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연히 마주한 골목길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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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도시로 출장을 갔다. 일이 아니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버스를 탔고, 얼마 후 목적지 근처 정류장에 내려 지도앱을 켰다. 장소는 기업체 연수원이었는데, 지도가 안내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 골목이었다. 목적지와 어울리지 않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발걸음은 이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당이 있는 벽돌 주택이 눈앞에 다가왔다. 건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2층 높이에 나이는 20년 아니 30년 쯤 되어 보였다.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담벼락에는 차 대신 집주인이 가꾸는 화분이 놓여 있었고, 골목 곳곳 작은 카페와 꽃집, 공부방도 보였다. 고개를 살짝 젖히자 파란 하늘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전봇대들이 열을 맞춰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다. 처음 가 본 곳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5분 쯤 흘렀을까, '이곳은, 내가 살던 동네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대여섯살, 내가 살던 곳은 이층 벽돌집이었다. 잔디가 채워진 마당엔 커다란 대추나무가, 집 뒤편 공터에는 내 키보다 훨씬 큰 해바라기 꽃이 자라났다. 집 앞에는 놀이터도 있었다. 그네와 시소를 한참 타고 모래놀이까지 마치면 언니와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골목 끝자락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선 드라이기 바람 너머로 아주머니들의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아삭한 초록 대추를 먹고 싶어 나뭇가지에 손을 쭉 뻗었다. 때로는 옆집 마당에서 딴 새콤달콤한 석류를 맛볼 수도 있었다. 해질녘까지 골목 곳곳을 마음껏 누벼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창문 너머 엄마와 이웃들의 시선이 우리를 따라왔고, “저녁 먹자, 이제 들어오렴”이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면 하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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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하늘도, 그곳도, 나도 한없이 밝고 맑았던 것 같다.
골목 끝자락에 다다를 즈음, 이층 창문을 바라보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서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꼬마가 훌쩍 커버린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멈춰 사진을 찍어 유심히 바라보니 햇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몇분 뒤, 익숙한 빌딩이 눈앞에 다가왔고, 시간 여행은 끝이 났다.
사실 그곳에서 살았던 기간은 길어야 3~4년 정도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아파트로 이사했고, 그 이후도 주택에 살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빨간 이층집과 골목길이 따라온다. 아마도 사람은 시간을 길이로 기억하는 게 아닌가 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순간을 다시 붙잡은 그 순간, 마음이 괜히 몽글몽글해졌다. 유난히 환했던 어린 시절이 스며들어 한여름 더위까지 뽀송하게 변한 듯했고,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남은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