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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y 15. 2018

엄마의 엄마, 나의 할머니

어른이 되면 선택하는 게 쉬울 줄 알았다.

엄마의 엄마, 나의 할머니

어른이 되면 선택하는 게 쉬울 줄 알았다.


여전히 어려운 선택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사셨다. 가족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매일 일을 하셨고, 밭에 쓰러진 할머니를 동네 사람이 발견하곤 했다. 명절 빼고는 시골에 가지 않았기에 할머니를 뵙는 건 어색하고 불편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용돈도 챙겨주셨지만 할머니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할머니는 딸 6명과 아들 1명을 낳으셨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과 아들은 서울, 인천, 남양, 천안 등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할머니는 자식에게 피해 주는 걸 싫어하시고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다. 엄마한테 들었는데 혼자 사는 옆집 사람에게 매일 밥과 반찬을 주셨고, 길고양이에게도 밥을 챙겨주셔서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받았다고 한다. 손녀 손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기보다 맛있는 걸 먹길 바라셨고, 밭일을 도와드릴 때마다 얼굴 탄다며 집에 가라고 하셨다. 엄마가 없을 때 엄마한테 잘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는 이 정도다.


그런 할머니가 몇 번이나 쓰러지셨고 할머니 옆을 지켜드리기 어려운 엄마와 이모는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엄마와 이모는 돌아가면서 쉬는 날과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뵙고 인사드렸다. 할머니가 입원한 뒤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와 복도 의자에 앉아있었다. 처음에 할머니를 못 알아봤다. 그만큼 말랐고, 그만큼 늙으셨다.


삐쩍 마른 할머니


“아이고 다혜도 왔냐”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할머니께 인사했다. 할머니는 반가운 듯 반가워하지 않아 보였다. 시내에서 산 국밥과 과일, 만두를 침대에 올려놨다. 할머니는 뭐 하러 이런 걸 사 왔느냐고 물으셨고, 병실에 있는 할머니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셨다. 만두와 과일을 받은 할머니들은 덕분에 배부르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병실에는 우리 할머니를 포함해서 6명의 할머니가 계셨다. 다들 치매를 앓고 있어서 감사 인사를 여러 번 하셨고, 우리 할머니에게 ‘딸이 사준 거냐며, 좋겠네. 우리 딸은 다섯이여’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잠깐 간식을 드시고 옆에서 죽 드시는 할머니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지켜보셨다. 식사를 마치고 창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 켜져 있는 방을 찾아가 창문을 닫으셨다. 그것도 병실을 다 돌아다니시면서.


엄마와 이모는 할머니를 답답해했다.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계속 일을 하시고, 할머니 스스로를 위해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혼자 사시면서 몇 번이나 쓰러지셨고, 이모 집에서 같이 살기를 권해도 거절하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보며 엄마는 오늘도 한숨 쉬었다. 어른이 되면 선택하는 게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잘못될 까 걱정하며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할머니를 시골집에 모시고 싶지만 집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이번에 쓰러지면 큰일을 치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이도 저도 못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엄마는 같은 고민을 시작했다. 할머니를 잃을 두려움과 할머니의 삶을 망치는 중간에서.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할머니 모습을 잊을 수 없었는지 한참을 힘들어했다.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이모들과 의견을 나눴고 한숨으로 끝을 맺었다. 나 역시 할머니가 아른거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파킨슨병 때문에 손을 떠시면서 엄마 이름을 부르셨다. 어느 선택이 좋은지 모르겠다. 어려운 문제다. 


난 딸이 다섯이여, 여짝은 딸이 몇이여?
아이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씁쓸한 마무리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면서 씁쓸했다. 나이 듦에 대해. 이건 글로 옮기기조차 어렵다. 어르신들에게는 병원에 찾아오는 자식들뿐이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삶은 이어가고 있는 것인가. 아들딸은 자신의 삶과 일, 자신의 자식들 일로 바쁘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이기심인지, 어쩔 수 없는 것 인인지 모르겠다. 병실 복도를 걸으며 운동하고, 딸과 아들이 사준 간식을 드시며, 말없이 의자에 앉아계시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전히 엄마와 이모는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할머니를 찾았다. 그러다 할머니가 크게 다치셨다. 병원 복도를 걷다가 넘어지셨다는데, 이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걷기 어려울뿐더러 할머니를 도와줄 사람이 항상 필요했다. 엄마는 짐을 챙겨 할머니에게 가셨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모실지, 병원에 모실지의 고민은 끝났고, 앞으로 할머니 건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시는 듯했다. 연세가 들면 여기저기 아플 수밖에 없다. 할머니가 하지 못 하는 판단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어렵다. 잘 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냥 그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며 결정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 같다. 그 날의 최선으로.


월간심플 8월 '처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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