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빠와 단 둘이 먹는 점심

2025년 6월 12일의 기록

by Kyle Lee

아빠. 오랜만이에요. 몇 달 사이에 살이 너무 많이 빠지셨어요. 요즘은 좀 어떻게 지내셨어요?


엄마가 아프면서 아빠도 덩달아 고생하시는 것 같아요. 전화로 들었을 때는 엄마가 이렇게 오래 아플 줄 몰랐어요. 아직도 명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고요. 식사도 거의 못하시고 주기적으로 링거를 맞으며 버티고 계시다고요.


요즘은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던데, 그래도 다행히 엄마는 취소된 환자가 있어서 하루 만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요. 너무 속상한데, 그래도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는 요즘 꿈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오셨다고, 아마도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시나 보다 하는 말씀을 하세요. 정말 그런 거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많이 지쳐 보였어요. 그리고 아빠도 같이 지쳐 보여요. 안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시는 것까지 두 분이 똑같아요.


아빠와 단둘이 먹는 점심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아마 오 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은데. 늘 차를 수리하러 가시던 그 카센터 근처에서,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간장게장 집에 갔어요. 거기서도 아빠는 오늘처럼 엄마에게 줄 음식을 포장해서 집으로 갔어요. 아니, 아빠. 아빠 것을 나한테 다 주면 아빠는 뭘 먹어요. 게 껍데기는 아빠가 먹어요. 아니, 그만 주라고. 내 것도 충분히 많이 있어요.


아빠는 늘 그랬어요. 늘 가족이 먼저였어요. 먹고살기 위해 한결같이 새벽 다섯 시면 집을 나서서, 어김없이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어요. 늘 그랬어요.


아빠는 그렇게 그대로인데, 시간이 아빠 위로 스쳐가요. 사막을 흐르는 바람처럼 이마 위를, 눈가를, 손등을 지나가요. 시간이 흐르고 난 자리에는 풍화의 흔적이 남아요. 단단하던 아빠를 메마른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게 만들어요. 아빠가 늘 가던 그 카센터는 시간에 녹아 이제 사라지고 없어요. 오늘은 문득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무서워져요.


오늘은 아빠와 추억 이야기를 할래요. 나는 아빠처럼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을 갖게 되었어요. 이제 얼마 후면 백일이 되는 둘째 아들을 안고 있노라면 잊고 있던 아빠와의 기억이 되살아나요.


늘 바빴던 아빠였기에 함께 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 줄 알았는데, 아들이 품에 들어오면 어디선가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감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형형색색 다채로워요.


아빠에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웠던 날. 아빠에게 처음 야구 배트 쥐는 법을 배웠던 날. 아빠에게 처음으로 농구를 배웠던 날. 아빠가 날 안고 이상한 로봇 이야기를 지어내며 웃음 지었던 날. 잠든 날 안고 침대에 눕혀주던 아빠의 단단한 팔. 주말 아침이면 잠든 날 깨워 데려가던 목욕탕. 냉탕에 들어가 춥다는 날 안아주던 아빠. 어느 아픈 날, 열이 올라 비몽사몽 하던 내 손에 쥐어주던 새 장난감…. 잊히지 않는 추억이 너무 많아요.


아빠. 아빠는 나이 칠십을 넘기고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아빠를 찾고, 그래서 여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다 하셔요. 한평생 음악에 젖어 사신 아버지는 참 맑고 치열했어요. 그런 아버지가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아빠, 방금 또 아빠는 돈이 넉넉지 않아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세요. 나는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이렇게 말해요.


나는 엄마 아빠와 살면서 단 한 번도 삶이 불행하다 느낀 적이 없었어요. 내 아이를 엄마 아빠가 키운 것처럼 그렇게 키우는 게 내 목표예요.


정말이에요. 솔직히 난 엄마 아빠처럼 그렇게 잘할 자신이 없어요.


아빠. 시간이 가는 게 싫어요. 나는 아직 아빠가 날 안아주던 열 살 남짓하던 그때보다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들을 안아주고 있어요.


나는 아빠처럼 훌륭하게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까 봐 겁이 나요. 여전히 나는 미숙하고 모자란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어릴 적 보던 아빠의 모습을 닮았어요. 보고 있노라면 세상 두려울 게 없던 아빠의 그 얼굴이에요.


내 아이들도 나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을까요? 이 얼굴 안에는 사실 감춰진 두려움이 있어요. 아빠는 어땠어요? 아빠도 그랬나요? 아빠도 나만큼 무서웠나요? 그럼 아빠는 어떻게 이 모든 걸 이겨냈나요? 어떻게 그렇게 다 해낼 수 있었나요?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에요. 이제 집에 가서 첫째 어린이집 하원을 해야 해요. 저녁을 먹이고 두 아이를 씻기고 재워야 해요. 어둠이 깔린 집에서 새근새근 잠든 두 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 거예요.


아빠. 아빠가 산 그 막국수와 감자전을 엄마가 먹고 어서 건강을 차렸으면 좋겠어요. 아직 우리 아이들이 너무 어려요.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듯했던 사랑을 기억하듯이,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면 좋겠어요. 나와 아내가 줄 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우리 아이들이 잔뜩 누렸으면 좋겠어요.


또 올게요. 다음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올게요. 우리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세요. 아빠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무더위가 오기 전에 꼭 또 올게요. 아빠. 사랑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