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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Jul 07. 2024

집의 전설

구렁이 성주신

부모님이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내가 여기저기 주워든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이 집은 원래 첫째 큰아버지 댁이었다. 시골에서 보기드문 초록색 기와에 정남향의 너른 마루, 방 세 칸이 있는 단촐한 집이었다. 이 집에서 큰어머니는 늘 병치레가 심했고, 농사도 잘 안되고 동물들도 시원찮았다. 이전부터 팔아야지, 떠나야지 하는 걸 스무살 어린 막냇동생 우리 아부지가 덥석 문 것이다.


마침 결혼할 사람도 생겼고, 그 당시 L기업을 다니고 있던 아빠는 사택에 결혼할 사람을 들이긴 싫었다. 사택엔 아주머니들 입김도 너무 세고 자기들끼리 모함도 하는 걸 지켜봐온 터였다. 출퇴근이 길어지더라도 시골집으로 가야겠다. 그래서 당시 시골집 치고는 큰 돈 500만원을 빚을 내 주고 샀다. 형한테 알면서 덤테기를 쓴 것이다. 그때 평균 월급이 18만원. 쌀 한가마가4만5천원.


아무것도 모르는 울 엄마, 고향은 여기지만 도시에서 제약회사 다니던 울엄마 영문도 모르고 시골집에 시집와서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들었다. 그것도 큰형님이 불러서 “그 집에는 개도 키우지 말고 텃밭도 가꾸지 말라며. 아무것도 안 되는 땅”이라며 악담 아닌 악담이었다.


그런데 웬걸 친정집에서 데리고 온 하얀시고르자브종 메리가 새끼를 숨풍숨풍 낳았다. (나는 여기부터 기억이 있음) 동네 사람들은 그 하얗고 오동통한 똥강아지들을 분양하라고 했다. 엄마는 동네사람이니 그냥 나누어 줄 생각이었지만 사람들은 이쁜 강아지를 그냥 데리고 오면 안된다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기 바빴다. 메리는 이후에도 여러번 건강하고 귀여운 강아지를 낳았고 빚 갚는데 요긴하게 썼다. 엄마는 토끼도 키웠는데 토끼들도 숨풍숨풍 새끼낳고 잘 커서 앙고라 털 팔아 부지런히 빚을 갚았다. 당시 아빠 월급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길을 지나가다 우리집에 들어왔다. 시주 받으러 오는 스님들이 시골엔 많았기 때문에 쌀 한바가지 퍼가지고 오는데 이상한 얘기를 했단다. 이 집은 터가 아주 세고 마루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휘감고 있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 기운이 잘 맞으면 흥할 것이고 아니면 힘들게 살 것이란다. 그래서 어찌하냐고 하니 잘 만난 것 같으니 그냥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자긴 시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구렁이때문에 들어왔더란다.


그리곤 나는 중학교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동생은 고딩때부터 했으니 꽤 많은 시간을 엄빠 두 분이서 사셨다. 그 사이 아빠는 멀쩡한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셨고 덩달아 엄마도 바빠졌다. 집은 아이들이 없고 두 분도 거의 잠만 자는 숙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집을 가꾸지 못해 나무 울타리만 부지런히 자라 거대한 사철나무같았다. 사실 뭐가 먼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집이 어수선해서 아이들이 떠난 건지 아이들이 떠나서 어수선해진건지. 온 가족의 인고의 시간이었다.


사실 그 집을 떠날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인근 도시에 아파트청약도 당첨되어 부푼 꿈을 꾼 적도 있었고, 학업때문에 아이들이 서울로 왔을 때 진지하게 온 가족이 올라올까도 고민했었다.  그래도 결국엔 떠나지 않았으니, 구렁이 성주신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할 무렵 아빠는 미뤄둔 평생의 과업을 실행하셨다. 바로 새 집짓기였다. 막내돼지가 불면 날아갈새라 벽돌집을 짓듯 직접 설계하셨다.  자신의 로망 잔디밭과 벽난로, 다락방, 넓은 테라스를 가진 2층집을 말이다. 지금의 우리 집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지은 이 집은 떠나온 내게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었다.  나의 딸도 키워냈고, 코로나때는 나의 학교가 되기도 했다.


두어 해 전 설날,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 땅의 옛 집 주인이던 첫째 큰아버지도 오셨다. 사촌오빠의 차에서 내린 큰아버지는 한사코 집에는 들어오지 않겠다며 멀찍이 서 있다가 차로 들어가버렸다. 황망한 그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 자신이 등떠밀듯 팔아버린 집이 이렇게 커다란 집이 되어 떡 버티고 있으니, 그리고 그 집은 여전히 막냇동생이 주인이라니.


그리고 큰아버지는 어제 별이 되어 내일 발인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가만히 그의 기억을 더듬다보니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집의 역사가 말이다.


어떤 집이든  집만의 이야기가 있다.  자리에서 이렇게 버틴 이도 있고, 여러 집을 거쳐간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꿰고 보니 마치 구비문학 같은 기분이 들어 남겨본다. 당신의 집은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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