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는시간
마침 운전을 하며 ‘운전하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면허를 딴 건 20년도 넘었지만 운전을 지속적으로 한 건 7년 정도 인것 같다. 나의 오랜 스승은 운전을 할 때 가장 내 시간 같다고 했다.
스승님은 중고등시절 나의 서울 엄마같았다. 나를 첫 레슨 순서로 잡아 저녁밥을 꼭 먹이고 시작했다. 레슨이 끝나고 나는 가지 못했다. 다음 언니, 그 다음 언니 레슨에 나를 옆에 앉히고 보게 했다. 아니면 해결하지 못한 주법을 밖에서 연습하게 한 다음 모든 언니들의 공부가 끝날 때쯤 다시 들여 확인하셨다. 그리고는 차를 태워 집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중요한 녹화가 있으면 나를 태우고 방송국에 갔다. 일요일임에도 교복을 입고 다니던 애는 나 뿐이었다. 아마도 내가 제일 어린 학생이어서 빨리 귀를 트이게 하고 싶었을테고, 그리고 시골에서 상경한 촌꼬마라 밥이라도 한번 더 먹이려 그랬으리라.
스승님이 교수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생활은 계속 되었다. 예비학교에서 가장 먼저 레슨을 잡아 하고 연습을 하고 스승님 일정이 다 끝나면 나를 태워 단골 분식집에 갔다. 밥을 꼭 먹이고는 함께 한시간 넘게 차를 타고 방배동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공들인 제자가 결국 이지경이라니 새삼 죄스럽네.
차 안에서 함께 한 시간으로 치면 거진 레슨 시간 만큼 될 것이다. 스승님은 집에 들어가면 연습이 어려우니 차에서 악보도 외우고, 생각 정리도 하셨다.
덕분에 공 음반 모니터링도 함께 하고 독주회를 하면 독주회음원도 함께 들었다.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자 모니터요원이었다. 조잘조잘 어려운 스승 앞에서 내가 본 공연의 풍경들을 전달했고 그녀는 깔깔 웃으며”내가 그랬냐?”고 했다. 그러다 지하철 역에 내리고 부웅 떠나는 빨강프라이드는 내 기억 속에 오래 자리잡고 있었다.
운전할 때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는 스승의 말, 그게 이제 와닿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명연주자로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탈출하듯 나와 장시간 운전 하면서 많은 것을 구상했고, 어떤 건 글이 되었고 어떤 건 음이 되었으니까.
마침 이런 ‘운전하는 시간’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각성이라도 하듯 타이어가 터졌다. 조심조심 갓길에 대고 보험사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차들이 빨리도 달린다.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멈춰있어도 이상하게 조급하지 않았다. 내면의 고요가 비로소 찾아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