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쿠다스 Oct 21. 2024

아이가 내 이름을 써준다는 것

 이혼 소재를 다룬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황혼이혼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물 좀 더 줘."라는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말이 황혼이혼을 결심한 여자 분에게는 족쇄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우울감이 커지고 뛰쳐나가고 싶은 표정을 지어요. 감정을 억누르고 빨래를 개던 엄마에게 의사인 아들이 전화를 합니다. "엄마, 나 오늘 당직인데 옷을 안 가져왔어. 이따 옷 좀 갖다줘." 엄마가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 하니 "엄마 하는 일도 없는데 그것도 못 해줘?"라고 쏘아 붙입니다. 이런 세월을 30년 넘게 보낸 여자 분은 소설가의 꿈을 꾸고 있던 '나'로 살고 싶은 마음에 황혼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혼이냐고 난리였죠. 엄마를 설득한다는 말이 딸은 시댁에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 아들은 그동안 편하게 잘 사신 것 아니냐, 남편은 고생한 거 아니까 같이 골프치면서 노후를 보내자고 합니다. 그 말들에 여자 분은 벌떡 일어나, 30년 넘게 묵혀온 자신의 감정을 쏟아냅니다.


"나 골프 싫어한다고! 평생 살림하느라 손목 아프다고 해도 들은 척이나 했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이나 가져봤냐고.
나도 이제 제발 내 인생 좀 살자.

그래, 이순례. 나 이순례라고.
내 남은 인생,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말고
소설 작가가 꿈이었던 이순례를 찾아보고 싶다고."


 극 중에서 여자 분은 남편이 화를 내며 자신의 이름을 소리쳤을 때 오히려 반가워합니다. 그 어떤 역할도 아닌 본인으로서 느껴지는 순간이었던 것처럼요.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보다 좀더 과장되게 표현되었을 순 있지만, 드라마처럼 자아가 억눌리는 현실까진 아니더라도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들'로 나를 잊고 하루 하루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엄마로서 해야할 일, 워킹맘이라면 직장에서 해야 하는 일, 또 누군가의 딸로서 챙겨야 하는 것들로요. '해야할 일'을 다 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는 건 아닙니다. 사실 육아를 하면서 엄마들이 바라는 게 엄청나게 대단한 것들은 아니더라구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이라도 음미하며 마실 여유를 갖고 싶다거나,
아이들이 남긴 과일 말고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먹는다거나


 소소하지만 좀처럼 이상하게 해내기 힘든 것들이죠. 극 중의 여자 분도 결국 원했던 건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나를 그 자체로 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누가 나를 '나'로 봐주기 전에 나부터 나를 챙겨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엄마가 '나'를 찾는 시간을 가지면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엄마'이자 이름이 있는 또하나의 존재로 엄마를 받아들인다고 해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엄마와 아이들 간의 상호작용도 훨씬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하루 30분 또는 1시간은 '해야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것으로 채워보며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나이가 들며 내 취향은 어떻게 바뀌는지,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등 오롯이 나에게 질문해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져보는 습관을 길러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나를 '엄마'이자 '내 이름'으로 써줄 수 있을 만큼요.


  

작가의 이전글 너는 엄마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