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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by 작가 정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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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토요일을 아무 일정 없이 보내고 있다. 긴 설 연휴를 맞아 이불 빨래도 하고 부지런히 하루를 보내려 했는데 역시나 게으른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밥 먹고 눕고 밥 먹고 누우며 시간을 축냈다. 결국 별다른 걸 하지 못하고 오후 4시 가까이 돼서야 카페에 왔다.



나는 나를 안다. 막상 휴가가 생기면 이것저것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결국 게으름만 피우다 하루를 보낸다. 가끔 그 시간도 내게 꼭 필요하단 걸 알지만 그게 아까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가급적 이런 시간을 갖지 않기 위해 매번 약속을 잡는다. 요즘엔 여자친구가 주말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해줘 고마운 마음이다.



내가 루틴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을 딱 정해 놓으면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몸이 그냥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런 자연스러움에 안정감이 생긴다. 반면에 갑자기 일이 펑크가 나 공백이 생긴다거나 오늘처럼 네가 알아서 시간을 보내보라고 휴가가 생길 때면 뭘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마음에 답답하고, 하루를 유의미하게 보내지 못한 것에 자책하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런 고민의 연속일 뿐 아니라, 루틴이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를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나는 일상의 루틴 속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 그런 일상이 편안하고 마음에 드는데 굳이 왜 여행을 다녀야 할까, 아직 스스로가 설득되지 않았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최근 나는 서른세 살이 돼서야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 전까지 전혀 모르던 새로운 맛을 느꼈다. 한달에 1~2번씩 서울 근교에 나가 대형카페에 있다 오는 게 그렇게 힐링이 되더라. 안 그래도 도시의 답답함에 어쩌지 못했는데 주말 드라이브가 새로운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니까 여행도 그렇게 맛이 들 수 있었다. 그 뒤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에 쉽게 편견을 갖지 않아야 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휴식은 나를 아는 휴식이다. 즉, 휴식도 루틴으로 만들고 싶다.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던 중에 이때쯤 되면 휴식이 필요하겠지, 하는 순간에 적정하게 쉬어주고 다시 루틴으로 돌아갈 수 있는 휴식 말이다. 지금도 이미 그렇게 휴식을 갖고 있는데, 매주 힘들어서 진이 빠지는 순간이 오는 걸 보면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휴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잠이다. 잠을 충분히 자주냐 아니냐에 따라 하루 컨디션이 좌우한다. 요즘 나는 평소 8시간 정도 자주고 있는데, 그게 조금이라도 줄면 피곤함에 하루종일 시달린다. 가끔 늦게까지 술을 마신다거나 하면 잠 시간이 줄어 그 다음날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하루를 통틀어 쉬고 싶다기보다 쉬는 것도 루틴을 만들어 적정만큼 쉬고 그 다음 스케줄을 밟고 싶다. 하지만 오늘처럼 갑작스런 휴식엔 무방비로 아무것도 안 하다가 느지막이 조금 움직이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게 다소 아깝고 찝찝하다.



이런 나의 성향을 평소 다른 친구에게 말하면 '엄청 계획적이구나' 하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루틴을 만들어 나를 붙잡아두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할 게 없는 상태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것도 맞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계획적인 사람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생활의 안정이 심신의 안정을 불러온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 안정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것을 좇은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치스런 고민에 불과하단 걸 잘 안다. 나중에 결혼하여 아이라도 낳으면 이런 시간이 꿈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을 잘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어찌 됐든 나는 휴식을 즐기기 위해 카페에 왔고, 이렇게 책 읽고 글 쓰면 금방 행복해진다.



또 이렇게 가끔씩 루틴을 어그러뜨려야 그 소중함을 더욱 느낀다. 나도 이상한 구석이 많아서 또 너무 루틴대로 살면 답답하고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때 이렇게 게으른 휴식을 취하면 더 일하고 싶은 열정에 불타오른다. 결국 완전무결한 것은 없고,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상의 루틴을 만들되 꼭 그 루틴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고, 그저 그런 대로 흘려 보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이런 게으른 휴식이 이틀 이상 되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든 그러지 못하게 일정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내일은 가족들과 포천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흘려 보내고, 내일은 좀더 부지런히 보내야겠다.



-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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