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 시티즌십 세레모니에 다녀왔다.
약 40분간 진행된 세레모니에서 선서를 한 직후부터 공식적으로 나는 아일랜드 시민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내 생일이기도 해서, 마치 아일랜드에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일랜드에 와서는 신기한 일들이 자주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날은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한국을 떠날 때부터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이혼을 하기로 결정하며 배운 아픈 교훈은, 선택은 과거의 다짐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대와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할 수 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이 싫어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과거의 일이다. 식품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처럼, 다짐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다짐은 아직도 유효한가? 썩은 재료로 요리를 시작하려는 건 아닌가? 한국이냐 아일랜드냐 하는 나라별 장단점 보다 이 질문에 더욱더 집중했고,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이는 답이 아닌, 진짜 내 마음에서 나오는 답을 찾으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떠날 때 가졌던 과거의 다짐보다, 미래의 나를 생각했을 때 나를 설레게 하는 가능성을 선택했다. 아일랜드 시민이 되면 자동으로 EU시민이 된다. EU시민이 되면 EU국가 어디에서든 아일랜드에서와 동일한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언어적인 부분만 해결이 된다면 아주 많은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근사한 타이틀이다. 공부를 계속하는 것에도 마음이 끌렸다. EU학생과 Non-EU학생은 학비 차이가 많이 나는데,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면 이는 큰 이점이다. ChatGPT와 이런저런 상의를 해 보고 네덜란드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과 공부. 이 두 가지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아일랜드 시민이 되기로, EU시민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부를 계속해도 좋고, 일을 계속해도 좋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한 수입이 필요하니 일은 계속해야겠지만 현재 내고 있는 모기지를 다 갚고 나면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일을 안 해도 놀고먹으며 사는 삶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내 힘이 닿는 데 까지 일을 하고 싶다. 이게 더 재밌으니까. 아일랜드에서는 10년을 일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나는 집이 있기 때문에 노후 준비는 이것으로 되었지 싶다. 원래는 아끼고 아껴 집을 한 채 더 살까도 생각을 했는데 그것보다 이제 저금은 집값을 갚을 정도만 하고, 나머지 돈은 쓰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저축이고 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많이 떼긴 하지만 그만큼 복지가 잘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저축하기보다는 번 돈은 다 써버린다. 흥청망청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개인의 발전을 위해 투자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이 방법이 인플레이션이 필수인 자본주의에서 가장 현명한 헷징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6년 전, 9월에 입사를 했다. 첫 회사는 지금의 회사에 인수가 되어서 아직도 처음 봤던 사람들을 계속 보면서 일을 하고 있다. 운이 좋게도, 인생이 내가 오를 수 있는 계단을 하나씩 준비해주고 있다. 첫 회사는 초급 던전이었다. 회사가 인수되고 나서는 초중급레벨의 던전이 되었고, 아일랜드 시민이 된 지금은 중고급 레벨 던전에 막 들어온 것 같다. 이곳에서는 어떤 미션을 수행하며 레벨업을 할 수 있을지 낯선 맵을 확인 하며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이제 내 손에는 레벨 1짜리 나무둥이가 아닌 그럴싸한 칼이 들려있다. 화려하게 생기진 않았어도 내구성도 좋고 정감이 가는 듬직한 칼을 여러 미션을 완수한 최종 보상으로 얻었다. 방어구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수수해 보여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도 많은 방어구가 있다.
이게 좋다. 더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좁은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 계란 한 알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폐지를 주으러 다니는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사실 이런 삶의 모습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의 형태로든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이십 대 중반, 서른을 바라보는 한창 그 아름다울 시절에 생이 주는 불안에 떠밀려 다니기만 했다. 그렇게 밀려다니기만 하다가 결국 내가 싫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직도 그 불안의 근본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없어지는 종류의 것도 아닐 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래를 생각하면 설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도 사실은 좋은 땔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이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견문이 넓어진 것일까? 과거에 있었던 곳에서 끝까지 버텼어도 지금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일랜드에 와서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하루하루인 것 같았지만 실은 그 하루하루는 아주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그 조금씩 다른 것들이 6년이라는 시간으로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 나는 안 되는 것에 죽자고 매달리지 않는다. 나를 깎아내면서까지 맞지 않는 틀에 욱여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는 나를 받아줄 곳이 반드시 있다고 믿으며 훌훌 털고 일어난다. 과거를 뒤돌아보며 남은 미련으로 후회하기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실수를 반성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비자 문제로 아일랜드를 떠날 걱정을 하던 때가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갈 길이 멀어도 코 꿰이고 등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걷는다. 나는 운이 좋아서 그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늘 감사하며,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어떤 길이 나와도 부디 재미있게 즐기기를.
그렇게 다다른 목적지는 분명히 낙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