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일 달림. 기록 측정이 의미 없을 정도로 느렸음.” 2021년 3월 7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2023년 3월 5일, 처음으로 풀 마라톤을 완주했다.
“왜 굳이 장거리를 달리세요?” 장거리 달리기를 취미라 말할 때, 내가 종종 받았던 질문이었다.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긴 거리를 달리는 일은 필연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료하게 답할 수 있다. 그 일이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다고. 즐길만한 부분이 더 많기에 장거리를 달린다고.
처음에는 무작정 3마일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2020년 6월에 텍사스 휴스턴에서 캘리포니아 서니베일로 이사를 왔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서니베일과 그 주변 동네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걷고 달릴 때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있었다. 그 재미가 내 동력이었다. 항상 같은 시간대에 반려견을 산책하고 가끔 깔깔 웃는 커플. 서쪽으로 지는 석양이 남기는 노을의 그라데이션. 집집마다 다르지만 한결같이 정겨운 밥 짓는 냄새. 코로나 때문에 고립된 마음은 동네를 이리저리 누비며 연결되었다.
그러다 느슨한 연대를 시작했다. 2021년 7월 샌프란시스코 5k 대회가 그 시작이었다. 대회 당일 새벽에 일어나 레이스의 시작점인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에 도착한 후 놀랐다. 코로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달리기 위해서. 남녀노소 다양한 인종의 러너들과 샌프란의 부둣가를 따라 뛴 경험은 격려가 되었다. 이제 나도 ‘달리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처음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번 대회에 참가하고 나니 다음 대회가 기대되었다. 이번에는 더 긴 거리를 달리고 싶었다. 하던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원래도 감정적으로 가깝지 않았는데 미국으로 온 뒤 더 멀어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묵한 아버지는 마라톤 대회에 꾸준하게 참가하셨다. 장거리를 달리면서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그즈음 마라톤 클럽에 조인했다. M과 J와 나는 샌프란시스코 하프 마라톤 당일 레이스 시작 전에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내가 출발선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첫 하프 마라톤 레이스를 홀로 시작했다. 과연 하프 마라톤은 긴 거리였고 쉽지 않았다. 부둣가의 평지를 달리다가 금문교를 지나 프리시디오 언덕을 넘어갈 때는 속도가 확 줄었다. 그러나 골든 게이트 공원까지 큰 무리 없이 도달했고, 익숙한 공원 코스를 뛴 후 결승선을 통과했다.
우선 걷지 않고 완주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도 있었다. 레이스 내내 나랑 비슷한 페이스로 같이 뛴 이들의 기쁜 모습을 보았을 때가 그랬다. 비슷한 페이스지만 나보다 앞에서 달리며 이끌어준 실질적인 페이스메이커. 엎치락 뒤치락하며 내 승부욕을 자극한 러닝메이트. 나를 지나간, 내가 지나간 다른 참가자들. 이들 모두와 마음속으로 완주의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가장 큰 기쁨은 M과 J를 만났을 때였다. 그때 우린 서로 얼굴도 번호도 몰랐다. 그래서 나보다 레이스를 훨씬 일찍 끝낸 그들이 나를 기다려 줄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 둘을 시작선이 아닌 결승선에서 완주자로 만나니 반가웠다. 그 기쁨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후, 2023년 3월 5일 나파밸리 풀 마라톤에 J와 함께 참가했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클럽 멤버들과 아버지가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같은 자리에 거듭 생긴 물집을 케어하는 법. 26.2마일을 달리기 위한 훈련 계획표. 걷지 않고 완주하는 데 도움이 되는 페이스 전략. 대회 당일에도 도움을 받았다. 같이 참가하는 J는 나를 픽업해서 나파까지 태워줬고, 레이스 아침 긴장한 내 멘탈을 케어해줬다.
그렇게 내 생애 첫 풀 마라톤 레이스가 시작됐다. 첫 13마일은 비를 맞으며 달렸다. 페이스메이커와 그분을 따라가는 무리와 함께 달렸다. 덕분에 수월하게 레이스 절반을 달렸다. 그러나 22마일에 고비가 찾아왔다. 양쪽 종아리와 왼쪽 허벅지에 쥐가 났다. 왼쪽 허벅지에는 돌이 들어간 것 같았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다. 이쯤 되니 나 말고도 걷는 이들이 많았다. 걸을 수조차 없는데 4마일이나 남았으니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22마일 급수대에 겨우 도달해서 물을 마시고 쥐가 난 부위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조금 달리니, 응원을 건네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준비해 온 사인을 높이 들고, 케틀벨을 흔들며, 큰 목소리로 응원을 전했다. 몸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그 응원을 들으니, 놀랍게도 잠시나마 뛸 힘이 생겼다. 그렇게 남은 4마일 동안, 달리고, 쥐가 나면 멈추고, 다시 어떻게든 걷거나 달리고, 급수대에서 마시고 스프레이 뿌리고, 시민들의 응원에 감동하고, 필사적으로 완주하려는 다른 러너들과 응원을 주고받으며, 계속 달렸다. 아침 일찍 시작한 레이스는 비가 갠 오후가 되어서야 끝났다. 결승선을 통과했다.
2021년의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철저하게 개인 챌린지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내가 사는 환경, 이름 모를 러너들, 아버지, 레이스를 같이 달리는 참가자들, 클럽 멤버들, 거리에서 응원하는 사람들과 점점 더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장거리 달리기는 사실 그런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더 긴 거리를 달리면서 이 생각은 명료해졌다.
이 연대(solidarity)는 왜 즐거운가? 이런 이어짐이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한계에 도전하고 돌파해나가는 과정에는 그의 성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인과 맺는 직간접적인 연대도 필요하다. 남이 하는 걸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 경험. 코치에게 배운 훈련 방법. 익명의 타인과 가까운 지인이 건네는 응원. 이 모든 게 연대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대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다운 존재가 된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일이 타인과의 이어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내 경험처럼 어쩌면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서, 당신도 이 연대의 즐거움을 선명하게 경험할지도 모른다.
매일 3마일만 달리던 내가 2022년 3월의 어느 날 처음으로 6마일이 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일기를 찾았다.
‘날씨가 참 따듯하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온 것 같다. 오늘은 퇴근 후에 꼭 달리고 싶다.
…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늘 6마일을 뛸 수 있었다. 몸이 깃털처럼 날아갔다. 봄바람 덕분이었을까.’
봄바람을 연대의 대상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비가 그치고 올해의 봄 날씨가 온다면, 길게 달려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분명히 연대 맺을 수 있는 또 다른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를 앞서 달려나간 이들, 그리고 앞으로 달릴 이들과 상상의 연대를 맺는거다. 그 상상의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며 길게 달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