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증인>
이 영화는 세상에 필요한가
이한 감독의 데뷔작인 '연애소설'은 감상 당시 사춘기였던 내게 큰 감흥을 줬고, 소설 원작인 '완득이'는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메시지에 함몰되어서 영화가 과잉 전개되거나, 괜찮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메시지 때문에 허무한 영화들이 많다. 이한 감독이 어떤 감독이냐고 물으면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괜찮은 완성도로 그려내는 감독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의 최근작인 '증인'은 안정적인 작품이다. 예상 밖의 전개가 펼쳐지거나, 전에 없던 영화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웃으면서 보다가 끝에 가서 울게 되는 전개는 전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인'의 미덕이라면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2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는 거다. 개봉도 2월 초라서, 설 연휴에 가족들과 볼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증인'을 추천하겠다.
타협의 순간 열린 두 가지 길
정의로움을 위해 투쟁하듯 일하던 변호사 순호는, 아버지가 보증으로 진 빚을 비롯해 현실적인 문제로 신념을 잠시 접어두고 대형 로펌에 들어간다. 대형 로펌에서는 민변 출신의 순호로 이미지 변화를 꾀하며, 순호를 회사의 에이스로 내세우려고 한다. 그 시작으로 순호는 살인 용의자의 무죄 입증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살인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증을 가진 소녀 지우를 만난다.
순호는 현실적인 이유로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사건을 맡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순호에게는 두 가지 길이 동시에 열리게 된다. 하나는 대형 로펌의 에이스가 되기 위해 대표와의 술자리에 참여하고 사건 입증을 위해 지우를 설득하는 길이고, 또 하나의 길은 지우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지우의 물음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게 되는 길이다. 후자의 경우 순호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대형 기업과 투쟁 중인 변호사 친구의 영향 또한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타협의 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이 되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속물이 되려고 해도 되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 있다. 지우의 물음에 응답하지 않는 이들이 태반인 세상이지만, 순호는 지우의 말에 귀 기울인다. 처음엔 자신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우와의 소통이 자기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지우는 순호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그 말 앞에 순호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봐도 명백하게 나쁜 사람이 되는 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지우의 가장 단순한 물음 앞에, 순호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자신은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진짜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순호는 늘 답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답을 실천하는 게 쉽지 않음을 세상 속에서 배우다가 타협의 길에 택한 사람이다.
영화의 메시지나 전개 방식은 이미 많이 봐오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의 진리를 늘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지우의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 질문을 외면하고 타협한다면 나는 아주 멀리멀리 가야 할 거다.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어야 했지만 외면했던 질문을 다시 마음에 아로새긴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