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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일기(1)엄마의 장점, 엄마의 좋은 점

생일을 축하하는 방법

by 교사맘

(이전에 올린 글과 같은 글입니다. 브런치북에 넣느라 재발행합니다.)



올해부터 생일날에는 가족이 모두 생일을 맞은 사람의 장점이나 좋은 점을 말하는 작은 의식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어색해하며 하기 싫어하기도 했지만,

"말로 할래, 편지로 쓸래?"라고 엄마가 던진 선택지 앞에서

주저 없이 '말로 때우기 하기'를 선택했다.


올해 가족의 모든 생일에는 이 의식대로, 말로 장점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가족의 마지막 생일인 내 생일이 되자, '말'말고 글로 받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엄마 생일에는 선물 따로 안 해도 되니까 엄마의 장점을 글로 써줘. 그냥 1,2,3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쓰면 돼. 편지로 안 써도 돼."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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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특별히 케이크 그림까지 그려주었다.

막내는 '엄마의 좋은 점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게임을 하게 해 준다는 점이라고 한다. :)

20250908_115208.jpg 삼 남매 중 유일하게 며칠 전부터 내 생일을 기억하고 생각했던 둘째의 글.


20250910_190849.jpg 첫째가 써 준 나의 장점



첫째에게 1,2번은 어떤 때 느낀 거냐고 물어보았다. 헝겊 축구공 사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첫째와 막내가 (아들 2명) 집안에서 헝겊 공으로 축구를 하다가 내 화장대 위에 세워둔 거울을 깼다. 그때 나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화가 나지 않았으므로)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서둘러 아이들을 방 밖으로 나가게 하고 남편과 둘이서 치우는데 거울 유리가 꽤 날카로워, 치우다가 손가락을 다쳐 피가 조금 났다. 그것 때문에 남편은 오히려 "엄마께 사과 제대로 드렸어?" 하며 버럭 큰 소리를 한 번 냈다. 아이들은 "엄마 죄송해요."하고 사과했고, 조용히 자기들끼리 쿠팡에서 새 거울을 주문했다. (이전 거울보다 더 좋은 거 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고마워라.)


성인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두 아이는 아마도 스스로 거울 유리 조각들을 치웠을 것이다. 자신이 흘린 음식은 스스로 닦듯이. 그러다가 다쳤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20250826_215518.jpg 헝겊 축구공



나는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그 헝겊 공은 이제 버려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셋째가 자기 용돈으로 사서, 3년째 집안에서 놀이 도구가 되어주었던 헝겊 축구공.

아들 한 명의 눈에 공이 들어오면 발로 건들거나 굴린다. 동그란 물체가 바닥에 있다?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러다 다른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패스한다. 다양한 플레이로 이어진다.


우리들이 어릴 때와 다르게, 집 근처에 넓은 놀이터나 공터가 없어서(빈 공간은 무조건 건물을 올리거나 주차 공간으로 쓰니까) 집 안에서라도 그렇게 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버리기로 하였고, 아들들도 진심으로 그 결정에 동의하였다.


그때의 내 모습이, 첫째는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엄마는 거울이 깨졌는데 화도 안 내시고, 혼내지도 않으셔서" 위와 같이 적었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아이들의 입장을 언제나 이해하는 것.

이건 교사라는 내 일을 소중히 여기며 노력했기 때문에 단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라는 일이 너무 좋은데, 너무 힘들기도 했던 세월. 나는 16년 차 정도가 되어서야 학교에서 근무하며 '마음이 편하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5년 간은 늘 긴장과 애씀, 더 잘하려는 의욕으로 넘쳤고, 아이든 학부모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했고, 많이도 울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혹사시켰다. '이 일이 나에게 맞을까? 언제까지 교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슬럼프에 주기적으로 빠졌고, 사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지속되어 왔던 그 '애쓰는 삶'으로 인해, 2020년에는 코로나와 함께 번아웃을 세게 겪었다.


제 버릇 개 못 주듯 복직해서도 다시 열심히, 맹렬히 살아갈까 봐 종종 걱정에 빠진다.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가 묘하게 뒤섞여, 나는 나를 몰아붙이며 무언가 쌓고 이루기 위해 끝없이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감각.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선(善)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며, 무엇을 포기하거나 놓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에, 악을 행하는 것에서도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아이들이 써 준 글이 말해주는 것 같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이해하려고 울면서 노력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아이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늘 불안정했고 상황은 자주 뒤틀렸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아름답게 빚어오셨고, 내 시간과 경험들을 선한 조합으로 이끌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구절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국에는 선한 것을 이루는 데 쓰인다는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 로마서 8장 28절 (메시지 성경, 유진 피터슨)



P.S.

안전을 위해 헝겊 공을 버렸는데, 이상하다.

헝겊 공이 없어지니 어디선가 고무공이 나왔고,

그보다 탄성이 적은 야구공(배스킨라빈스에서 받은 것)으로 축구를 하기도 했다.

야구공은 작아서 '꽝 차기 어려워 안전하다'는 것이 아이들의 논리였다.

'음... 그럴듯하네?' 서로 발로 굴리고 패스하고 놀길래 그냥 두었더니

첫째는 야구공을 찬다는 것이 벽을 차서, 결국 정형외과에서 발가락 진료를 받아야 했다.

우리 집 아들들에겐, 동그란 물건이란 도파민 그 자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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