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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글

by 김붕어

새 노션 페이지를 열면, 늘 솔직하지 않는 말들이 우선 떠오른다. 똑똑한 척하는 말.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냐고, 확인을 구걸하는 말. 정작 망하고 있는 건 내 인생 같은데, 너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혼내는 메시지. 어렵고 마주하기 싫은 감정을 깔끔하게 빨래해서 싹 지워버린 이야기. 지어낸 디테일. 꿰뚫어 보면 다 그런 말들이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들은 생각의 우범지대와 안전지대를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최근에 쓴 두 편의 글 <새에게 보내는 편지>와 <애쓰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딱 그렇다. 둘다 수다스럽게 별별 이야기를 늘어 놓지만, 사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있다. 첫번째 글은 이렇게 썼으면 더 솔직했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막 이사 왔던 2022년 겨울에는 외로웠고, 그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그룹도 없었고, 그래서 새에게 편지라도 써서 그런 마음을 덜어내고 싶었다고. 사실, 두번째 글도 일종의 편지였다. 친구에게 전하는 그 글도 용기를 내서 이렇게 적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친구야. 오랜만에 내 마음이 착-하고 가닿는 널 사귀어서 참 반가웠다, 떠나서 무척 아쉽고, 응원할게.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런 말들을 솔직하게 적지 못했다. 대신, 말장난에 불과한 글과, 추상적인 관념들의 비빔밥 같은 글을 써버렸다.


사실, 난 내가 솔직한 글을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를 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도, 어떤 이미지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예컨대, 애플에서 뭔가 중요하고, 신비롭고,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물론 그런 이미지로만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이미지와 아예 결별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회사 규정상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임에도, 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애써 함구해왔다. 누가 물어보면 회사 규정상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디테일하게 다 말해버리면 사실 별거 없을 테니까. 종종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꼈다.


마찬가지로, 난 내 글 속에서는 꾸준히 달리고, 글도 쓰고, 본업에도 능한,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런 것들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애를 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혹시 누가 나를 정말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건 내가 못하는 모습은 숨기고 늘 잘하는 모습만 꾸며서 보여준 결과다. 사과한다. 내게는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이 있을 뿐이고, 시간이 있는 이유는 하지 않는 게 많을 뿐이고, 하지 않는 것들 중에는 때때로 찾아오는 회의감 때문에 제대로 하지 않는 본업도 포함되어 있다.


내 실제 모습에다 양념을 치고 싶은 마음이 내 천성 때문인지, 상처 때문인지, 열등감 때문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심어진 무언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과연 요가를 한다고, 명상을 한다고, 달리기를 한다고, 10일간 묵언수행을 다녀온다고, 글을 쓴다고, 누군가를 붙잡고 오랫동안 고민을 나눈다고, 여행을 떠난다고, 새 회사로 취직을 한다고, 사는 곳을 바꾼다고 해결 될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잘 모르는 이 마음을 결국 이해하려면, 분명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무슨 스텝-바이-스텝 레시피를 따라서 솔직해질 수 있고, 자연스레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 솔직하게 쓰는데 성공할 때는, 늘 용기를 내야 했다. 숨기고 싶은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심적으로 두려운 대상을 고발하거나, 오래된 슬픈 기억을 소환하데만, 용기가 필요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용기는 정말 마주하기 싫은 마음의 한 단면으로 눈을 돌리는 데 필요했다. 외면해왔던 마음을 마주하는 데 필요했다. 그 일에 성공하고 나면, 짜내고 싶어도 짜낼 수 없던 말들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내 취약함을 기꺼이 글로 나누고 싶은 마음은 부수적이었다.


이 글도 사실 그렇게 적었다. 내가 이 글의 독자로 둔 사람들은 올해 초부터 매달 한 편의 글을 같이 써온 <달말우하이> 글쓰기 모임 친구들이다. 그 모임을 시작할 때 난, 친구들이 솔직하게 쓴 글을 읽으면서 그 친구들을 더 깊이 알아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건 누가 마감을 어겼을 때도 아니었고, 맛깔나게 질주하던 글이 갑자기 ‘역시, 난 진국이야’ 같은 멘트로 허무하게 끝날 때도 아니었다. 정말 아쉽게 느껴졌던 순간은, 글의 저자가 더 솔직하고 자신만이 얘기할 수 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그래서 내가 저자에 대해 더 깊이 알게되는 디테일들에 꾹 브레이크를 밟은 게 보일 때였다. 그게 아쉬웠던 이유는 내가 그 친구들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야, 우리 더 솔직하고 용기 있게 써보자고, 주문하는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새 노션 페이지를 만들고 ‘솔직한 글’이라는 네 글자 제목을 붙이고 나니, 머릿속 한복판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하려던 말이 싹 사라졌다. 그것들은 전부 내가 글쓰기 선생님이나 된 것처럼 가르치려 드는 말들이었다. 그걸 다 지우고, 정말 며칠을 끙끙 앓으면서 다시 썼다. 이 글을 비로소 다시 쓸 수 있던 계기는 내가 쓴 글도 내가 솔직하게 리뷰했을 때였다. 그 글들에도 솔직함이 부족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내가 모임에서 느낀 아쉬움을 해소하려면 그냥 나부터 더 솔직하게 쓰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솔직한 글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나부터 솔직하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적었다. 쓰다가 도저히 안 써질 때는 말없이 껌벅이는 커서랑 눈치게임도 했고, 자리를 옮겨서 우리 집 고양이 워토랑 놀기도 했고, 단연코 올해 최고의 드라마인 <미지의 서울>도 글쓰다 말고 와이프랑 다 챙겨봤다. 젠가 블록처럼 한 단어 씩 쌓아 올리기도 하고, 책지피티처럼 말을 국수처럼 뽑아내기도 하면서, 결국 이 글을 완성했다. 완성해서 기쁘다. 그러나 가장 기쁜 이유는, 비로소 이 글에 적힌 말들이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몇 그람의 솔직함이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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