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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9. 2019

자식이 귀할수록 고생을 시켜라?

제발 자기 아이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교단에 있다 보면 가정환경이 불우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겪는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진짜 교사를 그만두고 싶어 질 때는 따로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과잉 애정을 쏟는 경우다. 그런 경우엔 답이 없는데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엄마가 학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학부모들은 주로 학부모회 회장이나 녹색어머니회장 등 다른 어머니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척척 맡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엄마들에게 한 턱 내는 경우가 많고 반 아이들에게 간식도 사준다. 그 엄마의 권력은 자식에게 대물림된다. 그 아이들은 친구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교사에게 대드는 경우도 있다. 자녀가 두 세 명 있어서 누나, 형들이 대대로 그런 역할을 하면 막내는 권력이 누적되어 더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간혹 폭력적이거나 욕을 하고 친구를 왕따 시키기도 한다. 한 번은 버릇없는 남자아이가 우리 반 반장이 되었다.(다는 아니지만 요즘 그런 추세가 있다. 축구 잘하는 리더십 강한 남자아이를 반장으로 뽑아 내세우고, 남자아이들이 단체로 나쁜 행동을 한다.) 그 반장 아이가 한 번은 수업시간에 맨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업을 하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내리라니까 안 내린다. 그리고 책을 하나도 안 펴길래 펴라니까, 끝까지 노려보며 안 펴고 버틴다. 내가 다가가서 노려보니까, 책을 내팽개치듯 책상 위에 던진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면서 “씨발~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길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고 하는 말투. 그래 봤자 자길 때릴 수도 없다는 듯.


내가 크게 혼을 내니까 이러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선생님 진짜 별로래요.” 그러니까 두세 명이 따라 그런다. “ 우리 엄마도 선생님 진짜 이상한 사람이래요.”


그럴 땐 다 때려치우고 싶다. 그 두세 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학교에 꽤나 많은 도움을 주는 엄마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이 다 심각한 폭력과 수업 방해, 욕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러 차례 면담도 요청하고 혼내기도 하고 했는데, 그때마다 그 엄마들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그랬다.

“선생님은 아이 미래보다 민원이 더 중요하신가 보죠?”

학교에 자꾸 불려 다니고 아이가 혼이 나니, 소문이 나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아이들 증언을 들어보면 작년엔 훨씬 심했는데도 담임 선생님이 혼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성적이고 작은 체격의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 아이 엄마들이 와서 하는 말이 1학년 때부터 계속 그랬다는 것이다. 이럴 땐 진짜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내 기억은 무려 20여 년 전으로 달린다. 20대 젊디 젊은 나이에 초임 발령받았을 당시 나는 의협심이 지금 보다 30배는 강했다.


오죽하면 부당한 학교행정에 반항하는 의미로 교사라는 직업을 때려치웠을까? 당시 엄마들은 지금보다 성적이나 상장에 훨씬 목을 맸다. 그리고 임원 엄마들은 학교에 제 집 드나들 듯했는데, 나는 그렇다고 임원들에게 특혜를 준 적이 없다.


그랬더니 엄마들이 나를 뒷담화하는 게 느껴졌다. 옆 반은 시험 때 문제 다 가르쳐줘서 100점 만점이 수두룩한데, 우리 반은 맨날 성적과 상관없는 거 하니 성적이 안 나온다고 대놓고 불평했다.


학기가 끝날 때였다. 그때 나는 엄마가 학교에 안 와도 친구가 토한 걸 치워 준다거나 하는 학생에게 모범상을 주었다. 그랬더니 임원 엄마들이 학교로 우르르 몰려와서 항의를 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맥 빠져서 학교 봉사를 하냐고요. 다 그런 맛 때문에 하는 거지."


기가 막혔다. 그건 그야말로 자기 아이 기 살리려고 학교에 온다는 이야기다. 그럼 아이가 버릇이 없어도 모범상을 주란 말인가? 참 어이가 없는 논리였다.


요즘은 그렇게 대놓고 내 아이 잘 봐달라고 하는 엄마들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반 반장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권력 남용 정신이 계승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학부모회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학교도 많다.


그런 경우 아이들은 엄마가 남의 아이들 가르치고 챙기고 하는 걸 보면서 뿌듯해한다. 나눔에 대한 개념이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이 기 살리려고 학교에 자주 오는 엄마들이 문제다.


‘기가 산다’는 게 대체 무언가? ‘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갖고 자기가 싫어하는 걸 다 피하는 인생?’ 그건 정확히 말해서 난봉꾼의 인생이다.


전에 잘 나가다가 지금은 노숙자처럼 사는 한 유명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어요. 내가 갖고 싶은 건 다 가졌죠. 한 번은 아빠가 학교에 찾아가 담임 선생님에게 호통을 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요. 내가 원하면 뭐든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 때문에 가정생활도 충실하지 못해 이혼당하고, 지금은 이렇게 노숙자의 생활을 하네요. 다시 태어나면 어렸을 때부터 고생하면서 제대로 살아 보고 싶어요.”

 

우리나라 속담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엄마들은 그 반대로 하고 있다. 즉 ‘귀한 자식 떡 하나 더 준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점점 자기밖에 모른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라고 생각되는 핀란드에서는 아이들이 두세 살 만 되어도 공공장소에서의 매너 등을 철저히 교육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런 풍습이 너무 매몰찬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는데, 나중에는 점차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의 습관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몸에 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땐 아이들에게 먼저 기를 살려주다가 버릇을 다 망친다. 요즘 음식점에 '노 키즈 존'이 생겨나는 이유다. 아이 버릇은 나중에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릴 때 습관이란 한 번 자리 잡으면 고치기가 무척 어렵다.


자기 자식이 귀하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자기 자식이 귀할수록 더욱더 남을 위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요즘엔 교사들이 아이들을 공개적으로 혼을 내면, 부모가 교사한테 쫓아와서 항의하기도 한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아이들 훈육에 있어서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한편 ‘오래 교사생활을 하려면 좀 비굴해질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눈 감자. 안 듣자. 난 할 만큼 했다.’ 이러면서?


그러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적어지는 나 자신을 느낀다. 참 서글프다. 그러면서 더욱 강하게 드는 생각은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면, 교사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살아갈 가정환경은 앞으로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한국 엄마들은 지나친 교육열과 자기 자식만 위하는 걸로 유별난 부분이 있다. 오죽하면 ‘맘충’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귀한 자식일수록 진짜 멋지게 사는 법, 즉 배려하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 옛말에 '자식이 귀할수록 고생을 시켜라'라는 말이 있다. 고생을 시킨다는 말은 기본예절 교육이나 가치관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게 가슴 아프다고 오냐오냐 키우면 아이를 망치기 십상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매가 사라지는 요즘 그 '고생'의 중요성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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