이라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집 안의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지고 있었다. 비록 마음은 무겁고, 어둠은 길게 드리워졌지만, 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빛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아주 작게는 남아 있었다.


아직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하기에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온기가 조금은 있다. 그 작은 온기로 이겨내는 하루.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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