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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앞에서

한식 날 아버지 무덤 앞에서

by 원당
산소에 핀 할미꽃



바람이 묵은 낙엽을 쓸고 가듯

봄기운이 봉분을 어루만진다.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그곳엔 할미꽃 한 무더기,

봄볕에 취한 듯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자줏빛 꽃잎,

잎맥마다 새겨진 하얀 솜털이

마치 긴 세월을 견뎌낸

아버지의 손등처럼 느껴졌다.


거칠었지만 따뜻했던 손.


예전엔 몰랐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막아냈는지,

얼마나 자주 고개를 숙이며

가족을 품어왔는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어떤 꽃을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그저,

이 봄날 묘지에 피어난 할미꽃을 보며

왠지 이 꽃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느낄 뿐이다.


고개 숙인 할미꽃처럼,

당신도 그렇게 조용히,

삶의 시간을 다 채우고

우리 곁을 떠나셨지.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그 꽃을 바라보며

그 꽃처럼 살다 간

어느 한 삶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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