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갑작스러운 폭설로 세상은 온통 하얀 눈덩이 투성이었다. 그것이 편히 따순집에서 구경만 한다면 세상 좋은 절경이었겠으나 여느 직장인처럼 출근길을 나서기 전의 상황이라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갑작스러운 폭설은 전국의 출근길을 마비시켰고 하얀눈은 온세상을 하얗게 덧칠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경우는 오전반차를 미리 써둔 요행으로 폭설속의 출근을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조금 여유를 부리며 흰풍경을 감상했다. 오후 출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전내내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나서야 그친 폭설로 인해 잿빛의 골목도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아무도 접하지 않은 최초의 상륙자가 되어 발을 내 디뎓다. 뽀득뽀득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순백의 눈밭엔 내 발자국만 점점이 찍혀있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깨끗한 빈터엔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갑자기 내 발로 자국을 내기가 두려워졌다. 최초란 두려움과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의문을 갖은 채 걸음걸음마다 망설임을 담은 발자국이 눈길 위로 하나둘 흩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