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느끼는 이 마음들에 대해
달리다 보면 별별 마음을 다 느낀다.
어떤 날 그 마음은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으로 만든 주먹밥 같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몽글거린다. 예컨대, 퇴근 후에 단층 주택이 많은 동네를 달릴 때가 그렇다. 이집 저집에서 여러 식문화권의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집집마다 다른 그 냄세를 맡으면, 한국에 있는 내 가족은 오늘 저녁에 뭘 먹을까 궁금해진다.
어떤 날 그 마음은 잔뜩 긴장해서 뻑뻑해진다. 마음이 막 입대한 군인처럼 차렷 자세를 한다. 예컨대, 주말에 3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기 전이 그렇다. 집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곳도 구글맵에 찍어보면 30km가 되지 않는다. 그 말도 안 되게 긴 거리를 지난번에 달렸지만, 과연 이번에도 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약간은 두렵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그 두렵고 뻑뻑한 마음은 몸이 풀리듯 말랑해진다.
어떤 날 그 마음은 온 심장의 혈관이 불길이 된 듯 뜨겁다. 달려서 언덕을 오를 때가 확실히 그렇다. 나는 샌프란 북쪽 해변에서 시작해 디비사데로 거리를 따라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알타 플라자 공원까지 달린 적이 있다. 내리막 없이 평지와 여섯 개의 언덕을 잇는 그 길을 달릴 때,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 펄떡였다. 하지만 마음이 가장 뜨거운 순간은 뛸 때가 아니었다. 그건 한참을 달려 도달한 정상에서 달려온 언덕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였다. 바다까지 곧게 뻗은 길처럼 내 마음도 쫙 펴지고 그 위로 불이 번지듯 뜨거워졌다.
달리기는 도대체 무엇 이길래 이 여러 마음에 시동을 거는걸까.
이 여러 마음 덕분에, 달리기는 내게 운동 이상의 무언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놀이이자, 하이(high) 해지려고 대마 대신 선택하는 대안이자, 양치질 같은 습관이자, 주말을 시작하고 맺는 예식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스트레스를 다시 주는 미룬 숙제이자, 먹고 싶은 만큼 먹기 위해 잉여 칼로리를 버는 투자이자, 회사 일도 달리기도 힘들다면 차라리 일을 때려치우고 하겠다는 대체 노동이자, 라이프 스타일처럼 느껴진다. 아니. 도대체 달리기가 아닌 게 뭘까.
여기 적은 마음들은 전부 내가 느낀 마음이지만, 나 혼자만 느낀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 책에 여러 비슷한 마음을 적었다. 달리면서 온갖 마음을 느낀 사람도 하루키와 나뿐만이 아니다. 하루키의 책을 돌려 읽은 내 주변의 어떤 러너들도 자기들이 느낀 마음에 대해 쓰고 싶다며 울부짖는 중이다. 샌프란의 야생 코요태처럼 우는 그 러너들과 내 속마음은 이렇다. “달리면서 겪는 이 모든 마음에 대해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달리기를 말할 때 우리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번 써보자고 작정했다. 줄여서 달말우하이 모임이 탄생했다. 이 모임이 과연 잘 굴러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계속 달리는 이들의 마음에는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쌓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언젠가 마음을 탈옥해 세상에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임에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
하지만 내 희망사항과 관계없이 원래 힘든 것은 역시 힘들 것이다. 달리는 것도 힘든데, 그 경험에 대해 쓰기까지 하는 건 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 두 가지에 모두 애써볼 이유가 있다. 달리면서 느끼는 마음을 가지런한 글에 담으면, 그 마음의 유통기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글에 담지 않으면, 달리면서 느낀 아무리 주옥같은 마음도 얼마 안 가서 빛이 바랜다. 42.195km를 달려 결승선을 처음 지나던 순간의 뿌듯함도, 숨이 차게 달려 도달한 언덕 위에서 저 멀리 금문교 너머로 지는 석양을 봤을 때의 평안함도, 달리다가 펄펄 끓어서 이젠 달리기든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도, 전부 사라진다. 길게 보면 아무리 선명한 경험의 기억도 결국 까먹는다.
달리는 마음에 대해 쓰는 건 애써 수집한 그 보석 같은 마음들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다. 그것들을 쉽게 잃지 말자는 다짐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선명하게 보관할 가치가 있다. 그 마음들은 아직은 젊고 건강해서 뛸 수 있는 날에나 느끼는 특별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들은 그런 특별한 시절에 두발로 뛰며 힘들게 수집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달말우하이 모임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우리가 이 모임에서 그 귀한 마음들에 대해 충분히 써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